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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에서 고척스카이돔까지, 34년 전 프로 야구 뒷얘기

작성일: 2016.04.01 10:37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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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척스카이돔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82년 3월 27일 글쓴이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서1문에서 관중들의 입장을 돕고 있었다. 야구 올드 팬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서1문은 본부석에 가까운 1루 내야석으로 들어가는 곳이었다. 중앙문 다음으로 중요한 출입구였다. 경기 개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오전 9시께부터 몰리기 시작한 팬들이 한창 입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앙문 쪽이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몇몇 일본인이 청와대 경호실, 경찰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KBO에 사전 통보 없이 입국해 경기장에 들어가겠다며 떼를 쓰고 있었다. 국내 기자들은 개막 며칠 전 KBO를 거쳐 신분 확인 절차를 마쳤다.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히자 한 일본 기자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장훈(재일동포 야구인) 이야기를 하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출장을 왔다.”일본 기자들은 여권을 압류당한 뒤에야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은 MBC 청룡-삼성 라이온즈의 역사적인 프로 야구 개막전을 보려는 팬들로 송곳을 세울 수 없을 만큼 관중이 들어찼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관중석에서는 이내 스탠드 전체가 푹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다. 쌀을 됫박에 담고 두어 번 흔들면 가라앉듯이. 왜 그랬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시구가 끝나기 전까지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국 프로 야구가 시작됐다. 

미국의 한 방송사는 한국 프로 야구 개막전 관련 스케치를 위성으로 연결해 생방송했다. 인터뷰 상대자로는 김창웅 KBO 초대 홍보실장이 나섰다. 2014년 작고한 김 실장은 서울신문이 발행한 ‘TV가이드’취재부장을 지내다 이용일 KBO 초대 사무총장의 권유로 프로 야구 출범에 함께했다.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인 김 실장이 작성한 서종철 KBO 초대 총재의 취임사 가운데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꿈을 키워 주며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 밝고 건강한 여가 선용을 약속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지금도 야구 기자들이 종종 인용하곤 한다. 김 실장은 몇 년 전 새롭게 가다듬은 프로 야구 로고타입과 심볼 마크 등을 일찌감치 만든 것을 비롯해 고 이종남 기자와 함께 프로 야구 첫해 연감을 기획해 제작하는 등 프로 야구 초창기 많은 일을 했다.

김 실장은 KBO 근무를 마치고 1987년 3월 평생의 꿈이던 야구 전문 매체 ‘주간 야구’를 창간하고 수많은 야구 전문 기자를 키워 내 야구 기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이바지했다. 정태화(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이원재(법무사) 김종건(스포츠동아 전문 기자) 문상열(스포티비뉴스 미국 특파원) 이창호(야구 전문 프리랜스 기자) 이효봉(스카이스포츠 야구 해설 위원) 김대호(MK스포츠 편집국장) 유해길(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천병혁(연합뉴스 체육부장) 이태일(NC 다이노스 대표이사) 등은 대표적인 ‘주간 야구’기자 출신들이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의 박기철 스포츠투아이 부사장이 기록원으로 KBO에 합류한 일도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여러 분야의 인물들이 모여 힘쓴 덕에 프로 야구는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 프로 야구는 미국과 일본 야구 기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취재거리가 됐다. 

개막전 이후 많은 외국 기자들이 한국 프로 야구를 취재하기 위해 KBO 사무실을 찾았다. 그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기자가 있다. ‘성조기신문(Stars & Stripes)’의 데이브 오나우어다. 카우보이모자를 즐겨 쓴 그는 도쿄에 주재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서울을 찾아 한국 프로 야구 관련 기사를 취재해 썼다. 그의 발품에 힘입어 주한 미군 사이에 한국 프로 야구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 경기별 스코어까지 성조기신문에 실렸다. 

오나우어 기자가 쓴 여러 기사에서 재미있었던 내용은 먹을거리 정보였다. 핫도그와 얼음 조각을 띄운 콜라에 익숙한 그에게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앞에서 파는 ‘Seaweed & Rice(김밥)’와 ‘Cuttle fish(오징어)’는 무척 신기했을 것이다. 오나우어가 30년 쯤 뒤에 야구 기자를 했으면 분명히 ‘치맥’기사를 썼을 것이다. 국내 기자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한국 프로 야구 기사를 쓴 오나우어 기자는, 그러나 오징어의 친구가 소주였다는 사실은 끝내 취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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