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는 치열하기로 유명합니다. 매 시즌이 끝나면 각 구단들은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하지요. 프로 종목은 ‘돈’을 많이 쏟아 부어야 성적이 올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견일 뿐 ‘정설’은 아니죠.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가 없어도 곧잘 우승을 차지하는 팀들은 적지 않습니다.

배구 구단 삼성화재는 원래 초호화 군단이었습니다. 한국 남자배구 사상 가장 강력했던 좌우 날개 공격수 신진식-김세진을 보유했었으니까요. 여기에 ‘컴퓨터 세터’ 최태웅과 ‘돌도사’ 석진욱 전천후 센터 김상우까지 최고의 선수들이 삼성화재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프로리그에 신인 드래프트제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1라운드 1순위 선수는 전 리그 최하위 팀이 지명할 수 있는 특권이 생겼죠. 1라운드부터 전 시즌 순위 역순으로 선수들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한동안 삼성화재는 대형 신인을 영입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초를 극복할 수 있는 탈출구는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배구에서 결정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거포의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프로리그가 출범하기 전 라이벌 팀인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했습니다. 프로 원년리그의 우승팀도 삼성화재였죠.

삼성화재 못지않게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현대캐피탈은 미국 출신의 숀 루니를 영입합니다. 루니는 한국 배구 적응에 성공한 첫 선수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맹장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의 지도에 녹아들면서 그의 위력은 빛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루니는 ‘타도 삼성화재’의 해결사가 됐습니다. 그는 현대캐피탈의 V리그 2연패(2005~2006, 2006~2007)의 일등 공신입니다.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라는 거대한 장벽을 두 번이나 넘어섰지만 이후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삼성화재는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와 대형 신인의 부재 여기에 선수 부족 현상을 겪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축척된 ‘조직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월드리베로’ 여오현과 석진욱은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았고 역대 외국인 선수(레안드로, 안젤코, 가빈, 레오)는 삼성화재의 플레이에 녹아들었습니다. 사실 삼성화재의 7연패 신화를 이끈 외국인 선수들 중 세계적인 슈퍼스타는 없습니다. 신치용 감독은 ‘자존심 강한 스타’보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외국인 선수’를 선호했습니다. 자신의 지도에 군소리 없이 따라올 선수를 원했던 거죠.

실제로 삼성화재의 훈련 분위기는 타 구단과는 다릅니다. 신치용 감독의 냉정한 시선은 코트 이곳저곳을 꿰뚫고 있고 선수들의 눈빛도 생생하게 살아있죠. 수비와 조직력을 강조하는 신 감독의 의도대로 선수들은 싫은 기색 없이 적극 참여합니다. 표면적으로 삼성화재의 배구가 ‘외국인 몰빵’식으로 보이지만 디테일하게 팀을 분석하면 다른 이유가 존재합니다.

공격보다 리시브 2단 연결 수비 조직력을 중시하는 신 감독의 배구 철학은 적중했습니다. 삼성화재의 유니폼을 입으려면 기본기 연습에 충실해야 하고 팀플레이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자세를 갖춰야합니다. 또한 훈련의 양과 강도도 치열하죠. 1%의 나태와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팀 분위기는 결국 7연패로 이어졌습니다.

현대캐피탈을 비롯한 타 팀들도 정말 열심히 훈련합니다. 그러나 왜 삼성화재에게 매 시즌 챔피언 자리를 빼앗기는 걸까요? 실전에 강한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이 있습니다. 어떤 감독은 연습 때의 기량이 정작 경기에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쉽니다.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과 근성으로 무장한 삼성화재는 경기에 흐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았죠.

지난 2012~2014 챔피언 결정전을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20점을 넘은 상황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범실이 어느 쪽에서 나왔을까요! 중요한 순간 블로킹을 성공시키고 격하게 환호하는 고희진의 모습이 자주 비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캐피탈은 이러한 부분을 극복해야만 삼성화재의 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실전 경기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죠. 승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코트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동안 '굿 플레이'와 '배드 플레이'는 모두 드러납니다. 당연히 배드 플레이가 적은 팀이 승자가 되죠. 이런 작은 차이를 극복해야만 수년 동안 치열하게 다져진 삼성화재의 배구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