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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태의 W빌드업] 러시아vs스페인: '수비 축구'가 '점유율 축구'를 잡는 전형

작성일: 2018.07.02 17:46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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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숙인 스페인 선수들.
▲ 러시아의 환호.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충격적 탈락이다. 죽음의 조로 꼽힌 B조를 1위로 통과한 스페인이 좌초했다. 러시아는 대체 스페인을 어떻게 눌렀을까.

러시아는 1일(한국 시간)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페인과 경기에서 1-1로 비겼으나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스페인은 개최국 러시아의 수비벽을 결국 뚫지 못했다. 스페인은 평소와 비슷한 경기 운영을 펼치려고 했지만, 요소요소에 러시아가 스페인을 괴롭힐 수 있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러시아는 '수비 축구'가 '점유율 축구'를 잡을 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요소들을 보여줬다. 운도 따랐고 승부차기에선 골키퍼가 선방을 연이어 펼쳤다.

◆ 활동량에서 압도했다

FIFA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20분을 마친 뒤 스페인은 137km를, 러시아는 146km를 더 뛰었다. 90분을 뛰면 일반적으로 한 선수가 10km 정도를 뛰는 것이 보통이다. 러시아는 거의 1명이 더 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도핑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도 스페인을 질식시킨 러시아의 움직임 때문이다.

축구에서 개인 기량과 팀의 완성도가 높으면 체력을 아낄 수 있다. 공이 사람보다 빠르고, 공이 움직인다고 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리 포지션을 잘 잡아놓고 좌우로 공을 돌리면서 공격 기회를 보는 동시에 체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스페인이 꾸준히 공을 좌우로 돌리면서 러시아를 흔들었다.

러시아는 압도적인 활동량으로 120분을 버티면서, 스페인의 노력을 무산시켰다. 수비를 단단하게 펼치고, 역습까지 전개했다. 러시아가 스페인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활동량이다. 

▲ 디에고 코스타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 사실상 5-5-0, 두 줄로 수비를 굳히다

두 줄 수비는 약팀이 강팀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전술이다. 미드필더와 수비 사이를 좁혀 스페인의 중원을 뒤로 밀어냈고, 디에고 코스타는 중앙에서 고립돼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러시아는 필드플레이어 10명 모두 수비에 가담하곤 했다.

러시아의 수비 라인 위치 선정도 절묘했다. 페널티박스 바깥에 최종 수비 라인을 두고, 그 앞에 1차 저지선을 배치했다. 너무 수비 라인을 전진하면 단번에 수비 뒤를 공략당할 수 있다. 또 수비 라인이 지나치게 물러나면 지속적인 크로스를 허용하거나, 중거리 슛을 얻어맞을 수 있다. 앞도 지키고, 뒤도 지키는 그 절묘한 위치를 잡았다.

밀집 수비를 깨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개인 돌파다. 개인 돌파 자체로 찬스를 만들기도 하지만, 돌파에 성공해 수비 조직이 깨지면 공간을 찾을 있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드리블러' 이스코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이스코는 이란전에서도 드리블로 측면을 흔들면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이스코는 러시아전에서도 가장 공을 자주 다룬 이다. 그리고 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무려 9번의 드리블 돌파를 성공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수비 조직이 쉽게 깨지질 않았다.

러시아는 5명이 최종 수비를 꾸리면서 좌우로 적절한 간격을 유지했다. 한 명을 돌파하더라도 빠른 커버플레이가 가능했다. 4명이 배치된 측면 미드필더 역시 풀백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 이스코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도록 잘 지켰다.

포백의 경우 공격자가 측면으로 넓게 벌려설 경우 좌우로 경기장 전체를 커버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앙 수비수와 측면 수비수 사이 공간에서 찬스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5-4-1 형태로 나선 러시아의 구조는 개인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스페인에 네이마르나 메시가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났을지도 모른다.

▲ 주바는 끈질기게 스페인 수비진에 부담을 줬다. 그리고 1골을 넣었다.

◆ 역습에도 열심, 공격하지 않는 팀은 언젠가 무너진다

경기 자세에서도 러시아의 선택이 적절했다. 러시아의 점유율은 2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슈팅 숫자도 6-25로 크게 밀렸지만 러시아는 역습 자세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전반전엔 피케와 라모스를 괴롭힌 주바가 그 핵심이었다. 주바를 비롯해 러시아의 공격은 주로 오른쪽 측면을 타고 전개됐다. 주바가 머리로 공을 떨어뜨려주거나 수비를 등지면 러시아 선수들이 오른쪽 측면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경기 전체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바로 골로빈이다. 골로빈은 거의 16km에 육박하는 거리를 뛰었고, 스프린트를 60회나 시도했다. 스프린트는 자리를 잡고 전개하는 수비가 아니라 공격 때 나오는 수치다. 역습 때마다 공격에 가담해 힘을 보탰다는 뜻이다.

러시아가 기회를 살릴 때마다 나름대로 위협적인 공격을 펼쳐, 스페인의 최후방도 마냥 전진할 순 없었다. 러시아 공격수들이 모두 수비 진영으로 물러난 뒤에야 중앙선 위로 전진해 공격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스페인의 공격 전개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실수를 저지르면 역습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기름손' 오명을 씻은 아킨페프.

◆ 선수 1명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아킨페프vs피케

사실 러시아는 전반 12분 이그나셰비치가 세트피스에서 자책골을 기록해 탈락할 뻔했다. 하지만 반대로 세트피스에서 행운을 얻었다. 전반 41분 코너킥에서 헤딩을 하려던 피케가 자신의 머리에 공이 닿지 않자 팔을 높이 들면서 핸드볼 반칙이 선언됐다.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페널티킥에서 주바에게 한 골을 허용한 스페인은 늪 속에서 나머지 80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선 아킨페프가 엄청난 선방을 했다. 스페인 대표 팀에 합류하지 못해 현재 BBC에서 해설을 맡은 파브레가스는 "러시아의 계획은 승부차기에 가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이 그들에게 보상을 줬다"고 평가했지만, 원래 약팀은 승부차기로라도 몰고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사실 그리 특별한 경기 양상은 아니었다. 이란은 스페인을 강하게 압박했고 1골 차이로 아깝게 패했다. 그리고 한국은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독일의 맹공을 90분 동안 막아낸 뒤 추가 시간에만 2골을 넣고 이겼다. 스페인은 밀집 수비를 깨는 데 정통한 팀이지만, 러시아가 그에 못지 않게 수준 높은 전술적 준비와 함께 개최국으로서 높은 정신력을 갖고 경기를 치렀다. 약팀이 '수비 축구'로 강팀의 '점유율 축구'를 깰 땐 이런 양상이 흔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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