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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 ‘코리아’의 감격을 다시 한번…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4)

작성일: 2017.05.03 09:00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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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형식적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서울은 나고야를 52-27로 가볍게 제치고 1988년 제24회 여름철 올림픽을 유치했다.

한국 현대사에 기록할 여러 일들 가운데 빠지지 않을 ‘서울 올리픽’은 남북 체육 회담 역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은 불참으로 마무리됐지만 과정이 길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에 앞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앞두고도 남북 체육 회담이 열렸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넉 달여 앞둔 1984년 3월 30일 북 측 김유순 체육지도위원장은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앞으로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23회 올림픽 대회와 그 이후에 있을 국제 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을 갖자는 서신을 보내 왔다.

대한체육회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 선수단의 명단 제출 마감일이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많은 의혹이 있는 랑군(양곤) 폭발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북 측의 제의를 수락해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4월 9일 제1차 회담 등 3차례 회의를 열었다.
 
랑군 폭발 사건으로 이듬해인 1984년에도 남북 관계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 북 측이 남북 단일팀 관련 회담을 제의한 것은 진정성이 의심되는 일이었다. 남 측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비롯한 앞으로 있을 각종 국제 대회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 *남북 스포츠 교류를 실시하는 문제를 의제로 하는 7개 항의 구체적인 제안을 했지만 북 측은 시종일관 랑군 사건은 남 측의 조작극이라고 하는 등 정치적인 발언만 일삼아 결론 없이 5월 25일 제3차 회담을 끝으로 결렬됐다.
 
제3차 회담 하루 전인 5월 24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동유럽 11개국 스포츠 관계자 회의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른 북 측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주영 대한체육회 회장은 5월 29일 북 측에 제4차 회담을 6월 1일 개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북 측은 회담 속개를 거부하는 회신을 보낸 데 이어 6월 2일 성명으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북 측의 불참 이유는 *미국에서 반공, 반 사회주의 책동이 노골적으로 감행되고 있어 선수들의 신변 안전이 보장될 수 없으며, *남북한이 별개 팀으로 참가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이므로 개별 참가는 민족 여망에 부합되지 않는 다는 것으로 스포츠와는 관계없는 정치적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과 관련한 남북 체육 회담은 1985년 10월 제1차 회담이 열린 데 이어 1987년 7월까지 모두 4차례 열렸으나 남 측의 성의 있는 자세와 달리 북 측이 무리한 요구를 반복하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북한은 서울과 나고야가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 경쟁을 하고 있는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 기간부터 한국의 올림픽 유치 작업을 방해하더니 유치가 확정되자 "한반도는 휴전 상태이고 언제 전쟁이 재발할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지역이니 개최지를 변경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서울 올림픽 방해 책동을 벌였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이 제24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IOC 총회에서 결정한 개최지를 바꿀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자신이 남북 사이의 문제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한국은 여러 방식을 거쳐 북한이 다른 IOC 회원국들과 같은 조건과 자격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서울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고 IOC에 대해서도 이를 보장했다.

1985년 2월 1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남북한이 동의하면 자신이 남북 체육 회담을 주재할 의사가 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남북한에 동시에 알리고 이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회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3월 31일 동의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7월 6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의 회신을 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10월 8일과 9일 스위스 로잔에 있는 IOC 본부에서 IOC 주재 남북 체육 회담을 연다고 7월 24일 발표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발표가 있은 직후인 7월 30일 정준기 북한 정무원 총리는 *제24회 올림픽 대회는 남북한이 같은 자격으로 공동으로 개최하고, *대회 명칭은 '조선 평양·서울 올림픽 대회'로 하고, *경기는 서울과 평양에서 똑같이 절반씩 나누어 실시해야 하며, *선수는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할 것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놨다. 한국이 범국민적인 노력을 기울여 유치한 올림픽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슬며시 끼어들겠다는 억지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8월 25일 성명에서 "올림픽 헌장에 따라 북한이 요구하는 공동 개최는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한민족(韓民族)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 종목의 경기를 북한 지역에서 개최할 수 있을 것인지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히면서 IOC가 지정한 날짜에 한국과 북한은 꼭 회담에 응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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