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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선물한 낭만…38살 베테랑 자존심도, 5년의 눈물도 지켰다

작성일: 2023.05.24 05:02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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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준 ⓒ곽혜미 기자
▲ 장원준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본인도 아마 선발을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고개를 가로저었던 사령탑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두산 베어스 베테랑 좌완 장원준(38)이 무려 5년 만에 1승을 더해 개인 통산 130승 대기록을 작성했다. 불굴의 의지로 버틴 장원준과 장원준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바란 이승엽 두산 감독의 지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장원준은 2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70구 7피안타 무4사구 4탈삼진 4실점을 기록하며 130승을 달성했다. 두산 타선은 장단 14안타를 터트리며 7-5 역전승과 함께 장원준의 시즌 130승을 선물했다. 장원준은 지난 2018년 5월 5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개인 통산 129승 거둔 뒤 1844일 만에 1승을 추가했다.

이 감독이 지난해 10월 막 부임했을 때 장원준은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구단은 2021년 시즌 뒤 은퇴 위기였던 장원준에게 이미 한 차례 기회를 준 상태였는데, 2022년 27경기, 1패, 6홀드, 17이닝, 평균자책점 3.71에 그쳤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구위 자체가 전성기에 크게 못 미쳤다. 올해는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도 흘러나왔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베테랑의 손을 잡은 건 이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부임 당시 "선수가 아직 은퇴 생각이 없는데, 여기서 그만두라고 했을 때 129승을 한 투수가 다른 팀을 알아보고 안 되면, 어떻게 보면 불명예 은퇴니까. 레전드들은 대우해주고 싶다"며 "후회 없이 뛰었으면 한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후배들과 경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장원준은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기회를 쭉 받았으나 구위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 감독은 냉정히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2군에서 시즌을 맞이하게 했는데, 이때 선발투수로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도 그렇고 최근 계속 불펜으로 나섰지만, 본인도 아마 선발을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초반에는 나도 불펜을 생각했지만, 시범경기 때 구위가 좋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선발을 준비했는데 좋은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왕년의 좌완 에이스를 마지막까지 대우하면서 자존심을 지켜주는 방법으로 선발 등판을 고려한 것이다. 

장원준의 마음도 같았다. 장원준은 "계속 아프고, 중간 투수로 나서면서 자꾸 아쉬움과 후회가 남더라. 이렇게 그만두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마운드에서 내 공을 못 던지고 후회와 미련을 남기고 내려오느니 가운데 던져서 홈런을 맞더라도 내 공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털어놨다. 

▲ 장원준 양의지 ⓒ곽혜미 기자
▲ 장원준 양의지 ⓒ곽혜미 기자

물론 장원준이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았더라면,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이 감독은 장원준과 처음 손을 잡을 때부터 "레전드라고 그냥 경기장에서 뛰게 해주는 것은 본인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원준은 2군에서 권명철 투수코치의 제안으로 개막 직전 투심패스트볼을 장착했는데, 덕분에 새로운 투구 패턴을 만들면서 구속 상승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장원준은 최고 구속 140㎞, 평균 구속 139㎞ 투심패스트볼(31개)과 130㎞ 초반대 슬라이더(24개)를 주로 던지면서 삼성 타자들과 싸워 나갔다. 체인지업(10개), 직구(4개), 커브(1개) 등도 적재적소에 섞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1㎞까지 나왔다. 

포수 양의지는 "직구 구속이 좋았던 것 같다. 전광판을 보니까 140㎞ 이상 찍히더라. (장)원준이 형은 그날 140㎞만 나와도 치기 어려운 공인 것을 알아서 여러가지를 섞은 효과를 봤다. 투심패스트볼도 좋았고, 한번씩 던지는 직구도 타자들이 조금 많이 타이밍이 늦었던 것 같다. 체인지업도 구석에 잘 던져 범타 유도를 잘했다"며 엄지를 들었다. 

사실 장원준은 크게 2차례 조기 강판 위기가 있었다. 1-0으로 앞선 2회초 대거 4실점했을 때가 첫 고비였다. 3회말 타선이 5점을 뽑아 6-4로 뒤집으면서 삼성의 기세를 꺾어두지 않았더라면, 마운드에서 5이닝까지 버틸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확률이 높다. 

2번째 고비는 4회초 선두타자 오재일에게 좌중간 안타를 허용한 뒤였다. 이 감독은 이때부터 불펜에 김명신을 대기시키며 몸을 풀게 했다. 여차하면 바꾸겠다는 신호였다. 장원준은 여기서 김태군을 유격수 병살타로 돌려세우면서 김명신이 다시 벤치로 돌아가 앉게 했다. 5회초에는 김지찬-김현준-구자욱으로 이어지는 상위 타선을 삼자범퇴로 깔끔히 틀어막으면서 임무를 완수했다. 6회부터는 박치국(1이닝)-이병헌(⅓이닝 1실점)-김명신(⅔이닝)-정철원(1이닝)-홍건희(1이닝)가 이어 던지며 승리를 지켰다. 

▲ 장원준 이승엽 감독 ⓒ곽혜미 기자
▲ 장원준 이승엽 감독 ⓒ곽혜미 기자

양의지는 "중간에 흔들릴 때 감독님께서 '볼 괜찮냐'고 물으셔서 '괜찮다'고 했다. 5회까지 (마운드에서) 안 내려서 원준이 형도 편히 던졌을 것 같다. 안 그러고 또 금방 바뀌었으면, 원준이 형도 다음 경기 때까지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 감독의 믿음이 없었다면 5이닝 투구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원준은 130승 달성 직후 "홀가분한 것도 있고, 마음 한구석에는 선발로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더라도 (선발로)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올해 어쨌든 기회를 주셔서 후회 없이 던졌던 것 같다"며 이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레전드의 130승 달성은 후배 투수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됐다. 20살 좌완 이병헌은 자신의 SNS에 장원준의 130승 기념사진과 함께 "이런 역사적인 날 깔끔하게 막지 못해 아쉽다. 항상 존경한다"는 글을 남겼고, 셋업맨 정철원(24) 역시 SNS에 "선배님 뒤에 꼭 한번 던져보고 싶었다. 감사하고 축하드린다"고 적었다. 

130승은 장원준이 단 한번이라도 레전드답게 대우를 받고, 원 없이 공을 던진 뒤에 유니폼을 벗길 바랐던 이 감독이 선물한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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