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조현일의 NBA액션]제 2의 삶을 살아가는 NBA 선수들

작성일: 2015.02.26 12:32 조현일 해설위원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SPOTV NEWS=조현일 해설위원]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고민이 있다. 바로 현역 은퇴 이후의 삶이다. 보통 선수생활을 마치는 때는 30대 후반.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혹은 넘거나) 이들에게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만큼 이 사회는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 

더구나 평생을 운동만 바라보고 산 이들이기에 일반인들보다 더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NBA 선수들도 마찬가지. 매 경기 뜨거운 몸놀림으로 코트를 누비는 현역 NBA리거들이지만 연차가 쌓이고 몸 이곳저곳에 통증이 찾아올수록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늘어간다.

◆1순위는 지도자

NBA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는 코칭스태프다. 코치든, 감독이든 현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여기에 젊음을 바쳤던 코트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종의 ‘로망’도 지도자에 대한 야망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얼마 없는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견실한 가드로 이름을 날렸던 스캇 스카일스(전 밀워키 벅스 감독)나 바이런 스캇(현 LA 레이커스 감독), 제이슨 키드(현 밀워키 벅스 감독)는 일찌감치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인물들이다. 셋 모두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지휘봉을 잡았다. 

30개 팀 감독의 상당수가 NBA 현역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브루클린 네츠의 라이오넬 홀린스 감독은 준수한 포인트가드 자원이었고 피닉스 선즈, 뉴욕 닉스를 거쳐 LA 레이커스 감독을 지냈던 마이크 댄토니는 NBA 올-루키 세컨드 팀에 뽑힌 유망주였다. 

비디오 분석원으로 NBA와 인연을 쌓은 에릭 스포엘스트라(현 마이애미 히트 감독), 대학팀 매니저로 시작해 NBA 감독으로 거듭난 로렌스 프랭크(전 뉴저지 네츠 감독) 정도가 특이한 이력일 뿐, 대다수의 감독들이 프로 선수 생활을 지냈다. 

한정된 자리인 만큼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가운데 마크 잭슨(현 NBA 해설위원)은 감독이 되기까지 마음고생이 매우 심했다. 지난 2004년,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잭슨은 줄곧 감독직을 노렸다. 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LA 클리퍼스를 비롯해 뉴욕 닉스, LA 레이커스 등 여러 NBA 팀들과 면접을 봤지만 돌아온 건 불합격 통보 뿐이었다. 지난 2011-12시즌, 마침내 NBA 감독(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이 된 잭슨은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속이 다 시원하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NBA 감독 커리어는 3년이 전부였다.

뉴욕 닉스 시절, 잭슨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패트릭 유잉은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휴스턴 로케츠, 워싱턴 위저즈, 올랜도 매직을 거치며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NBA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했지만 유잉이라는 이름 뒤에 ‘감독’ 타이틀은 붙지 않고 있다. 심지어 2010년 9월, NBA 하부리그인 D-리그의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유잉은 모욕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조던이 3,000만 달러 연봉시대를 열기 전까지 수 년 간 NBA 최다연봉자로 군림했던 그였기에 먹고 살 걱정은 전혀 없다. 수년째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종 관문인 감독의 꿈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킹콩’은 언제쯤 어시스턴트 코치가 아닌, 헤드 코치가 될 수 있을까.

◆경영자부터 방송인까지

스티브 커, 존 팩슨(이상 전 시카고 불스), 대니 에인지(전 보스턴 셀틱스, 현 보스턴 단장), 대니 페리(현 애틀랜타 호크스 단장). NBA 팀의 경영진에 합류한 이들이다. 네 명 모두 백인에다 화려한 언변, 명석한 두뇌를 겸비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커의 경우 방송 해설자를 거쳐 워리어스의 감독을 지내고 있는데 단장(피닉스 선즈)으로도 유능함을 과시한 바 있다.  

이 4명의 경우, 슈퍼스타(커, 팩슨_ 마이클 조던/에인지_ 래리 버드/페리_ 팀 던컨)들을 보좌하며 팀에 필요한 조각으로 활약한 롤 플레이어들이었다. NBA 내 흑인/백인 선수 비율에 비해 경영진만큼은 여전히 백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돌아가는 모양새다. 또 선수 뿐만 아니라 현역 NBA 감독보다도 월등히 높은 비율을 자랑할 정도로 백인 경영자들의 왕성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빌리 킹처럼 필라델피아 76ers-브루클린 네츠를 거치면서 성공적인 단장으로 명성을 쌓고 있는 흑인 경영자들도 존재한다. 1998년 파이널 포에 진출한 듀크 대학의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킹은 현역에서 물러난 후 1997년부터 착실히 경영자 수업을 쌓아왔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경영자로서의 입지 만큼은 굳건히 다진 셈이다. 

‘더 글러브’라는 멋진 별명으로 불렸던 게리 페이튼도 성공적인 경영자를 꿈꾸고 있다. 페이튼은 2012년 방한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도자도 나쁘지 않지만 NBA 팀의 경영진으로 합류하는 것이 내 최종 목표다”라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아직 젊은 나이(1968년생)임을 감안하면 기회의 문은 충분히 열려있다. 

