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이 '인플루언서 촬영장' 됐다…오사카 서브하는데 링라이트 번쩍→황당 민폐에 결국 경기 중단, 참다못한 주심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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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전장에서 좀체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는데 관중석에선 '링라이트'를 켜고 사진을 찍었다. 경기장이 졸지에 인플루언서들의 개인 촬영장으로 변했다.
결국 참다못한 주심이 경기를 멈췄다.
"자리에 앉으세요!"
영국 정론지 '텔레그래프' 등 복수 외신은 3일(이하 한국시간) "나오미 오사카(일본)의 US오픈 여자단식 1회전 도중 일부 인플루언서가 조명까지 동원해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며 "카데르 누니 주심이 직접 이들을 제지하는 황당한 상황이 불거졌다"고 전했다.
논란의 장면은 지난 1일 미국 뉴욕의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사카와 아나스타시야 자하로바(러시아·101위) 경기에서 나왔다.
오사카가 2세트 네 번째 게임에서 서브를 준비하던 순간이었다.
주심석 뒤편 스위트석에서 갑자기 밝은 조명이 켜졌다.
일부 관중이 휴대용 링라이트를 동원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움직이며 촬영을 이어가자 오사카의 경기 진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누니 주심이 결국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제 뒤쪽 스위트에 계신 분들, 자리에 앉으세요."
중계 카메라에는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 여성이 조명을 활용해 사진을 촬영했고 주변 사람들도 자리를 오갔다. 다른 관중이 촬영한 영상에는 경기장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이 휴대용 조명을 직접 들어주는 듯한 모습까지 포착돼 논란을 키웠다.
주심 경고 뒤 경기가 재개됐지만 오사카는 곧바로 흔들렸다.
서브를 위해 공을 띄웠지만 토스가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났다. 오사카는 자하로바에게 사과한 뒤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다.
테니스에서 서브는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동작이다.
정상급 랭커는 반복된 루틴과 일정한 시야를 토대로 토스부터 임팩트까지 일련의 동작을 수행한다. 공을 띄우는 순간 갑자기 강한 인공조명이 시야에 들어오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승부까지 뒤집히지는 않았다.
US오픈 여자단식에서 두 차례 우승한 오사카는 자하로바를 2-0(7-6 7-6)으로 꺾고 2회전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논란은 오히려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단순한 관중 비매너를 넘어 최근 US오픈이 추진하는 '인플루언서 친화 정책'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테니스협회(USTA)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대회 흥행 중심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US오픈에서 공식 취재 자격을 얻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약 100명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4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영향력이 큰 크리에이터를 적극 끌어들여 젊은 세대와 접점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적인 유튜버 '미스터비스트' 등 유명 크리에이터와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지난 2월 USTA에 부임한 크레이그 타일리 최고경영자(CEO)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10년 넘게 호주오픈을 이끌었던 타일리는 US오픈을 단순히 테니스 경기만 보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무대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른바 '테니스 디즈니랜드' 구상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선수의 경기 환경까지 침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테니스는 관중 움직임과 소음에 민감한 스포츠다. 포인트가 진행되는 순간에는 관중에게도 기본적인 관전 예절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소음도 아니었다.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는 순간 조명까지 켜고 촬영했다. 심지어 대회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이 촬영을 도왔다는 정황마저 포착되면서 팬들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방송인이자 인플루언서인 에밀리 오스틴도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날렸다.
"엄밀히 말하면 나 역시 '인플루언서'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US오픈은 당신들의 개인 콘텐츠 스튜디오가 아니다"라며 날 선 일침을 가했다.
팬들 역시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관련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고 "선수에게 너무 무례한 행동"이란 반응이 잇따랐다.
USTA도 진화에 나섰다.
브렌던 매킨타이어 USTA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팬과 초청객들이 US오픈에서 놀라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면서도 "그러한 경험이 코트 위 경기와 경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과 같은 상황은 드물다며 필요할 경우 주심이 관중 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 귀띔했다.
실제 US오픈에서 관중이나 미디어 관계자 언동이 경기 진행을 방해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와 뱅자맹 봉지(프랑스)의 대회 남자 단식 1회전에서 한 사진기자가 플레이 도중 코트 안으로 들어오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해당 기자는 곧바로 출입 자격을 박탈당했다.
다만 이번 사안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USTA가 흥행을 위해 전폭적으로 수용 중인 콘텐츠 제작 문화가 실제 경기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파장이 작지 않다.
US오픈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테니스 대회 가운데 하나다. 유명 인사가 관중석을 채우고 수많은 사진과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영국 '패션타임스'는 "그럼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우선순위가 있다. 코트의 주인공은 콘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가 아닌 경기를 뛰는 선수"라며 USTA 정책 기조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오사카가 서브를 넣는 순간 번쩍인 작은 링라이트 하나가 화제몰이를 위한 '콘텐츠 천국'과 세계 최고 선수가 경쟁하는 '그랜드슬램' 사이 균형점을 어디에서 책정할 것인가라는 꽤 묵직한 질문을 US오픈에 던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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