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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in 도쿄, 르포] ‘현장의 북한’ 경기장 밖에선 물러서고, 경기장 안에선 달려든다

작성일: 2017.12.12 11:4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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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동아시안컵에 참가한 북한 대표 팀 ⓒ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한준 기자] 2017년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 챔피언십) 취재가 흥미로운 것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인 북한이 예선을 돌파하고 참가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축구계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중국과는 왕래가 자유롭고,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의 규모가 크다. 한국과는 말이 통한다. 세 나라 축구의 특성을 한 몸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며 재도약을 시작한 북한 축구는, 최근 적극적으로 축구에 투자하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선진 축구에 대한 갈망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고립이 심화되고 있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유소년 선수들을 보내고, 노르웨이 출신 예른 안데르센 감독을 역대 두 번째 국가 대표 팀 외국인 사령탑에 앉혔다. 

J2리그에서 뛰는 재일 조선인 선수들이 북한 대표 팀에 있고, 경기장에도 천 여명의 재일 조선인이 찾아와 조직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 창립 1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도 조선축구협회 회장이 참석해 동아시아에서 월드컵 우승국을 배출하자는 결의와 선언을 함께했다. 대북 제재로 대회 상금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지만 북한도 심포지엄에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심포지엄 현장에서 한국 취재진이 행사 참여에 대한 간단한 소감 한마디를 물으려 다가서자, 웃으며 EAFF에 속한 각국 축구협회 회장 사이에서 어울리던 북한 협회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물러섰다. 가타부타 말 없이 표정과 눈짓으로 어렵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수행원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같은 날 있었던 대회 남자부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안데르센 북한 대표 팀 감독은 통역을 위한 이어폰을 착용하는 과정에 신태용 한국 대표 팀 감독의 도움을 받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자 축구계에서 여러 번 마주친 윤덕여 여자 대표 팀 감독과 김광민 북한 여자 대표 팀 감독도 이제 자연스럽게 안부 인사는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대표 팀 감독은 북한과 첫 경기를 마친 뒤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관계가 축구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묻자 오히려 축구가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말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축구로 선수들이 기쁨을 느끼기 바란다. 선수들끼리도 악수했고, 나도 악수했다. 나는 축구 가족의 한 사람이고, 그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지금 불안정한 세상에서 우리는 사회 안에서 가장 좋은 면을 보여 주는 축구라는 세계에 있다. 그게 기쁜 일이다. 우리는 우정과 기쁨을 모두에게 전한다. 유럽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디서든 라이벌 의식은 있다. 그리고 나는 스포츠 면에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싸우고 있다. 정치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9일) 경기는 정말 치열했는데, 스포츠였다. 그런 의미에서 두 팀을 난 칭찬해 주고 싶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보낼 수 있는 답은 경기장에서 보여 준 것이다. 즉, 시간을 함께한다. 그리고 함께 싸운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북한은 일본과 첫 경기를 앞두고 경기 장소인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딱 한 차례 공식 훈련을 갖고, 15분 동안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그 뒤로 북한 대표 팀의 훈련 일정은 시간도 장소도 비공개다. 그들 스스로 원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관계로 조직위원회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다. 

2년 전 중국 우한에서 열렸던 대회 당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당시 모든 경기와 훈련이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렸고, 북한 대표 선수들과 한국 취재진이 여러 번 마주했다. 몇몇 선수들은 허락을 얻어 경기 각오에 대한 별도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젊은 북한 선수들이 밝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축구를 하고, 축구를 이야기하는 것에는 제약이 없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감독의 회견이 끝나야 믹스트 존에서 나가는 게 관례다. 감독 인터뷰와 선수 인터뷰를 취재진이 모두 할 수 있도록 하는 불문율. 대개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회견장으로 와서 인터뷰한 뒤 라커룸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선수들과 미팅을 하고 해산한다. 북한 선수들은 감독이 인터뷰 하는 도중에 빠르게 믹스트 존을 빠져나가 숙소로 돌아가 씻는다. 

