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CRITIC] 두통, 불면증, 심장마비…도마 오른 ‘K리그 감독 생명’
작성일: 2017.10.13 06: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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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상처 받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정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극에 달하면, 두통이 되게 심해요. 경기 끝나고 나면 진통제도 먹고.”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
지난 10일 오전, 한국 프로 축구 감독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2017년 시즌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라운드 미디어 데이를 위해 상위 그룹 A에 든 6개 팀 감독이 축구회관 2층에 모여 인터뷰를 가졌다. 1부 순서인 합동 인터뷰 이후 개별 인터뷰를 막 시작하려던 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황선홍 FC 서울 감독은 “가슴이 쿵쾅거려 말을 제대로 못하겠다”며 연신 가슴을 두드리고 쓸어 내렸다. 1부 인터뷰 순서에 “버티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힘들지만 3년 연속 이 자리에 왔다”고 했던 조성환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은 비보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 황 감독과 더불어 고인이 된 조 감독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참가했던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은 “정말이냐”고 여라 차례 되물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규 라운드 경기를 정리하고, 스플릿 라운드의 출사표를 듣기 위해 마련됐던 2부 개별 인터뷰 순서의 질문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평소 활달한 성격에 긍정적인 자세로 대표됐던 조 감독은 8일 K리그 챌린지 선두 경남 FC와 경기에서 패한 뒤 승격 직행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고, 이틀 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감독직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무리가 왔다는 게 현장의 시선이다.
◆ K리그 감독은 지금 아프다
정규 라운드 막판 일정을 포함해 여러 차례 ‘극장 골’을 내주며 승리를 놓친 기억이 있는 서 감독은 감독직을 수행하며 겪은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하더라고 말했다. “한 게임 한 게임 미칠 정도다. 상처를 받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니고, 그걸 곱씹고 있기가 쉽지 않다.”
서 감독은 “몸은 (운동을 하니) 건강한데, 한 경기 끝나고 나면 두통이 심하다. 진통제도 먹고, 아내에게 (뒷목을) 주물러 달라고 한다”며 스트레스가 실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서 감독은 2013년 시즌 수원 삼성 지휘봉을 잡은 뒤 5년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잠을 편히 못 잔다. 사람들은 자기 전에 보통 이런저런 생각이 날 텐데, 우리 직업의 경우 경기 상황 등 여러가지 순간이 떠오르면 잠이 싹 달아난다. 쌩쌩해진다.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두통이 있는데 자야 할 잠도 못 자고. 깨서 멍하고. 감독들은 거의 다 이런 걸 갖고 있다.”
서 감독은 팀 성적이 나지 않을 때 언론의 비판과 팬들의 질타, 구단과 갈등 등 다양한 문제에서 감독이 짊어질 상황이 많다고 했다. 그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타격을 준다.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기 때문이다.
“왜 힘드냐면, 아프잖아요, 그런데 모든 걸 내가 안아야 되잖아요. 근데 내가 또 그 밑에 있는 스태프, 팬들, 우리 선수들, 다 그렇게 있는데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그걸 여기에 풀 수가 없는 거에요. 감독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선수들은. 그러니까, 그걸 다 감내하고 안아야 해요. 그러면,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 받아도, 선수들한테는 그런 모습 보이지 말아야 하고. 다운된 선수도 일으켜 세워야 하니까. 그럼 다시 또 그걸 되뇌고. 내가 그러면 안되지. 힘들어도 웃어야지. 선수들은 감독 얼굴만 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데. 그러니까 진짜 사리가 나올 것 같아요.”
서 감독은 “솔직히 나뿐 아니라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나 생각했을 것”이라면서도 프로 축구의 세계에서 특권이자, 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독직, 독이 든 성배를 과감하게 내려놓기도 어렵다. 축구계에 다양한 직업이 있고, 저마다 고충이 있지만, 감독은 큰 권한을 가진 동시에 책임과 부담도 그만큼 큰 것이다.
“선수 때는, 내가 선수를 하면서 경기를 못했을 때 마음이 아프고, 그 장면이 떠오르고 잠도 못자고 그랬는데. 선수 때는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고, 훈련도 힘들고 그랬는데, 감독이 힘든 것과 비교할 게 아니다. 내가 코치도 해 봤는데. 코치 때 생각했던 것은 강원 박효진 대행의 말처럼, 코치의 생각과 감독 생각은 180도 달라진다.”

