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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의 은퇴 후 삶 이야기, 올림픽 빙속 전관왕 정형외과 전문의 에릭 하이든

작성일: 2018.11.30 11:00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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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인 에릭 하이든은 은퇴 후 삶이 더욱 빛난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미래를 가꿔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하략) 이런 전문(前文)으로 시작하는, 스포티비뉴스가 심혈을 기울여 연재하고 있는 [은퇴 후 인생 2막] 기사가 뜻있는 스포츠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은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 시리즈 취지에 맞는 대표적인 외국 사례 2가지를 소개한다.

에릭 아서 하이든은 특별한 올림픽 챔피언이다. 2018년 평창 대회까지 23차례 열린 겨울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린 세부 종목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는 남녀 한 명씩뿐이다. 여자부에서는 1964년 제9회 인스브루크 대회에서 소련의 리디아 스코블리코바가 500m와 1000m, 1500m, 3000m 등 모든 세부 종목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하이든은 1980년 제13회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단거리인 500m부터 장거리인 1만m까지 5개 세부 종목의 금메달을 독차지했다. 전관왕일 뿐만 아니라 모든 세부 종목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1만m는 세계신기록이기도 했다.

육상으로 치면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100m 세계 최고 기록 9초58 보유자)와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 2시간1분39초 보유자)의 경기력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수영으로 치면 2008년 베이징 여름철 올림픽 8관왕에 빛나는 마이클 펠프스(미국)에게 견줄 만하다.

1958년생인 하이든은 올림픽 전관왕이 되기 전에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다. 197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영하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종합 우승은 이영하에게 내줬지만 1500m에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이영하를 꺾었다. 그리고 1977년 독일에서 벌어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우승했고 1978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전 종목을 휩쓸며 또다시 종합 우승했다. 주니어 무대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하이든을 앞설 선수가 없었다.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에서 개최국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개회식에서 선수 선서를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이든은 미국 스포츠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고 소련을 꺾고 우승한 아이스하키와 함께 이 대회를 빛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겨울철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로 남아 있다.

하이든은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올림픽 외에 1976년~1980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와 1977년~1979년 세계종합선수권대회를 석권하는 등 5년 남짓한, 길지 않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생활 동안 화려한 전적을 남겼다.

하이든은 스포츠 강국 미국의 '유아 스포츠 계획'에 의해 5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워져 세계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성정했다. 그러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스포츠맨십을 훌륭하게 배웠다.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전관왕 이후 수백만 달러의 각종 광고 계약과 모델 섭외가 밀려 들어왔으나 하이든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신기해 보일 정도의 일이지만 그 시대에서 하이든은 아마추어 스포츠맨의 본보기가 됐다.

하이든은 1984년 자국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여름철 올림픽에서는 특이하게도 미국 사이클 선수단의 명예 감독으로 활동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하이든은 어릴 때부터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여러 종목의 운동을 했는데 여름철에는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움이 되는 사이클을 탔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여름철 올림픽 축구 종목에 출전한 김용식 선생이 겨울철에는 한강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해 다릿심을 기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이든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을 마치고 곧바로 얼음판을 떠나 사이클에 도전했지만 같은 해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 미국 국내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출전권을 땄더라도 미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대회에 불참해 동∙하계 올림픽에 모두 출전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든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1985년 전미프로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동∙하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리스트가 된 데 버금가는 업적을 이뤄 냈고 사이클 쪽에서도 일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았다.

스포츠가 올바른 인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 아버지 잭에 의해 하이든은 물론 그의 여동생 베스도 스피드스케이팅을 했는데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여자 3000m에서 동메달을 땄다.

운동과 함께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하이든은 스탠퍼드대학교로 옮겨 이학(생물학)을 전공한 뒤 1991년 같은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 하이든은 개업의로 바쁜 가운데 WNBA(미국 여자 프로 농구) NBA(미국 프로 농구) 구단들과 2002년, 2006년, 2010년, 2014년 겨울철 올림픽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단 팀 닥터로 일했다. 올림픽 등 주요 동계 국제 대회에서는 해설자로 활약하기도 한다.

하이든은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는 미국 스포츠의 선수 육성 시스템이 낳은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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