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가능한 사랑', 리모컨 쥔 관객도 164분 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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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베니스와 토론토, 글로벌 무대를 휩쓸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 '가능한 사랑'(감독 이창동)이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관객들의 안방으로 찾아간다. 넷플릭스 최적화형 콘텐츠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이번 작품과 넷플릭스의 특별한 동행이 어떤 유의미한 시청 데이터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지는 만남이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인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지난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2주간 개봉해 23만 명의 관객과 만났으며,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이번 작품은 무려 16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크고 작은 사건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집중하며 잔잔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네 배우의 열연이 압도적인 작품이지만, 자극적인 전개 없이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사모펀드에 매각된 직장에서 해고된 미옥(전도연)과 호석(설경구) 부부는 파업과 실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녀의 남편 상우(조인성)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많은 재산을 가진 자산가인 상우 부부와 해고 이후 어려움을 겪는 미옥, 호석 부부 사이에는 아득한 경제적 격차가 존재한다.
이들을 사랑하겠다며 미옥과 진심으로 가까워지려는 예지는 상우의 허락을 받아 프라이빗 해안을 끼고 있는 그의 개인 별장으로 함께 휴가를 떠나기로 한다. 차츰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네 사람 각자가 가진 욕망과 결핍이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은연중에 드러나며 긴장감이 커진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상우가 가진 막대한 부는 호석을 위축되게 할 뿐 아니라 경제적 구속에 시달리는 미옥에게도 묘한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젠틀하면서도 은근히 시혜적인 시선으로 이들 부부를 바라보던 상우는 미옥을 향해서도 탐욕을 보이며 숨은 욕망을 드러낸다.
심지어 예지는 미옥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들 부부의 지극히 사적이고 고통스러운 순간까지 욕심을 내 카메라에 담으려 하고, 결국 미옥의 날 선 시선을 받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클라이맥스다. 심장이 떨어지는 듯 싸늘한 미옥의 눈빛과 카메라를 든 예지의 난감한 듯하면서도 여전히 카메라를 손에 쥔 모습이 거북함을 안긴다. 타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의도와, 인터뷰를 허락했지만 일정 '선'을 넘어온 카메라 앞에 놓인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이같은 이야기 속 네 개의 기둥처럼 영화를 가득 채운 배우들의 열연이 압도적이다. 크고 작은 서사와 극적인 흐름보다는 잔잔하고 밀도 높게 러닝타임을 채우는 이번 작품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컷마다 섬세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활약이 작품의 핵심 포인트다.
특히 가족의 절망 속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놓지 않고 특유의 처연하면서도 해맑은 미소로 무장한 미옥을 탄생시킨 전도연은 어마어마한 대사량을 소화하며 사실상 극 전반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파업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호석을 연기한 설경구는 많지 않은 대사량 속에서도 분노와 울분을 응축해 강렬하게 터뜨린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다시 삶을 회복해나가는 모습과 그 속에서도 무력감을 느끼는 감정까지 무게감 있게 섬세하게 표현한다.
조여정과 조인성은 이들 부부의 삶에 다가서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하지만,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자아내는 위선적 면모와 이들의 자의식에 담긴 욕망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배역의 이미지에 최적화된 열연으로 몰입감을 더한다.
이번 작품은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따라가며 이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구성으로 묵직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예술가로서 지켜야 할 윤리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감독의 자조적인 물음까지 담아낸다.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사적인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하게 한다. 관객들에게 오래 곱씹을 이야기거리와 깊은 성찰을 안겨줄 작품이다.
다만 많이들 봤으면 싶은 좋은 영화라는 사실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가능한 사랑'은 극장이라는 공간에 러닝타임만큼 관객을 묶어놓아야 끊김 없이 몰입감 있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마블 영화급 긴 러닝타임에 비해 사건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집중한 구성과 인터뷰 컷이 대부분인 장면들이 자극적이지 않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언제든 시청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과연 재생 중단 버튼을 쥔 관객들은 이 작품을 몇 번의 일시정지 끝에 완주하게 될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시청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해진다.
물론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제작될 수 없었던 작품이기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훌륭한 작품성으로 넷플릭스에 베니스 트로피를 안겨준 작품이지만, 이 작품 역시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또 이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9월 23일 2주간 극장 개봉, 6일 넷플릭스 공개,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6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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