페이튼과 함께 올-NBA 수비 퍼스트 팀에 9차례 이름을 올린 케빈 가넷은 트레이드 마감일을 통해 8년 만에 미네소타로 복귀했다. “미네소타의 구단주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밝힌 가넷이 은퇴 이후, 조던(샬럿 호네츠 구단주)과 더불어 선수 출신 NBA 구단주가 될 수 있을지 여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율로만 따지면 이 직업의 지분율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싶다. 농구 해설위원이 그것. 숀 엘리엇, 찰스 바클리,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등 NBA를 주름 잡았던 주역들이 NBA 해설위원으로 땀 흘리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 해설위원의 삶은 선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홈경기일 경우, 출퇴근을 하지만 원정경기는 모두 해당 팀과 함께 움직인다. 비행 거리나 시즌 일정만 놓고 보면 선수 때와 다를 것이 없다. 10여 년 동안 늘 해왔던 일상이기에 적응도 수월하다.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많은 이들이 호시탐탐 해설위원 자리를 노릴 정도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전언이다. 

◆이색 직업도 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수들도 있다. 1990년대 중반, 레지 밀러를 보좌하며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벤치를 이끌었던 헤이우드 워크맨이 대표적으로 2008-09시즌부터 7년째 NBA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은퇴 후 감독을 원한다. 하지만 난 좀 다른 길을 원했다. 바로 심판이다. 그런데 이 직업을 원하는 선수는 별로 없다.” 워크맨의 말이다. 

NBA 선수 출신 심판은 워크맨을 포함해 역대 세 명 밖에 없다. 68년에 달하는 NBA의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 워크맨에 앞서 NBA 심판을 제 2의 직업으로 삼았던 주인공은 리온 우드와 버니 프라이어다. 

우드는 전형적인 저니맨으로 1984년부터 91년까지 6팀을 거치며 6.4점을 기록한 평범한 선수였다. 프라이어는 더 초라했는데 1973년부터 2년 간 세 팀을 오가면서 6.2득점에 그쳤다. 극성 NBA 팬이 아니라면 둘 모두 기억조차 희미한 무명선수들. 5팀을 거치는 동안 평균 5.5점을 기록한 워크맨은 이 셋 중에 가장 긴 8년의 세월을 NBA 선수로 보냈다. 

워크맨은 심판을 제 2의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몇몇 선수들이 감독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인맥이 있어야 하더라. 난 그러질 못했다. 대신 심판은 달랐다.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으니까.” 하지만 심판은 지도자 만큼이나 좁고 힘든 통로였다. 워크맨은 “처음부터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2003년에는 자비로 NBA 섬머리그에 참여해 경험을 쌓기도 했다"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왜 NBA 선수들은 심판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일까. 심판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웨이드 모어헤드는 이렇게 말한다. “선수들 스스로가 심판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끌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 선수들이 가장 만만하게 화풀이 할 수 있는 코트 위 대상은 팀 내 후배도, 상대편 선수도 아닌 심판이다. 연차가 짧거나 상대적으로 명성이 떨어지는 초보 심판에게는 더더욱 가혹하게 대한다. 선수들 스스로가 그 고충을 알기 때문에 심판이라는 직업을 배제하게 된다는 모어헤드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선수들의 심판 기피 현상은 결국 리그 입장에선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규칙과 경기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선수들이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 심판이라는 직업이 주는 중압감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모어헤드는 “헤이우드처럼 새로운 일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꾸준히 보여준다면 리그 측면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며 제 2의, 제 3의 워크맨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물론 심판의 길은 쉽지 않다. 원정 여행은 길고 외로우며 날씨도 춥다. 선수 시절처럼 전세기는 꿈도 꾸지 못한다. 5성급 호텔도 없다. 워크맨도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다. “경기가 끝난 후 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망만 있다면 긍정적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 발전하고자 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워크맨은 NBA 심판이라는 직업을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어느덧 7년 차 베테랑이 된 워크맨의 후계자가 하루 빨리 나타나길 기대해 보자. 

◆에이전트로 변신한 BJ 암스트롱

1990년대 초반, 시카고 불스의 3연패에 일조한 BJ 암스트롱은 은퇴 이후 불스 구단의 프런트로 변신해 열심히 코트 안팎을 누볐다. 이후 불스 스카우터를 거쳐 『ESPN』 해설자로도 활약했다. 암스트롱은 다시 한 번 변화를 택한다. 은퇴 이후 네 번째 직업은 에이전트. 아무도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암스트롱이 보살피고 있는 선수 가운데 가장 거물급 스타는 데릭 로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활약 중인 드레이먼드 그린의 에이전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이 10년 넘게 NBA에서 쌓았던 경험을 들려주는 멘토 역할도 잊지 않는다. 

암스트롱은 “좋은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선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연한 사고와 더불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잘 잡아내는 센스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라며 자신만의 이론을 밝혔다. 동안의 외모와 달리, 팀 연습 도중 조던과 싸움을 벌일 정도로 근성이 넘쳤던 암스트롱은 은퇴 이후에도 열정과 에너지를 마음껏 내비치고 있다. 

매년 500여 명의 선수들이 NBA를 누비고 있다. 이들 모두가 농구와의 인연을 이어갈 순 없을 터. 하지만 전쟁터와 같은 농구 코트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그들이 헤쳐 나가지 못할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열정과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다.  

[사진] 은퇴 후 샬럿 구단주가 된 마이클 조던 ⓒ 게티이미지

조현일 해설위원 sports@spotvnews.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