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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 '코리아'의 감격을 다시 한번…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9·끝)

작성일: 2017.05.08 10:52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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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부산 하계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로 개·폐회식에서 남북이 공동 입장했다. ⓒ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일제 치하에서 한 뿌리로 출발한 남북 스포츠는 8∙15 해방의 감격도 잠시, 국토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져 스포츠를 내세운 체제 경쟁의 총칼 없는 전쟁 양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정치와 이념, 종교의 벽을 넘어 인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스포츠가 순수성을 상실한 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오직 승리만을 위해 처절한 대결을 벌인 것이 남북 스포츠의 뼈아픈 현실이었다.

남북한 체육 교류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1963년 스위스 로잔 회담으로 시작됐으나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지 못하다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직후 성사된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직후 남북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축구 대회를 개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대회 단일팀 구성을 성사해 스포츠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큰 성과를 거뒀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대회에 남과 북이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자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집중됐다. 스포츠로 남북 교류가 현실화 되는 것으로 인식됐으나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과 더불어 북한이 폐쇄 정책으로 급선회해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그 뒤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구성 문제가 대두됐지만 북 측의 거부로 무산됐고 민간 부문에서 남북 노동자 축구 대회와 현대 통일 농구 교환 경기, 금강산 자동차 경주 대회 등 스포츠를 매개로 교류가 이어지다가 2000년 6∙15 남북 협력 공동 선언에 따라 시드니 하계 올림픽 개·폐회식 공동 입장이 성사되고 국내적으로는 제81회 부산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금강산에서 채화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남북 스포츠 교류는 2001년 4월 오사카에서 열린 제4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공동 응원이 성사돼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지만 이 대회의 단일팀 구성은 끝내 무산됐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국제종합경기대회인 2002년 부산 하계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고 남북 태권도 시범단 교류도 이뤄지는 등 남북 스포츠 교류는 민간 차원을 포함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2005년 말부터 대두된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가 남북 체육계에 큰 과제로 등장했다. 두 대회의 단일팀 구성 문제는 원론적으로는 남북 모두가 찬성했지만 세부 사항에 들어가서는 견해 차이가 너무 커 도저히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2007년 10월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남북 공동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합의해 남북 스포츠 교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으나 정권 교체기인데다 2008년 한국 관광객의 금강산 피살 사건이 겹쳐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공동 응원단 파견, 선수단 공동 입장 등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남북 스포츠 관련 회담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지만 북한은 2009년 4월 서울에서 열린 2010년 남아프리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를 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개회식에서 처음 이뤄진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은 2007년까지 9차례나 계속됐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과 8월 자카르타 하계 아시아경기대회, 나아가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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