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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 이슈] 외국인 감독-한국인 코치 역사로 본 김학범, 정해성 코치 물망 이유

작성일: 2017.04.11 06:00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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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좀 도와줘! "슈틸리케 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위기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할 새 한국인 코치는 과연 누가 될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향한 한국 축구 대표 팀의 발걸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3일 파주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지도자 경력이 풍부한 한국인 코치를 '슈틸리케호'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기술위는 슈틸리케 감독과 전술, 선수 구성 등 핵심 현안을 논의하고 선수단을 장악해 대표 팀 전력을 끌어올릴 중량급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술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슈틸리케 감독과 호흡을 맞출 한국인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축구 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축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감독을 처음 영입한 이후 여러 차례 외국인 감독-한국인 코치 체제를 실험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외국인 감독과 국내 코치는 서로의 장점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지도 방식과 경험이 다른 지도자간 불화로 팀이 오히려 혼란에 빠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학범 전 성남 FC 감독과 정해성 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슈틸리케호의 중심을 잡아 줄 지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한국 축구가 경험으로 얻은 학습 효과 때문이다.

김 전 감독은 트레이너와 코치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을 보좌했다. 정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도와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연륜 있는 한국인 수석 코치의 지원을 받는 슈틸리케 감독의 운명은 카타르전에서 결정된다. 카타르전에서 경기력 향상과 함께 결과까지 만들어 낸다면 새 체제가 본선까지 갈 수도 있다. 반대로 위기가 계속된다면 미뤄졌던 슈틸리케 감독 경질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카타르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후 벌어진다. U-20 대표 팀은 슈틸리케호에서 코치로 활동했던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쥐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끝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신 감독이 U-20 월드컵에서 좋을 성과를 낼 경우 슈틸리케 감독-한국인 수석 코치 체제는 신 감독 또는 또 다른 한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조기 종료될 가능성도 있다.

스포티비뉴스는 한국 축구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목표를 이룰 교훈을 얻기 위해 과거 외국인 감독-한국인 코치 조합을 재조명해 본다.

1. 데트마르 크라머-김삼락(1991년 1월 - 1992년 3월)

1991년 1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도자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했다. 크라머 총감독은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았지만 김삼락 감독을 비롯한 국내 지도자들과 선수 선발, 선수단 운영을 놓고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결국 본선 전인 1992년 3월 전격적으로 해임돼 한국을 떠났다. 김 감독이 이끈 한국은 올림픽 본선에서 3무로 조 3위에 그치며 탈락했다.

2. 아나톨리 비쇼베츠-조병득, 김학범(1994년 8월 - 1996년 7월)

한국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옛 소련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우승을 이끈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을 기술 고문으로 영입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미국 월드컵 뒤 비쇼베츠 감독에게 대표 팀 지휘봉을 맡겼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일본을 2-1로 꺾는 등 선전했지만 4위에 머물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1승1무1패를 기록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비쇼베츠 감독은 과학적 훈련 방법을 도입해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김학범 전 감독은 트레이너와 코치로 비쇼베츠 감독을 보좌하며 외국인 감독과 한국인 선수간 가교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 거스 히딩크-박항서, 정해성(2001년 1월 - 2002년 6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에 0-5 패배를 안겼던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대패하는 등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본선 들어 D조 리그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꺾으며 산뜻한 시작을 알렸다. 미국과 1-1로 비겼지만, 포르투갈을 1-0으로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2-1로, 8강전에서 스페인과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신화를 이뤘다. 4강전에서 독일에 0-1, 3위 결정전에서 터키에 2-3으로 져 4위를 차지했다. 한국 축구의 황금기였다.

정해성 전 감독은 핌 베어벡 전 대표 팀 감독, 박항서 현 창원시청 감독과 함께 히딩크 감독을 도와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이 됐다.

4. 움베르투 쿠엘류-박성화, 최강희(2003년 2월 - 2004년 4월)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려놓은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홍명보 은퇴 뒤 포백 수비 시스템을 사용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조기에 경질됐다.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베트남에 0-1로, 오만에 1-3으로 패한 이른바 '오만 쇼크'가 있었다. 간신히 아시안컵 본선에는 출전했지만 여론이 악화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몰디브와 0-0으로 비긴 뒤 팀을 떠났다.

한국 축구 환경에 익숙하지 못했던 쿠엘류 감독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도 일으켰지만 당시 코치였던 박성화 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최강희 현 전북 현대 감독과 갈등을 겪으며 팀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5. 조 본프레레-허정무(2004년 6월 - 2005년 8월)

"수비 라인에서 3골을 먹으면 공격진이 4골을 넣으면 된다"는 말로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의 조 본프레레 감독은 쿠엘류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허정무 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수석 코치를 맡았다. 허 코치는 2004년 11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부임하며 수석 코치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춘석 코치만 두고 팀을 운영했다. 한국을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 올려놨지만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6. 딕 아드보카트-홍명보(2005년 10월 - 2006년 6월)

본프레레 감독 뒤 소방수로 역시 네덜란드 출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됐다. 독일 월드컵 본선이 머지않은 가운데 부임했지만 본선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한국의 월드컵 원정 첫 승리를 아드보카트 감독이 안았다.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 코치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홍명보 코치와 호흡을 맞췄다.

7. 핌 베어백-홍명보(2006년 7월 1일 - 2007년 8월)

핌 베어백은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 아래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던 '지한파' 지도자다. 독일 월드컵 뒤 감독으로 승격됐다. 2007년 동남아시아 4개국 아시안컵에서 6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면서도 3위에 올랐다. 아시안컵에서 자조한 득점력으로 비판을 받은 뒤 지휘봉을 내려놨다.

8. 울리 슈틸리케-신태용(2014년 9월 - 현재)

국내 지도자들과 함께 2번의 월드컵 본선을 보낸 뒤 한국은 다시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했다. 한국인 지도자로 합류한 신태용 코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17년 한국 U-20 월드컵 대표 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슈틸리케 감독과 결별했다. 불화설도 흘러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하며 좋은 시작을 알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까진 경기력이 좋았다. 그러나 최종 예선에 들어선 뒤 전술 부재 논란과 함께 부진에 빠졌다. 차두리 전력분석관과 설기현 코치가 합류했지만 변화는 크지 않았다. 4승1무2패(승점 13점)로 조 2위는 지키고 있지만 부진한 경기력으로 경질 위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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