[이성필의 언중유향]'빅버드의 비센테 나바로'가 되고 싶었던 수원 창단 팬, 하늘의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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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최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비시니우스 주니오르에게 집단 인종 차별 행동으로 비난받았던 발렌시아, 이강인(마요르카)을 육성한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이전에 주목받았던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창궐 당시 발렌시아는 홈구장 에스타디오 메스타야에서 아탈란타와의 2019-20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6강 2차전을 무관중으로 치렀지만, 영원한 팬 1명은 관중석을 지켰다.
발렌시아 회원 번호 18번의 고(故) 비센테 나바로, 1948년부터 발렌시아 영구 시즌권 회원으로 54세가 되던 1982년 시력을 잃었어도 2016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늘 홈경기가 있는날 경기장 관중석을 지켰다. 아들이 경기 장면을 설명하면 상상했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오랜 축구 역사를 상징하는 장면이자, 구단을 사랑하는 팬심에 대한 존중이었다.
비단 발렌시아 외에도 유럽 축구에 팬들과 엮인 스토리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헤이젤 참사'로 대표되는, 1995년 5월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의 유벤투스-리버풀의 유로피언컵 결승전의 훌리건 난동으로 39명 사망, 454명 부상 역시 팬들의 이야기다. 유럽 매체들은 참사 시기가 돌아오면 추모하고 원인에 대한 진실을 계속 찾고 있다.
구단의 역사와 이야기에 함께 흘러가는 팬 이야기가 일상인 축구 선진국들
프로 리그 역사가 아직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국내 K리그에서 구단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팬층이 상당한 구단이 아니면 목소리가 반영되거나 주목받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K리그 리딩 구단인 전북 현대는 김상식 전 감독을 향한 팬들의 사퇴 압박 속에 치러진 지난 4월 26일 대전 하나시티즌과의 9라운드 홈경기에 선수들이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 제주 원정 경기에 응원하러 갔던 팬 고(故) 윤재형 씨의 사망에 대한 애도였다. 팬들의 비판 속에서 최소한의 추모식으로 팬을 기렸던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한 성적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원 삼성은 팬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구단 중 하나였다. 워낙 팬이 많다 보니 과거 '그랑블루'로 대표되는(현재는 프렌테 트리콜로) 강력한 지지자들은 상대 팀을 압박해 승패를 가르는 중요 요소였다.
지난 2009년 9월 6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강원FC와의 경기에서는 에두가 3-3을 만드는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뒤 왼쪽 코너로 달려갔다. 구단 명예 사진 기자였던 고(故) 신인기 씨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10년 넘게 구단 사진을 찍었던 신 씨는 위암 말기 투병 중이었고 언제 다시 그라운드에 내려와 사진을 찍을지 알 수 없었다. 신 씨의 사연을 알게 된 에두가 그를 기리는 세리머니를 펼쳤고 경기 후에는 모든 선수가 모여 마음을 나눴다.
한 달 뒤 신 씨는 세상을 떠났고 수원은 그가 떠난 시기에 맞춰 '신인기 포토제닉'으로 명명해 구단이나 경기장, 팬들을 잘 표현하는 자유 주제로 사진을 공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해가 갈수록 규모는 축소되고 있지만, 팬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수원 관계자는 "작지만 추모 행사는 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인 서너 명 연봉 책임졌다"며 농담하던 수원의 원년 팬, 하늘의 별이 되다
축구대표팀의 엘살바도르전이 열렸던 지난 20일, 또 다른 수원의 팬이 떠났다. 1995년 창단해 1996년 K리그에 참가한 수원의 영광과 부침을 모두 봤던 그랑블루 내 소모임 '로얄블루'의 전 회장이었던 고(故) 이상열 씨의 발인일이었다.
평범한 팬이라고 하기에는 수원의 시작과 부흥, 쇠락을 모두 봤고 서포터 그랑블루에서 목소리를 내며 응원 문화를 잡아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고인의 이별을 그냥 넘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수원의 역사나 프로 축구를 잘 모르던 초짜 기자의 '수원 백과사전'이기도 했다. 국가대표 서포터 '붉은 악마'보다는 수원 '그랑 블루'의 피가 더 진했던 인물이다.
기자석이나 구단 직원, 선수의 시선이 아니라 팬의 시선으로 경기나 사건을 바라보면서 취재가 필요하면 길잡이 역할을 해줬던 '만능 취재원'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스피드가 좋았던 김대의(현 중국 청두 룽청 수석 코치)를 두고 "성남 일화 시절에 우리 경기(수원)전에만 나서면 서정원 이상으로 빨랐던 존재라 꼭 영입하기를 바랐던 공격수다. 우리 팀에 오고 나니까 참 마음에 안정이 생기더라"라거나 "제가요, 수원 신인 우선 지명 선수 연봉 서너 명 정도는 책임졌어요"라며 지출했던 비용이 상당했음을 비유로 언급했다.
