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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림픽 출전사 ⑯레슬링도 유도와 함께 효자 종목으로 떠오르다

작성일: 2016.07.21 09:49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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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양궁 여자부에서 금메달을 딴 서향순(가운데)과 동메달을 차지한 김진호(오른쪽)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레슬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유도에 못지않게 한국 선수단의 메달 전략에 힘을 보탰다.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에 14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차지했다. 

그레코로만형 62kg급의 김원기는 조 예선에서 멕시코의 로베르토 아세베스, 엘살바도르의 구스타보 마주르, 그리스의 스틸리아노스 미기아키스를 잇따라 테크니컬 폴로 누르고 4차전을 부전으로 통과한 뒤 사실상의 조 예선 결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오사나이 세이치와 경기에서 5-4로 이겨 메달권에 접근했다. 조 예선 6차전에서 스위스의 휴고 디치를 누르고 결승에 오른 김원기는 스웨덴의 켄트올레 요한손과 접전 끝에 3-3으로 비겼으나 큰 점수(3점)를 얻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자유형 68kg급의 유인탁은 조 예선 5번의 경기에서 3차례나 테크니컬 폴승을 거두는 등 가볍게 결승에 올라 미국의 앤드류 레인과 맞섰다. 유인탁은 어깨메어치기로 3점을 선취했으나 레인의 끈질긴 반격에 3-4로 역전당했고 다시 5-4로 뒤집었으나 경기 종료 37초를 남기고 5-5 동점을 허용했다. 유인탁은 김원기와 마찬가지로 경기 초반 얻은 큰 점수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자유형 52kg급의 김종규는 은메달을 추가했고 자유형 48kg급의 손갑도와 57kg급의 김의곤 그리고 62kg급의 이정근, 그레코로만형 52kg급의 방대두는 동메달을 보탰다. 이 대회 자유형 74kg급과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서 각각 6위와 4위에 그친 한명우와 김영남은 4년 뒤인 서울 대회에서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이룬다. 특히 한명우는 82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우승했다. 

복싱은 9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 은, 동메달을 1개씩 획득해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유도, 레슬링과 함께 제 몫을 다했다. 격투기 종목 3총사는 한국이 이 대회에서 딴 금메달 6개 가운데 5개, 전체 메달 19개 가운데 84%에 해당하는 16개를 기록하는 눈부신 성적을 올렸다. 

미들급에 출전한 신준섭은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4경기에서 모두 5-0 또는 4-1의 일방적인 판정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한국의 올림픽 복싱 첫 금메달을 놓고 맞붙은 버질 힐(미국)과 경기는 3-2 판정 결과가 말하듯 접전이었다. 1라운드는 탐색전으로 어느 선수의 우세를 판정하기 어려웠다. 2라운드에서는 힐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 정도로 신준섭의 원투 스트레이트 공격이 주효했다. 그러나 3라운드 막바지 힐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신준섭의 얼굴에 적중했다. 뒷걸음질하며 위기를 넘긴 신준섭은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힐을 몰아붙였다. 대만과 루마니아 부심은 각각 60-58, 59-58로 신준섭의 우세를 판정했고 서독과 모로코 부심은 59-58로 힐의 우세를 인정했다. 59-59로 동점을 매긴 튀니지 부심이 신준섭의 우세를 판정해 신준섭은 올림픽 금메달에 입을 맞췄다.

웰터급의 안영수는 결승에서 미국의 마크 브릴랜드에게 0-5 판정으로 져 은메달을 보탰고 라이트급의 전칠성은 준결승에서 이 체급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퍼넬 휘태커에게 0-5 판정패해 동메달을 추가했다. 

양궁은 대회를 앞두고 내세웠던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 목표가 정확하게 이뤄졌다. 1979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전관왕이자 당시 2,636점의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인 김진호가 0점 실사(失射)를 두 차례나 하는 등 난조를 보이며 2,555점을 기록하며 동메달로 밀렸으나 17살의 여고생 서향순이 침착하게 경기를 펼쳐 2,568점으로 중국의 리링주안을 9점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농구는 여자 핸드볼과 함께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여자 배구 동메달에 이어 단체 구기종목으로는 두 번째로 올림픽 메달의 기쁨을 안았다. 1967년 프라하, 1979년 서울 등 두 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하며 실력을 확인한 여자 농구는 그러나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때 처음으로 정식 세부 종목으로 채택된 뒤 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국은 이해 5월 쿠바에서 열린 프레 올림픽에서 6위에 그쳐 또다시 올림픽 출전의 꿈이 좌절되는 듯했으나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여자 농구는 6개국이 풀리그를 벌여 1위와 2위가 금메달을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은 미국에 47-84로 크게 졌으나 유고슬라비아를 55-52, 호주를 54-48, 캐나다를 67-62로 꺾었고 결승 진출의 최대 고비인 중국전에서 69-56으로 예상 밖의 큰 점수 차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결승에서 미국과 다시 싸워 55-85로 졌으나 이룰 만큼의 성적은 이룬 뒤였다. 여자 농구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선수들은 박찬숙과 김영희, 문경자, 성정아, 정명희, 김화순 이미자, 김은숙, 박양계, 최애영, 이형숙, 최경희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아시아 예선이 이어 세계 예선까지 통과했지만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던 여자 핸드볼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4년 전의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 여자 핸드볼은 여세를 몰아 1988년 서울 대회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2연속 우승하는 쾌거를 이룬다. 한국은 금메달을 딴 유고슬라비아에만 23-29로 졌을 뿐 서독과 미국, 오스트리아를 26-17과 29-27, 23-22로 꺾고 중국과 24-24로 비겨 3승1무1패로 준우승했다. 여자 핸드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손미나와  윤수경, 이순이, 성경화, 정희순, 강숙, 윤병순, 김명화, 김옥화, 이영자, 김미숙, 김춘례, 정순복, 김경순, 한화수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도 다음 대회 개최국 선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싸웠다. 특히 남자 배구는 당시 세계 4강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A조에서 이 대회 은메달의 브라질을 3-1, 강호 아르헨티나를 3-2로 꺾는 등 선전하며 4강 진출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미국이 주전을 모두 빼며 브라질에 석연찮게 0-3으로 지면서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조 3위가 돼 5위~8위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이어 중국과 아르헨티나를 각각 3-1로 물리치고 5위를 차지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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