◆ 정년 보장 없는 프로 축구 감독…K리그의 파리 목숨
프로 축구계에서 ‘정년 보장’의 개념은 없다. 감독과 선수는 많은 연봉을 받는 ‘비정규 계약직’이다. 짧게는 1년 내지 2년에서 3년에서 정도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 기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성적에 따라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2017년 시즌만 해도 대구 FC(손준호), 강원 FC(최윤겸), 광주 FC(남기일)가 시즌 도중 감독을 교체했다. 손준호 감독과 최윤겸 감독은 대구와 강원의 클래식 승격의 영웅으로 호평 받은 직후 한 시즌을 채우지 못했고, 남기일 감독도 2016년 시즌 광주 창단 후 최고 성적을 이룬 직후 시즌이었다. 최 감독과 남 감독의 경우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으나 실상 구단의 판단에 따른 경질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두 명의 감독이 중도 하차했다.
스플릿 라운드 실시로 감독들이 경질당할 중간 평가 단계가 생겼고, 승강제 실시 역시 감독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감독은 현 체제에서 더욱 더 극심한 압박감 속에 일하고 있다. 스스로 택한 일자리라지만, 리스크가 큰 것에 비해 대우나 조건이 좋은 상황도 아니다. K리그는 물론 한국 축구 전체가 침체기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K리그 클래식의 ‘일자리’는 부족하고, 선수와 비교해 감독의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감독이 구단과 계약 협상 과정에 갑이 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애초에 기존 계약 기간이 언제든 폐기될 수 있고, 경질 때 위약금 문제로 장기 계약을 제시하는 경우도 없는 가운데, 재계약도 늦어지는 추세다.
선수만큼 감독의 이적이 활발한 유럽 축구의 경우 통상적으로 계약 만료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계약 협상을 시작하고, 계약 만료 6개월 전에는 윤곽이 드러난다. K리그의 경우 대표급 특급 선수를 제외하면 선수들의 재계약 협상도 시즌이 끝난 이후 만료 시점에 진행된다. FA 자격을 취득해도 보상금 등 이적이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어 선수가 협상 주도권을 쥐거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어렵다. 해외로 나갈 경우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래서 구단이 큰 이적료 수익을 거두지 못하거나, 이적료 없이 내보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 절체절명의 스플릿…수원 서정원-제주 조성환 감독 재계약 ‘미정’
앞서 언급한대로 선수와 비교해 선택지 자체가 많지 않은 감독의 경우 재계약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추세다. 서정원 감독의 경우 주장 염기훈이 공개 석상에서 재계약을 빨리 체결해달라고 구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축구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고, 다음 시즌에 대한 로드맵을 함께 그려야 할 시즌 막바지에, 재계약 문제가 지지부진한 것은 서 감독을 심적으로 쫓기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어떻게 보면, 선수들한테 미안하다. 선수들이 자꾸 재계약 얘기를 하는데, 난 못하게 한다. 저한테는 솔직히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걱정되는 내용도 없지 않아 있다. 지금 상황은 다른 생각을 갖지 않고 올인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그런 걸 잊고 마지막 경기에 쏟았으면 좋겠다.”
대표 팀은 물론이고, K리그 팀에 이르기까지 장기 계획 없이 매년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며 주먹구구식 운영을 해 온 것이 한국 축구의 위기를 초래했다. 감독 재계약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팀은 수원만이 아니다. 제주의 조성환 감독도 3년 연속 상위 스플릿 진출, 올 시즌 전북 현대와 우승 경쟁을 벌이는 좋은 성적에도 재계약이 완료되지 않았다.
조 감독의 계약 기간도 올해 말까지다. 제주는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시즌 초 승승장구하다 승부처에서 고전하자 조 감독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 감독은 이 고비를 넘기고 정규 라운드 막판 12연속 무패를 기록하며 전북과 최종전을 앞둔 시점에 승점 차이를 3점까지 좁혔다. 전북과 홈경기에서 패해 승점 차가 다시 6점으로 늘었으나, 뚝심으로 팀을 끌어올렸다. 시간이 성과로 이어졌다.
제주만의 색깔을 만들고, 전술적으로 탄탄한 팀을 만들었으며, 제주의 흥행을 위해서도 전심전력을 다한 조 감독은, 그럼에도 입지가 안정적이지 않다. 조 감독 처지에서도 시즌 종료 전에 거취가 안정돼야 잔여 일정에 대한 심적 부담을 줄이고, 다음 시즌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성적과 경기력이 미진한 상황이라면 납득할 수 있지만,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는 시즌 막판, 재계약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부담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안정적인 연장 계약은 감독의 중압감을 덜어 줄 수 있는 구단의 조치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올 시즌이 끝나고 12월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 대표 팀을 이끌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했다. K리그 시즌이 끝나고 선택지를 더 넓게 하겠다고 했다. K리그에서 성과를 낸 서정원 감독과 조성환 감독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지지부진한 재계약 협상은, 수원과 제주 두 구단에 급히 차기 감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안겨 줄 수 있다.

