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가까워진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한국 스포츠 교류사(1)…필리핀, 야구 농구로 맺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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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 가운데 하나인 ‘신남방정책’이 가시화되면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 지역 나라들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편집자 주>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장충체육관입니다. 지금부터 김일 선수의 프로 레슬링 경기를…"
방송 종사자들과 만나면 ‘방송 사고’ 일화가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위 코멘트도 그런 일화 가운데 하나다. 장충체육관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목청껏 외친 이 아나운서는 1960~70년대 한국 스포츠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 중계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지금부터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농구 한국 대 태국의 경기를 중계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방송을 하다 보니 그만 서울 한복판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그 무렵 한국 스포츠가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얼마나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는지를 대변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스포츠 교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가 1954년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끝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4년 5월 1일부터 9일까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한국은 이상백 단장 인솔 아래 6개 종목에 걸쳐 8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에는 한국전쟁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은 대회 사상 첫 출전이었지만 금메달 8개로 종합 순위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금메달 38개의 일본, 2위는 금메달 14개를 딴 개최국 필리핀이 차지했다.
한국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육상에서 최윤칠이 1500m, 최충식이 1만m에서 귀중한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 무렵 국제 대회 메달 효자 종목인 역도에서는 밴텀급 유인호, 라이트급 조봉목, 미들급 김창희, 라이트미들급 김성집, 미들헤비급 고종구가 5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이 종합 3위를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복싱에서는 페더급 박규현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외에도 육상에서 은 1, 동 1, 레슬링에서 은 1, 동 2, 역도에서 은 1, 복싱에서 은 2, 동 1, 축구에서 동 1 등 금메달 8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해 전쟁에 지쳐 있던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그해에는 아시아경기대회 외에 필리핀에서 제1회 농구, 야구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월 마닐라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필리핀과 자유중국(오늘날의 대만), 일본에 이어 7개 출전국 가운데 4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초대 챔피언 필리핀에 79-97로 졌다. 이 순위는 4개월 뒤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똑같았다. 이 대회에서는 필리핀에 52-76으로 패했다. 당시 한국과 필리핀의 농구 경기력 차이를 스코어에서 알 수 있다.
이후 한국이 1969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신동파를 앞세워 필리핀을 95-86으로 누르고 대회 첫 우승을 할 때까지 필리핀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중·장년 농구 팬들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고 7개월 뒤, 이번에는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마닐라에서 벌어졌다. 그해 5월 마닐라에서 한국과 일본, 필리핀, 자유중국이 아시아야구연맹을 결성했다. 연맹은 첫 사업으로 그해 12월 마닐라에서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열었다.
한국은 일본에 0-6, 필리핀에 4-5로 지고 대만을 4-2로 눌러 2승1패로 3위를 했다. 한국 야구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한 첫 국제 대회였다. 이후 아시아선수권대회 성적은 프로가 출범하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 야구 팬들에게 최고의 관심사였다.
그 대회 출전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미군이 제공한 C-46 수송기를 타고 장도에 오른 선수들은 겨울이어서 여름옷을 구할 수 없어 흰 옷감에 물감을 들인 단복을 입고 있었다. 비행기는 계속 남쪽으로 날았고 냉방이 되지 않는 수송기 안에서 선수들은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염색한 단복에서 흰 셔츠로 검은 물감이 배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셔츠가 얼룩덜룩 엉망이 됐지만 비행기에 함께 탄 미군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땀을 흘리면서도 단복을 입은 채 견뎠다.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지인 홍콩에 내렸을 때 선수단 관계자가 시내에 나가 반소매 셔츠를 사 와 갈아입었다. 한국 선수단은 이 셔츠를 대회 기간 단복으로 삼았다. 주요 국제 대회에 나가는 선수단을 위한 단복 패션쇼를 하는 요즘과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1950년대에 한국보다 훨씬 앞선 스포츠 인프라를 갖추고 있던 필리핀은 올림픽 데뷔도 한국보다 훨씬 앞섰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처음 참가했는데 미국령이긴 했다.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인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 수영 남자 평영 200m에서 동메달을 기록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는 남자 높이뛰기와 복싱 밴텀급, 수영 남자 평영 200m에서 동메달 획득했는데 1928년, 1932년 수영 메달리스트인 테오필로 일데폰소는 2017년 현재 필리핀의 유일한 2개 이상 올림픽 메달 획득자이다.
1936년 베를린 대회에서는 육상 남자 400m 허들 동메달을 차지했다. 1964년 도쿄 대회 페더급, 1988년 서울 대회 플라이급,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라이트 플라이급(이상 동메달),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라이트 플라이급 복싱 은메달을 보면 필리핀이 매니 파퀴아오의 나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역도 여자 53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아직 필리핀의 올림픽 금메달은 없다.
복싱과 함께 필리핀의 국기로 사랑받는 농구의 경우 1948년 런던 대회 5위, 1956년 멜버른 대회 7위 등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인도 일본 이란 이라크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출전 나라들 가운데 가장 좋은 올림픽 성적을 자랑한다.
이들 종목 외에 한국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축구 배구 등 여러 종목에서 교류하며 한국전쟁 참전국인 필리핀과 우의를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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