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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림픽 출전사 ⑳단군 이래 가장 큰 국제 행사,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

작성일: 2016.07.25 07:00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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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2관왕이 된 양궁 김수녕이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제 24회 하계 올림픽이 개막한 1988년 9월 17일 서울의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렀다. 세계적인 명품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용고(龍鼓)가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들어서며 시작된 화려하고 웅장한 개회식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된 가운데 그룹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8만여 관중이 입을 모아 노래하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태초의 빛‘ 등 개회식 식전 행사에 이어 진행된 본 행사에서 그리스를 선두로 한 참가국 선수단이 입장한 뒤 박세직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의 대회사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노태우 대통령이 개회를 선언했다. ’반쪽 대회‘로 치러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 나라들이 입장할 때 관중들은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8월 23일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가 손기정에 의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나타나자 8만여 관중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잠실벌에 울려 퍼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76살의 손기정은 경기장 입구에서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육상경기 3관왕인 19살의 임춘애에게 성화를 넘겨 줬다. 일제 강점기 질곡의 시대에서 21세기 희망의 시대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임춘애는 트랙을 일주한 뒤 올림픽 사상 처음 리프트 방식으로 올라가 성화대에 불을 붙일 마라토너 김원탁 등 3인의 점화자에게 성화를 넘겼다. 허재(남자 농구)와 손미나(여자 핸드볼)는 전체 선수단, 이학래(유도)는 전체 심판단을 대표해 정정당당히 겨루고 공명정대한 판정을 하겠다고 선서했다. 성화가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화관무'와 '고놀이' 등 한국 고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식후 행사는 TV 생중계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안방으로 전달됐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2학년 최경은은 자신이 출연하는 ‘태초의 빛’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잘하자, 잘하자.’그의 앞뒤에 있는 출연자들은 아예 소리 내 다짐하고 있었다. “잘해야 해, 잘해야 해.”이화여대 무용과 1~4학년 학생 전원과 서울 시내 여러 고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세종대 무용과 남학생 등 1,300여 명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는 이들이 그리는 ‘WELCOME’ ‘어서 오세요’ 글씨가 아로새겨졌고 공연 마지막에는 이날 개막식 식전 행사에서 가장 많은 박수와 환성이 터진 선명한 빛깔의 서울 올림픽 엠블럼이 펼쳐졌다. 여름 방학 내내 효창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에서 땀 흘려 준비한 출연자들은 공연이 끝나고 서로를 격려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도 있었다. 서울 올림픽은 이들과 같은 출연자와 2만7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대회가 됐다. 
▲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 식전 행사에서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서울 올림픽 엠블럼을 이용한 공연. ⓒ대한체육회

 
서울 올림픽에서는 IOC 회원국 가운데 북한과 쿠바, 알바니아,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세이셸, 니카라과 등 7개국을 뺀 160개국 1만3천600명의 선수단이 23개 정식 종목과 3개 시범종목, 2개 전시 종목에 걸쳐 16일 동안 기량을 겨뤘다. 아루바, 몰디브 등 8개국은 서울 대회가 올림픽 데뷔 무대였다. 237개 세부 종목에서 메달을 다툰 스포츠 강국들의 치열한 싸움에서 소련은 금메달 55개와 은메달 31개, 동메달 46개로 여유 있게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동독(금 37, 은 35, 동 30)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다시 한번 미국(금 36, 은 31, 동 27)을 따돌리고 2위에 올라 '동독 스포츠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한국은 금메달 12개와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스포츠 강국 서독(금 11, 은 14, 동 15)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한국은 올림픽을 무대로 삼아 겨룬 아시아 3강 경쟁에서 중국(금 5,  은 11,  동 12)과 일본(금 4, 은 3, 동 7)에 여유 있게 앞섰다. 

양궁은 남녀 단체전과 남녀 개인전 등 4개 세부 종목 가운데 남자 개인전을 뺀 3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었고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 등 모두 6개의 메달로 한국이 4강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김수녕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과녁을 명중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2관왕이 됐다. 여자 개인전에서는 김수녕과 왕희경, 윤영숙이 1위~3위를 휩쓸었다. 남자 개인전의 박성수는 은메달을 보탰다. 양궁 종목이 열린 태릉 육군사관학교 경기장에서는 쉴 새 없이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사격에서는 차영철이 소구경소총 복사에서 702.8점을 쏴 체코의 미로슬라브 바르가(703.9점)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사격 종목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발굴한 전병관은 역도 52kg급에서 합계 260kg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은메달을 들어 올렸다. 전병관은 당시 세계 기록을 갖고 있던 중국의 허조우지앙을 2.5kg 차로 따돌렸다. 82.5kg급의 이형근은 합계 367.5kg으로 동메달을 보탰다. 두 선수의 메달은 1956년 멜버른 대회 라이트급 김창희의 동메달 이후 32년 만에 역도에서 나온 올림픽 메달이었다.  박종훈은 기계체조 남자 뜀틀에서 19.775점의 연기를 펼치며 중국의 로우윤(19.875), 동독의 실비오 크롤(19.862)에 이어 동메달을 땄다. 체조는 1960년 도쿄 대회에 처음 나선 이후 28년 만에 첫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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