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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한국과 홍콩의 오랜 축구 인연

작성일: 2017.02.07 23:00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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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울산과 홍콩 리그 키치 SC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본선 티켓을 놓고 맞붙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7일 밤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울산 현대와 키치 SC의 2017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아주 오랜만에 홍콩 축구를 봤다. ‘직관’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글쓴이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과 홍콩의 축구 경기를 본 게 40여년 전 일이다. 
   
1974년 제10회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는 1970년 한 해 동안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태국 방콕), 메르데카배(말레이시아), 킹스컵(태국) 우승을 휩쓸며 기세를 올렸다. 그해 에우제비오와 움베르투 쿠엘류 등이 포함된 포르투갈의 명문 클럽 벤피카, 1972년에는 펠레가 이끄는 산토스 클럽과 친선경기를 갖는 등 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맞이한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1차 예선. A 그룹 1조에서는 홍콩과 일본이 조 1위와 2위로, 2조에서는 이스라엘과 한국이 조 1위와 2위로 그룹 준결승에 올랐다. 조 경기에서 일본을 1-0으로 잡은 홍콩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준결승에서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3으로 져 탈락했다. 

그러나 홍콩은 프로 리그 홍콩 레인저스에서 활약하고 있던 주 공격수 곽가명(郭家明, 곽카밍)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 국내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레인저스는 2017년 현재 11개 클럽으로 운용되고 있는 홍콩 리그의 멤버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치른 A 그룹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차범근의 통렬한 결승 골로 1-0으로 이겼으나 B 그룹 결승에서 이란을 1, 2차전 합계 3-2로 누르고 올라온 호주와 시드니 원정과 서울 홈에서 각각 0-0, 2-2로 비긴 뒤 제3 지역 홍콩에서 열린 경기에서 0-1로 져 또다시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이에 앞서 한국은 홍콩과 1940년대 후반~1970년대에 걸쳐 40차례에 가까운 경기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48년 7월 6일 경기다. 대한축구협회 자료에는 A 매치로 분류돼 있지 않지만 1945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한국 축구 대표 팀이 특정 협회(또는 나라) 대표 팀과 경기를 펼친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다. 당시 상황은 아래와 같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 팀은 차순종, 홍덕영, 박규정, 박대종, 이시동, 민병대, 이유형, 김규환, 최성곤, 우정환, 배종호, 정남식, 김용식, 정국진, 안종수, 오경환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 가운데 김용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김용식과 이유형, 배종호, 박규정 등은 일본이 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에 대비해 1936년 11월 소집한 국가 대표 팀 명단에 들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실력을 인정받은 베테랑들이 신생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1948년 6월 21일 서울 종로에 있는 YMCA회관에 모인 축구 선수들을 포함한 67명의 한국 선수단은 서울역까지 행진한 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배편으로 후쿠오카에 갔고 그곳에서 기차 편으로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배편으로 홍콩으로 간 뒤 홍콩에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항공기를 이용해 방콕→캘커타(오늘날의 콜카타)→바그다드→아테네→로마→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축구 대표 팀은 경유지인 홍콩에서 홍콩 대표 팀과 친선경기를 가져 5-1로 이겼다. 당시 축구 관계자들은 이 경기를 당연히 한국 축구사의 첫 국가 대표 팀간 경기로 여겼다. 

다시 1970년대로 돌아가면 그 무렵 골키퍼 변호영을 비롯해 적지 않은 한국 선수들이 홍콩 프로 리그에 진출했다. 1978년 12월 차범근이 서독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에 입단하기 전의 일이다. 유럽 리그만큼 수준이 높지 않았지만 당시 세미프로 형태인 국내 실업 팀 소속 선수들 연봉의 두 배쯤 되는 대우를 받았으니 홍콩 리그는 가 볼 만한 곳이었다. 

홍콩 리그에서 활동하던 한국 선수들은 1983년 슈퍼리그가 출범하자 국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김정남 전 국가 대표 팀 감독의 쌍둥이 동생인 강남-성남은 유공, 박병철은 럭키금성 유니폼을 각각 입었다. 중·장년 축구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이강민(->할렐루야) 김황호(->NASL, 북미프로축구 MSL 전신) 등도 홍콩 리그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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