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태의 축구를 읽다] 최용수가 '전직 DF' 박동진을 최전방에 쓰는 법
작성일: 2019.05.29 15:00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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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유현태 기자] '장기' 놀이엔 다양한 기물이 놓인다. 각자 움직이는 법도 쓰는 법도 다르다. 때론 기동성을 발휘하는 '차(車)'의 쓰임새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가장 약한 기물인 '병(兵)' 혹은 '졸(卒)'도 상대 궁성 안에 들어가면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즉 어떤 기물이든 쓰는 법에 따라, 혹은 쓰는 이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가 바로 '장기'와 같았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가 경기를 뒤바꿨기 때문이다. 골을 넣을 능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최전방의 수비수' 박동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전반전은 팽팽했다. 두 팀 모두 스리백을 세우고 경기에 나서 수비할 땐 파이브백 형태가 됐다. 또 주말 경기의 피로를 고려해 신중하게 경기에 나섰다.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티을 쉬고 경기하는 것이라 서울도 변화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체력적 부담이 커서 내려섰다가 역습을 할 생각이다."(성남 남기일 감독)
"조직력, 유기적인 호흡이 좋아서 공간이 잘 안 나온다. 후반이 되면 체력,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경험상 홈이라고 이겨야겠다고 나가면 지는 경기가 많다. 수비할 땐 하고, 공격할 땐 과감하게 하겠다."(서울 최용수 감독)
전반전 서울이 점유율에서 57%로 유리했지만 슈팅 수는 6개로 같았다. 서울 쪽에서 보자면 전반 27분 에델의 단독 돌파에 이은 박관우의 슛은 실점과 다름없을 만큼 위험했다. 성남 남 감독이 "전반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잘했다. 찬스도 많았고, 슈팅도 많았다"고 평가했고, 최 감독은 "하프타임에 지시한 사항을 선수들이 명확히 인식하고 나갔다"며 후반전 경기력을 더 높이 봤다.
이렇게 팽팽한 흐름을 깬 것이 박동진이었다. 후반 4분 역습 과정에서 고요한의 패스를 받은 박동진은 주춤주춤하다가 과감한 오른발 슛을 시도했다. 발등에 강력하게 걸린 슛은 김근배 골키퍼의 손을 맞은 뒤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박동진은 2016 시즌 광주FC에서 데뷔한 뒤 줄곧 수비수로 뛰었다. 2018 시즌 서울로 이적한 뒤에도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주로 활약했다. 2018 시즌까지 그의 통산 기록에서 '득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박동진은 2019 시즌을 앞두고 공격수로 변신했다. 처음엔 훈련을 위해 공격수 포지션에 섰지만 이후론 최 감독의 믿음 아래 공격수로 여러 차례 출전했다. 성남전엔 다시 선발에 복귀했다. 서울 최 감독은 페시치와 박동진을 최전방에 내세웠다. 박주영의 체력 안배를 위한 것이었다.
◆ 단순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최 감독은 "상대가 많이 뛰고 빡빡하다. 힘을 빼놓고 해결해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대신 출전한 박동진에 대해 "지능은 부족하지만 상대 뒤를 노릴 수 있는 속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동진이 박주영-페시치처럼 골을 기대할 순 없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박동진을 살리는 것은 최 감독의 특별한 용병술이다.
최 감독은 박동진에게 많은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박동진은 최 감독이 자신을 단순한 선수라고 부른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감독님이 많은 걸 지시하지 않는다. 세 가지 정도만 말씀하시고 나도 그렇게 한다.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에 수비수 출신인 박동진에게 골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동진은 빠른 발과 끈끈한 몸싸움, 많이 뛰면서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는 것이 '공격수'로서 장점이다. 그 장점을 살리면 충분하다는 것이 최 감독의 계산일 터.
득점 장면 역시 '단순미'가 빛난 순간이었다. 박동진의 플레이가 그대로 녹아있는 듯한 슛, 발등에 얹힌 슛은 직선으로 골문으로 날아갔다. 수비수 다리를 통과해 김근배 골키퍼도 방향을 놓치기도 했다. 박동진은 "감독님이 인스텝으로 슈팅하라고 해서 때렸는데 그대로 들어갔다. 감독님이 '너는 (박)주영이 형처럼 기술이 없으니 감아차지 말라'고 해서 그냥 때렸다"고 말했다. 선제골이 박동진에게 단순하게 지시하는 최 감독, 그것을 군말 없이 따르는 박동진의 합작품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박동진의 프로 데뷔 골에 경기는 크게 요동쳤다. 서로 신중하게 경기를 치르던 와중에 균형이 깨졌기 때문. 기세가 오른 서울은 내리 두 골을 더 넣었다. 후반 10분엔 코너킥에서 행운섞인 오스마르의 '골반 슛'이 들어갔다. 후반 27분엔 역습 과정에서 페시치의 골까지 터졌다. 성남 남 감독은 "전반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잘했다. 찬스도 많았고, 슈팅도 많았다"면서 "못하고 있을 때 실점하는 것과, 잘하고 있을 때 실점하는 것은 다르다. 대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예상 외의 흐름에서 나온 박동진의 골이 타격을 줬다고 인정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장깃말이다. 하지만 박동진은 경기를 뒤흔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를 살린 것은 단점보다 '단순하다'는 장점에 집중한 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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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태 기자 yht@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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