1990년대 하이텔, 나우누리, 넷츠고 등 PC통신 시절부터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이 씨는 그랑블루 내 소모임 '로얄블루'의 모체가 됐다. 생업이었던 설계 일을 하면서도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기억하는 수원 팬 이인철 씨는 "그랑블루 내에 소모임이 정말 많았다. 그 안에 녹으려 정말 애썼다. 그랑블루 운영진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도 참아가며 활동했다"라고 전했다.
그랑블루는 응원전의 1등이었다. 카드섹션이나 엄청난 괴성 "우리의 수원~ 블루윙 알레~"로 시작되는 응원은 전율 그 자체였다. 가장 많이 비교하는 일본 J리그의 우라와 레즈와 비교해 꿀릴 것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일부 유럽의 울트라 문화에 젖은 강성 소모임이 팬심을 그르치기도 했고 "이런 문화를 지양해야 하고 프런트와 합리적인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라며 그랑블루 소모임 회의 등에서 목소리를 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자신을 원년 팬이면서 타 소모임에서 활동하고 경기장에서 구단 직원들에게 "합리적인 팬 정책 집행을 하라"며 소리치고 입씨름을 많이 했다고 소개한 김 모씨는 "다른 구단 팬들도 그렇고 수원 팬 중에 사연 없는 팬 없지만, 이 씨는 팬들의 자세에 대해 명확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원정 경기에서도 많이 봤다. 스포츠카를 몰고 오던 모습도 기억난다. 최근 경기장에서 골수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세상을 떠났다니 애통하다"라며 추모했다.
5년여를 투병했던 이 씨는 병원 입원 치료도 경기장 인근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받기도 했다. 나름의 팬심이라며 야간 경기 조명이 반사되어 희미하게 보이면 그것으로도 좋아했단다. 수원이 이기면 담담하게 기뻐했고 패하면 안타깝게 웃었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 씨의 빈소에는 창단 당시 10~30대였고 지금은 30~50대가 된 팬들이 와서 추모했다. '수원 사성'으로 불리는 네 번의 정규리그 우승(1998, 1999, 2004, 2008년)을 차지했던 영광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그 기억을 함께 공유하며 현재 수원에 대한 문제 인식까지 같이했다고 한다.
강등 피하지 못해도 영원한 팬…꼴찌 수원에 뼈 시린 고인의 팬심
빈소를 지켰던 김미연 씨는 "몸이 아픈 사람도 구단을 사랑해서 응원하고 소비하고 모임도 오래 유지 중이지만, 구단은 팬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 비전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랑도 커지고 소비도 더 커졌지만, 구단은 꼴찌라는 성적을 내밀고 있지 않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 창단 후 10년 넘게 서포터의 상징인 북측 골대 뒤(N석)를 지켰던 이들 상당수는 입장권 가격이 훨씬 비싼 본부석(W석)이나 테이블석으로 모두 이동했다. 김 씨의 경우 소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영원을 약속했다. 열정적인 응원은 현재의 10~20대에 맡기고 가족이 되어 경기장을 찾고 있다. 고액 소비층이 됐지만, 구단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짙어지는 셈이다.
영화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관태 씨는 "어린 팬들이 모임에 들어오면 응원도 가르쳐주고 경기 보는 법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고인과의 마지막 연락은 이번달 초 기자의 생일이었다. "장가 좀 가시라"며 희미한 목소리로 아픔을 표현하던 이 씨는 "수원이 2부리그로 떨어져도 팬으로 남아야지요. 뭐, 팬은 그런 것입니다. 진짜 2부리그 강등되면 너무 아프겠지만"이라며 꼴찌 수원에 대해 담담하게 표현했다.
고인은 수원을 좋아했고 우주도 좋아해 고가의 망원경을 들고 거주지였던 화성 향남 주민들을 대상으로 종종 별을 보여주는 아마추어 관측회를 열기도 했다. 이제 그는 팬들과 주민들 곁에 없고 아내와 딸만 남겨 두고 세상과 이별했다. 하늘에서 수원 삼성이 '수원 사성'에서 '수원 오성'이 되는 그날까지 별로 빛나 내려 볼 뿐이다. 24일 빅버드에서 열리는 FC서울과의 '슈퍼매치'를 하늘에서 보는 그는 어떤 감정일까.
어쩌면 현재 수원의 위기는 오랜 정성 깊은 팬들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그저 바로 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임기응변식'에 젖어 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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