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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의 은퇴 후 삶 이야기, 요트 선수 출신 IOC 위원장 자크 로게

작성일: 2018.11.29 10:41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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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로게 위원장은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철 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발표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미래를 가꿔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하략) 이런 전문(前文)으로 시작하는, 스포티비뉴스가 심혈을 기울여 연재하고 있는 [은퇴 후 인생 2막] 기사가 뜻있는 스포츠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은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 시리즈 취지에 맞는 대표적인 외국 사례 2가지를 소개한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요트 핀급에는 36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아시아 나라로는 실론(오늘날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선수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25위를 한 유럽 선수가 있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요트 핀급에서는 일본 태국 인도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 오늘날 대만) 등 아시아에서 온 선수를 비롯해 35명의 선수가 기량을 겨뤘다. 이들 가운데 14위에 오른 유럽 선수가 있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요트 핀급에는 28명의 선수가 나섰는데 이들 가운데 22위를 마크한 유럽 선수가 있었다. 이 종목에 아시아 나라로는 일본과 필리핀이 출전했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지만 전 세계 운동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3회 연속 나선 이 유럽 선수는 뒷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되는 벨기에의 자크 로게다.

1948년 제5회 생 모리츠(스위스) 겨울철 올림픽과 제14회 런던 여름철 올림픽 출전 이후 1988년 제24회 여름철 올림픽과 2018년 제23회 겨울철 올림픽을 서울과 평창에서 여는 등 어느 나라 못지않게 올림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은, 그러나 2018년 현재 유승민 달랑 한 명의 IOC 위원을 안고 있다.

70여 년의 올림픽 참가 역사에서 배출한 IOC 위원은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이상 작고) 이건희 박용성 문대성 유승민 등 10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대성과 유승민은 선수 위원이다. 2018년 현재 중국과 일본은 각각 2명의 IOC 위원을 보유하고 있다.

IOC 헌장에 따르면 I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있는 나라나 지역에 사는 주민들 가운데 프랑스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으로 선출하지만 그 위원은 IOC에 대해 그 나라나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나 지역에 대한 IOC의 대표[대사]다.

따라서 IOC 위원은 그가 몸담고 있는 나라나 지역의 정부는 물론 어떤 조직, 어떤 개인으로부터도 구속받거나 투표의 자주성을 침해당해서는 안 되도록 규정돼 있으며 IOC 위원을 두지 않은 NOC도 많다.

1942년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난 자크 로게는 요트 선수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럭비 국가 대표로도 뛴 만능 체육인이다. 겐트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이후 겐트종합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브뤼셀의 리브르대학교에서 스포츠의학을 강의했다.

1991년 IOC 위원으로 선출됐으며 비슷한 시기인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벨기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1989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올림픽위원회(EOC)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EOC 위원장 때인 1991년 창설한 유럽유스올림픽페스티벌(European Youth Olympic Festival)이 2010년 싱가포르(하계), 2012년 인스브루크(동계) 유스 올림픽의 기본 틀이 됐다.

IOC에 몸담은 뒤에는 의무분과위원회에서 약물 퇴치 운동에 앞장섰고 1994년부터 같은 분과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8년부터는 IOC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럽을 넘어 국제 스포츠계의 비중 있는 인사로 자리를 굳혀 갔다.

2001년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김운용을 누르고 제8대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자크 로게는 경선 과정에서 올림픽의 규모 축소와 약물 추방, 인간성 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0년 타계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임 위원장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리더로서 통솔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네덜란드어 등 5개 언어를 구사하고 의사라는 사회적 신분을 활용해 무리 없이 IOC를 이끌었다. 2009년 재선된 자크 로게 위원장은 2013년까지 재임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은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철 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발표해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을 1988년 여름철 올림픽 개최지로 발표했을 때처럼.

1992년 기사 작위를 받고 2002년 앨버트 2세 벨기에 왕으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은 자크 로게 위원장은 '미스터 클린'으로 불릴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겸손하며 부드러우면서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철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뇌물 스캔들로 IOC 위원 10명이 직위를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잡음이 없었다. 또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기간 IOC 위원장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촌에 머물며 출선 선수들과 함께 지냈다.

2011년 포브스 매거진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68명의 인물 가운데 자크 로게 위원장을 67위에 올려놓았다. IOC는 올림픽에 정치가 끼어들지 않도록 초창기부터 무척 신경을 썼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을 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 만들어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지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IOC를 조직할 때 작위를 지닌 귀족들을 위원으로 속속 받아들였는데 위원들의 지위가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또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치가들이 간섭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의 수장이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로 뽑힌 건 올림픽 운동이 비 정치적이지만 세계인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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