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악수한 남 진종오와 북 김성국, 남 박종길 악수 거부한 북 서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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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진종오는 동메달을 목에 건 북한의 김성국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진종오는 시상대에서 김성국과 손을 맞잡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악수하는 장면이 자연스러웠다.
글쓴이는 이 장면에서 1970년대 어느 순간을 떠올렸다. 1970년~80년대 사격 권총 종목의 간판 스타는 박종길이었다. 진종오의 대선배다. 세계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권총 명사수였다. 잠시 박종길을 소개한다.
박종길은 1978년 방콕 대회 속사권총, 1982년 뉴델리 대회 스탠다드 권총, 1986년 서울 대회 속사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아시아경기대회 3연속 금메달이라는, 당시에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개인전 2연속 금메달도 당시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70년 방콕 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2연속 2관왕에 오른 수영의 조오련, 1966년 방콕 대회와 1970년 방콕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복싱의 김성은 그리고 1970년 방콕 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 포환던지기에서 연속해 정상에 오른 포환던지기의 백옥자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박종길의 사격 인생에서 빛나는 또 하나의 성적은 1978년 태릉에서 열린 제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센터파이어 권총에서 소총 소구경 3자세의 서장운, 10m 공기 소총 단체전의 박남순 김영순 유주희와 함께 주최국의 체면을 살리는 은메달을 명중한 것이다.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속사권총 금메달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대회 신기록인데다 한국 선수단이 기록한 사격 종목의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6개나 획득했다. 사격 종목 닷새째까지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사격 대표팀은 박종길의 금메달로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시상대에 선 박종길은 은메달리스트인 북한의 서길산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한동안 ‘소길산’으로 잘못 알려졌던 서길산은 그 무렵 북한 사격 권총 종목의 주전 선수였다. 아시아에서는 박종길과 치열하게 경쟁했고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1980년 모스크바 대회 50m 권총에서 4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보였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25m 속사권총에서는 박종길과 공동 15위를 기록했다.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 낯이 익은 박종길이 내민 손을 거절한 서길산의 속마음은 그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은메달에 그쳐 속이 상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당시 남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10여년 전 이전에는 새삼스럽게 주목 받을 일이 아니었다.
2003년 8월 31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배구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이 열린 대구체육관은 북쪽 여성 응원단을 포함한 6천여 명의 관중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한국은 1, 3세트를 내주고 2, 4세트를 잡으며 따라붙는 끈질긴 경기를 벌인 끝에 3-2로 역전승해 1997년 시칠리아 대회 이후 6년 만에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열리기 전 북쪽 응원단 앞에서 인사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북쪽 응원단이 있는 쪽에서 경기를 한 2, 4세트와 5세트 후반에서 모두 앞서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응원용 ‘짝짝이’를 손에 끼고 열광하던 북쪽 응원단을 기억하는 스포츠 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앞서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도 북한은 선수단과 함께 여성 응원단을 보냈다. 부산 앞바다에 정박한 배에서 먹고 잔 북쪽 여성 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은 대회 기간 내내 화제가 됐다. 이 대회에서 제한적이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됐다. 북괴(北傀)라는 말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매우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가 관계 정상화를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 교류다. 1971년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외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 얼굴을 내민 때는 1960년대 중반 이후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성과를 이룬 북한은 1972년 뮌헨 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각각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에 데뷔했다. 뮌헨 올림픽에서 금 1, 은 1, 동메달 3개로 종합 22위에 오르고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 15, 은 14, 동메달 17개로 종합 5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그 뒤 여러 국제 대회에 부지런히 나서 한국과 각종 종목에서 자주 경기를 했다.
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남북 대결’이 수시로 이뤄졌다.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결승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신세대 스포츠 팬도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남북 경기다. 남북은 0-0으로 비겨 공동 우승했다
남북은 1980년대 스포츠를 앞세워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이 잇따라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봤을 때 1980년대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암흑기였다.
한국은 두 대회를 잘 치렀다. 서울 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과 그를 따르는 나라들이 불참한 데 따른 보복으로 이번에는 소련 등 동유럽 국가들이 출전하지 않아 또다시 반쪽 대회가 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동서 양 진영의 모든 나라가 출전한 동서 화합의 대회가 됐다. 그러나 북한은 두 대회에 모두 출전하지 않았다.
1987년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한국은 여자 복식 결승에서 양영자-현정화 조가 중국의 다이리리-리후이펀 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이 남한 출신이고 1975년과 1977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2연속 우승에 빛나는 박영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북쪽 관계자들을 통해 알게 되는 등 남북 탁구인들은 교류를 이어 갔다.
1987년 11월 서독 에센에서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한국은 김재엽이 남자 60kg급 결승에서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를 통쾌한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물리치고 이듬해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예고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박정철(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의 농구 선수 정은순과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이 남자 86kg급에서 은메달, 이창수(1991년 탈북)가 남자 71kg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은 북한 선수단과 김밥을 나눠 먹는 등 우의를 쌓았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남북 스포츠 교류에 큰 획을 그었다. 남북이 모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고 북한은 응원단까지 보냈다. 소프트볼에서 첫 남북 경기를 가진 데 이어 여러 종목에서 남과 북이 마주쳤다. 3년 전 인도 뉴델리와 서독 에센에서 만났던 남북 유도인과 탁구인은 경기장과 ‘야윈춘(亞運村)’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다.
탁구는 남북 모두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갖춰 각종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났다. 그사이 알게 모르게 쌓인 친화력을 바탕으로 이듬해 일본 지바에서 벌어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3-2로 물리치고 현정화, 홍차옥(이상 남쪽)과 리분희, 유순복(이상 북쪽)이 시상대 위에서 한반도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원 배두나 주연의 영화 ‘코리아‘는 이 대회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오늘날의 FIFA U 20 월드컵)에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조별 리그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는 등 선전하며 8강에 오른 내용은 신세대 축구 팬들도 잘 알고 있다. 이 대회를 앞두고 남북 선수들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훈련했고 선수단이 구성된 뒤에는 프로 구단 유공과 동대문운동장에서 평가전을 치렀다. 관중들은 일방적으로 ‘코리아’를 응원했다.
대회를 마친 뒤에는 평양으로 직행해 환영식을 갖고 남쪽 선수들은 훈련과 대회 기간 정들었던 북쪽 선수들과 헤어져 판문점을 거쳐 돌아왔다.
1980~90년대 남북 스포츠 교류 현장에 함께한 글쓴이로서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들려오는 남북 선수들의 화기애애한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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