회견에 나서는 감독은 경기에 대한 소감과 평가를 말하지만, 선수들은 철저히 입을 닫고 지나간다. 경기를 잘했든, 못했든, 결과가 어땠든 묵묵부답이다. 잘하고 졌던 일본과 경기에서 아쉽다는 말 한마디 정도를 남기고 지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2연승을 한 북한 여자 대표 팀도 입을 닫고 통과하다 인터뷰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 간 것이 전부다.



2년 전과 지금, 북한 선수들의 자세가 달라진 이유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고,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경기장 위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쏟고 보여 주려 한다. 그 응축된 힘이 북한 축구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억눌린 개성을 원 없이 풀어낼 수 있는 곳이 그라운드다.

스포티비뉴스 영상 취재를 담당하는 배정호 기자가 그라운드 위에서 밀착해서 담은 경기 전, 경기 도중 그리고 경기 후 북한 선수들은 생기가 넘친다. 실점 상황을 '파울로라도 끊었어야 하지 않겠냐'는 코치의 말에 너무 멀었다고 답하는 북한 선수의 읍소는 솔직하다. 통한의 실점에 탄식하는 리명국 골키퍼의 움직임도 꾸밈없다. 믹스트 존을 지나는 북한 선수들의 얼굴은 진짜다.

경기장 밖에서 북한은 거듭 물러서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거칠 것 없이 달려든다. 경기장 안팎의 모습이 다른 선수들은 국내에도 많고, 전 세계 축구계에도 적지 않다. 한없이 거친 플레이를 하던 선수가 경기장 밖에선 수줍고 조용하며 사려 깊은 면모를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사회생활 안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는 것이 비단 북한 선수들만일까. 어쩌면 여기 현장에 모여 있는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꾸미고,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직 공이 구르는 시간 동안 원초적인 반응만이 그대로다. 경기를 보며 옆자리 기자와 나누는 축구 이야기만이 진짜일지 모른다. 

▲ 11일 오후 여자부 남북 경기가 먼저 열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어느 순간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상황을 겪으며 사람은 변해 간다. 몇 년 전의 내 모습, 또는 몇 달 전, 며칠 전 내 모습조차 한 발짝 떨어져서 돌아보면 낯설다. 남자부 남북전이 열리는 12일. 도쿄 출장을 떠나온 지도 벌써 7일째. 일정의 절반이 지났다. 그 사이 기자의 몸과 마음과 생각도 꽤 많이 달라졌다. 

도쿄의 겨울 날씨는 영하 10도 아래까지 떨어진 한파가 몰아친 서울과는 분명 판이하다. 11일에는 한낮에 영상 10도까지 올랐다. 햇볕에서는 잠시 덥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훈련장과 경기장에 들어서면 차다. 생동감이 있는 쪽은 분명 경기장 안이다. 인파가 가득하고, 설레는 마음과 흥분이 가슴을 뛰게 한다. 

▲ 북한의 남자부 첫 경기에 많은 재일 조선인 응원단이 찾아왔다 ⓒ한준 기자
▲ 여자 대표 팀의 훈련이 진행 된 지바시 ⓒ한준 기자
▲ 해 질 녘 도쿄의 도심 ⓒ한준 기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선수와 관중이 빠져나가면 경기장은 잔업이 남은 대회 관계자와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는 취재진만 남아 적막이 흐른다. 숙소로 돌아간 뒤에도, 다음 날 낮에도 적막 속 일과가 누군가에겐 행복한 여행지로 기억될 도쿄의 풍경을 쓸쓸하게 만든다.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조각난 글만 남았다.

기자에게도 가장 뜨거운 곳은 경기장이다. 정신없이 바쁘고, 비로소 겨울의 추위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현장에 있어야 살아 있는 것 같다. 12일 오후 남자부 남북 축구 경기는 평일 낮에 열린다. 많은 관중이 찾아오기 어려운 시간이지만, 어느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뜨거운 경기가 기대된다. 남북 선수들의 열정을 글로 전하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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