◆ 불합리한 계약, 불안한 미래…감독이 안정돼야 K리그도 안정된다
K리그가 재미없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거의 모든 감독이 수비를 단단히 하고 안정적으로 지지 않는 축구를 추구하는 전술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황선홍 서울 감독은 현장에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감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성적과 결과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해결책이 있다”며 “감독 임기를 10년 간 보장해 주면 된다”고 하기도 했다. 10년 계약을 체결해도 성적에 따라 무효화될 수 있는 게 축구 감독의 생리다.
장기 계약의 의미는, ‘위약금’으로 감독의 생계를 어느 정도 보전해는 데 의미가 있다. 유럽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경질 후 위약금은 문제없이 지급된다. 한국에선 경질 발표보다 자진 사퇴가 일반적이다. 모양새 문제도 있지만, 좁은 판 안에서 다음 진로를 고려해야 하는 감독은 위약금을 온전히 받기 어렵다. 내쫓기는 감독이 자진 사임 혹은 상호 합의 하의 사임을 ‘제시 받아’ 전액을 보장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축구 감독들은 멋진 슈트를 입고 벤치에서 전술적 권한을 부여 받는 꿈의 직업을 가졌지만, 실은 매주 성적, 매년 성적에 풍전등화의 삶을 살고 있다.
K리그 클래식 승격,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를 눈앞에 두고 유명을 달리한 조 감독도 ‘불합리한 계약’의 희생양이 된 기억이 있다. 조 감독은 2013년 시즌 대전시티즌의 감독 대행으로 1군 지휘봉을 처음 잡았다. 2014년 시즌 호성적으로 정식 감독 계약을 맺었고, K리그 챌린지 우승으로 클래식 승격을 이뤘다. 그런데 2015년 시즌 K리그 클래식 도전 과정에 안정된 계약 조건을 얻지 못했다. 당시 대전 시티즌의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시민 구단인 대전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노선이 달라졌다.
전임 대표 이사의 업적에 들어 있던 조 감독은 달성 불가능한 수준의 ‘경질 조건’이 계약서 안에 들어 있었으나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해야 했다. 승격 공신 상당수를 잃었고, 선수단 구성 과정도 원활하지 못한 와중에 1차 라운드만에 경질 조건이 명시돼 있었다. 결국 조 감독은 12개 팀을 한 번씩 상대한 11차전, 1차 라운드 경기까지 1승 2무 8패로 승점 5점을 얻는 데 그쳐 최하위로 떨어지자 경질됐다. 자진 사임 형태를 취했지만, 애초 계약서에 11경기 안에 달성해야 할 조건을 채우지 못해 실상 경질된 것이다. 조 감독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조 감독은 불합리한 상황을 외부에 토로하기 보다, 자신의 실력으로 명예를 되찾고자 했다. 2016년 시즌 상주 상무 감독으로 부임해 군 팀 상주의 사상 첫 상위 스플릿 진출을 이끌었다. 2017년 시즌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취임해 2016년 시즌 승격에 실패한 팀을 시즌 내내 선두 경쟁을 하는 단단한 팀으로 만들었고, FA컵 4강 진출을 이뤘다. 조 감독은 또 한번의 클래식 승격과 더불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까지 가능한 시즌을 치르다 고인이 됐다.
조금 더 믿고 지원해 줬더라면, 조 감독이 대전에서 명예로운 시즌을 더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팀의 경우에도, 팀을 운영하고, 장기 계획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을 줬다면 팬들은 더 좋은 축구를 보고, 더 흥미로운 리그가 되고, 지도자들도 더 성장할 수 있는 판이 되지는 않았을까? 올 시즌 감독을 교체한 팀 가운데 대구 정도가 효과를 봤고, 강원과 광주는 극적인 성적 개선을 이루지 못한 채 애초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다.
감독 교체는 때로 선수단의 정신을 깨워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극약 처방이지만, 극약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이 처방은 아니다. 감독이 안정되지 못하면 선수단과 팀이 안정될 수 없다. 조 감독은 생전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감독이 대행이면, 선수들이 안정을 못 찾는다. 감독이 언제 나갈지 모른다. 성적이 나쁘면 나가고, 좋아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대행 꼬리표가 없어도, 감독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황에 팀이 단단해지기는 어렵다.
성적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철밥통이나 카르텔이 돼선 안되지만, K리그는 감독의 계약을 더 안정적으로 지켜 줄 필요가 있다. 두통과 불면증에 심장마비까지 겪게 된 K리그 감독들을 보호할 때가 됐다. 제2의 조진호 감독과 같은 일이 나와선 안된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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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기자 hjh@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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