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이 널 내보냈단다” 방출된 소년이 세계 1등으로…케인, ‘무관의 조롱’ 넘어 발롱도르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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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아버지는 여덟 살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스널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아이를 탓하지 않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며 더 열심히 노력해 다른 팀을 찾아보자고 다독였다.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형과 공을 차던 아이는 잉글랜드 주장이 됐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선수를 상징하는 발롱도르를 품에 안았다.
글로벌 스포츠 전문 ‘디 애슬레틱’은 27일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의 발롱도르 수상을 조명하며 런던 북동부 칭퍼드에서 시상식장인 런던 팔라디움까지 그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공원과 학교, 첫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을 자전거로 찾아 케인을 길러 낸 시간과 사람들을 담았다.
여정의 출발점은 리지웨이 공원이었다. 케인은 뒷마당이 공원과 맞닿은 집에서 자랐다. 나무를 골대 삼아 뛰었고, 때로는 집에 있던 골대를 울타리 너머로 옮겨 공을 찼다. 아버지가 골문을 지키면 네 살 위인 형 찰리와 몇 시간이고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케인은 잉글랜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형과 형 친구들 사이에 끼어 축구했다. 네 살이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더 악착같이 뛰게 됐다”며 “그곳에서 공을 차고 더 잘하려고 애쓰는 게 그저 좋았다”고 돌아봤다.
꿈이 처음 꺾인 곳도 그 공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아스널 아카데미에 몸담았던 케인은 아버지와 나란히 걷다가 방출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지도, 구단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더 노력하면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줬다.
케인은 2018년 ‘플레이어스 트리뷴’ 기고문에서 당시 아버지의 반응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밝혔다. 좌절할 법한 순간에 건넨 아버지의 격려는 어린 아들이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됐다.
이후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친정 리지웨이 로버스로 돌아간 케인은 여러 구단의 문을 두드렸다. 토트넘에서도 6주간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처음에는 선택받지 못했다. 왓퍼드 소속으로 토트넘을 상대해 좋은 경기력을 보인 뒤에야 기회가 열렸다.
케인은 “내게는 흰색 유니폼이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며 “아스널과 맞붙을 때마다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여덟 살 때 겪은 방출은 오래도록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조용한 성격과 달리 그라운드에서는 누구보다 지기 싫어했다.
칭퍼드 파운데이션 스쿨에서 5년간 케인을 지도한 데니스 매켈리것은 디 애슬레틱에 “조용하고 겸손한 아이였지만 경기장에서는 달랐다. 안에 강철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며 “그의 경기에서 심판을 보면 정말 까다로웠다. 그만큼 경쟁심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노력도 남달랐다. 원정 경기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주면 곧바로 다시 달리러 나갔다. 어린 학생이었지만 훈련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성인 선수 같았다는 게 스승의 설명이다.
지금의 케인을 만든 정확한 슈팅도 일찍부터 돋보였다.
매켈리것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개인기를 보여 주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왼발과 오른발, 발리와 하프발리로 골대 안쪽을 맞히는 슈팅을 수없이 했다”며 “중심이 무너지거나 다리를 크게 뒤로 젖히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찼다. 어릴 때의 능력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케인이 다닌 학교에는 또 다른 잉글랜드 주장의 흔적이 있었다. 선배 데이비드 베컴이 남긴 유니폼이었다. 어린 케인은 베컴이 모교에 보낸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보며 꿈을 키웠다. 자신도 데뷔한 뒤 유니폼을 학교에 보내 선배의 발자취를 따랐다.
열한 살 때는 베컴의 축구 아카데미 개장 행사에 초대됐다. 당시 사진에는 베컴 옆에서 활짝 웃는 케인이 담겼다. 반대편에 선 동갑내기 여학생은 같은 반 친구 케이티였다. 어린 시절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훗날 부부가 됐다.
동네 펍 ‘더 도브’에도 케인의 성장기가 남아 있다.
케인은 이곳에서 잉글랜드가 유로 2004와 2006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잇달아 승부차기로 패하는 모습을 보며 울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자신이 대표팀 주장이 돼 콜롬비아와 16강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었다. 친구들은 동네 영웅을 응원하는 펍의 풍경을 영상에 담아 그에게 보냈다.
성공한 뒤에도 고향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첫 소속팀 리지웨이 로버스가 훈련하는 피터 메이 스포츠센터에는 케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공을 든 채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뒤편 벽화에는 대표팀 데뷔와 주장 선임, 러시아 월드컵 활약상이 담겼다.
케인은 꾸준히 클럽을 찾는다. 그가 참석하는 행사 때면 함께할 아이들을 추첨으로 정해야 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오랫동안 리지웨이 로버스에서 지도한 코치 리아는 “축구를 즐기려는 아이도, 더 높은 수준을 꿈꾸는 아이도 있다”며 “해리의 존재는 선수와 코치들이 이곳에서 계속 기회를 찾는 데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고향에서 조금만 더 가면 케인의 이름이 가장 뜨겁게 울려 퍼졌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 닿는다.
케인은 토트넘에서 280골을 터뜨리며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로 우뚝 섰다. 팀의 간판 공격수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을 이끌었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도 올랐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우승 트로피는 끝내 손에 넣지 못했다.
독일로 떠난 뒤에도 토트넘 팬들의 애정은 남았다. 경기장 인근 카페 주인은 디 애슬레틱에 “우리 모두 해리가 발롱도르를 받기를 바란다. 구단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했다”며 “다만 토트넘에 있을 때 받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프로 무대의 첫걸음을 내디딘 곳은 레이턴 오리엔트였다. 2011년 1월, 출전 기회를 찾아 임대된 열일곱 살 공격수는 리그 첫 선발 경기인 셰필드 웬즈데이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먼 쪽 골포스트로 쇄도해 몸을 뻗으며 공을 밀어 넣었다. 훗날 세계적인 골잡이의 무기가 되는 위치 선정과 예측력이 엿보인 장면이었다.
당시 사령탑 러셀 슬레이드는 “좋은 수준의 선수로 성장할 거라고는 생각했다”면서도 “프리미어리그 정상급과 국가대표 무대에서까지 그렇게 될지는 당시 장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 소년이 세월을 건너 런던 팔라디움의 레드카펫에 섰다.
케인은 아내와 함께 미소 지으며 입장했지만 긴장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DAZN에 “조금 긴장된다. 거짓말은 못 하겠다”며 생애 첫 발롱도르를 기다리는 심정을 전했다.
마침내 호나우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케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에른 동료들과 차례로 포옹했다. 극장 안에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이 번졌다.
우승하지 못한다는 오랜 조롱을 바이에른에서의 성공으로 털어 낸 케인은 최고의 개인상까지 손에 넣었다. 런던 출신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디 애슬레틱은 극장 밖을 지나는 55번 버스에 시선을 두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버스 앞면에 적힌 종착지는 월섬스토 센트럴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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