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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강수연 발인-故이춘연 1주기에 부쳐[김현록의 사심록(錄)]

작성일: 2022.05.10 22:00 김현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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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강수연. 제공|여성영화인협회
▲ 故강수연. 제공|여성영화인협회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7일 별세한 배우 고 강수연의 발인이 11일 엄수된다. 공교롭게도 꼭 1년 전 이날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인에겐 잔인한 5월이라고, 삼삼오오 고 강수연의 빈소에 모인 이들은 5월에 떠나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아직 한창인데, 너무나 아까운데 할뿐, 문장을 잘 맺지 못했다.

대배우 강수연도, 영화계 큰어른 이춘연 대표도, 이 아름다운 달에 황망하고도 갑작스럽게 작별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칸영화제 참석 중 작고한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도 그랬다. 모두 양지에서 음지에서 묵묵하게 큰 몫을 했던 든든하고도 사랑스러운 분들이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성장과 부침을 함께한 핵심멤버다. 부집행위원장에 올랐지만 늘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한국과 아시아를 비롯해 전세계의 영화인과 '친구'로 마음을 나눈 그 덕에 부산영화제는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정치권의 전방위 외압이 이어진 엄혹한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 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제공|부산국제영화제
▲ 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이춘연 대표는 한국의 중견 영화제작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영화인회의 이사장이기도 했던 그는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부산국제영화제 외압 논란 등 영화인의 힘이 필요한 곳에 늘 함께했다. 표 안 나는 대소사도 늘 앞서서 챙긴 '맏형'이자 큰 어른이며 마당발이었다. 한 영화관계자는 믿기지 않는 갑작스런 부고에 자료사진을 황급히 찾다 갑자기 울컥했다고 했다. 모든 곳에 그가 있는데, 가운데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 컷을 찾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는 그런 분이었다.

강수연은 이름 세 글자로 한국영화를 대변했던 세기의 배우다. 미모와 카리스마, 연기력을 겸비했던 한국 첫 월드스타의 커리어야 다시 읊기 민망할 정도다.

2000년대 들어 활동이 뜸했던 그가 갑자기 영화계 전면에 나선 건 바람 앞 등불 같았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서였다. 지키기 위해 포기도 해야 한다며 보이콧하는 영화인도 여럿이었던 2015~2017년, 집행위원장이었던 그는 흡사 잔다르크 같았다.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에 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명대사가 강수연의 술자리 멘트였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이미지 소비를 경계했지만, 범접하기 힘든 위상과 꼿꼿한 위엄을 기꺼이 영화제를 위해 썼다. 필요한 순간엔 기꺼이 '집행위원장 강수연' 명의로 입장을 내고 따졌다. 허나 '영화제의 얼굴'이란 소리엔 질색했다. 영화제의 얼굴은 영화일 뿐이라면서.

그랬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제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고 강수연의 장례를 사실상 챙기고 있다니 어딘지 먹먹해진다. 영화제의 힘든 시기를 그녀와 함께한 김동호 장례위원장은 3일 내내 직접 조문객을 맞았다.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실감난다. 5월에 떠난 분들이 그랬고, 아직 현실같지 않은 고 강수연과의 작별도 또한 그러할 것 같다. 그곳에서도 영화인이실 것 같은, 열정적이나 따뜻했던 분들을 그리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제공|故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 제공|故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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