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시선] 스포츠는 남북 평화와 화해로 가는 지름길이자 열쇠
작성일: 2018.04.03 11:51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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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던 1990년 9월 말 어느 날. 대회 기간 내내 가깝게 지내고 있던 북 측 L 모 기자가 맥주 한잔하자며 기자단 숙소에서 가까운 술집으로 글쓴이를 이끌었다.
L 모 기자는 맥주 두어 모금을 들이키더니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이 보라우. 신 기자, 내일 남북 문제로 꽤 중요한 내용이 발표될 거인데. 알고 있나?” “네? 선배에게 처음 듣는데요” “그래, 그럼 알고만 있으라우”하면서 L 모 기자가 말한 내용은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는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가 열리게 됐다는 것이었는데 대회 성사가 주제가 아니었다. L 모 기자의 관심사는 글쓴이의 평양행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L 모 기자는 글쓴이가 이산 가족 2세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며칠 뒤, 베이징에서 취재 활동을 하고 있던 언론사 대표들이 모여 평양에 가는 인원을 조정했고 글쓴이가 속한 회사에서는 글쓴이보다 선배인 B 모 기자가 취재단에 포함됐다. B 모 기자는 이산 가족 1세대였다.
대회는 10월 11일 평양 5·1경기장(능라도 경기장)에서 1차전, 10월 23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2차전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1차전 때는 축구인 이회택이 선수단 고문 자격으로 동행해 북 측 축구인 박두익(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주역)의 주선으로 아버지 이용진 씨와 극적인 부자 상봉을 했다. 2차전 때는 글쓴이가 선수단과 함께 서울에 온 L 모 기자와 다시 만났다. 평양 대신 서울에서 이뤄진 ‘작은 상봉’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탁구와 축구 남북 단일팀이 꾸려져 탁구는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단체전(남 측 현정화 홍차옥 북 측 리분희 유순복) 우승과 혼합복식 동메달(북 측 김성희-리분희 조) 남자 단식 동메달(남 측 김택수)의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축구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 U 20 월드컵 전신) 8강을 기록했다.
베이징에서 시작해 판문점 남북 체육 회담을 거쳐 일본과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남북 스포츠 교류였다.
청소년 축구 남북 단일팀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프로 축구 팀 유공과 평가전을 할 때 관중들이 19살 이하 남북한 청소년 선수들을 응원하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쉽지 않은 선발 과정과 합동 훈련 그리고 평가전에 이은 아르헨티나(1-0 승리), 아일랜드(1-1 무승부), 포르투갈(우승국 0-1 패배)과 조별 리그 경기, 브라질(준우승국 1-5 패배)과 8강전까지 남북 선수들은 하나가 돼 달렸다.
대회를 마친 뒤 포르투갈에서 평양으로 가 환영 행사를 마친 남북 단일팀 ‘코리아’의 남 측 선수들은 두 달여에 걸친 일정을 마무리하고 판문점 북 측 지역인 통일각까지 마중 나온 북 측 선수들과 헤어졌다. 판문점 남 측 지역으로 내려오는 선수들 눈은 한결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로 여자 친구 사진도 보여 주고, 꼭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약속의 시간이 3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요즈음 남과 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에 이어 스포츠 교류의 흐름을 이어 갈 뜻을 함께 밝히고 있다.
2일 평양발 여러 뉴스에 따르면 도종환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일국 북한 체육상은 오는 8월 18일 막을 올리는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더해 남북은 오는 27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뒤에 아시아경기대회 남북 공동 입장을 포함한 체육 교류 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앞에 소개한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남북 공동 응원이 펼쳐졌고 1945년 분단 이후 당시 기준 최대 규모 남북 선수단이 여러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북 측은 이웃 중국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국제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응원단도 보냈다. 남북 평화와 화해를 위한 스포츠 교류 필요성을 주장하며 그때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1990년 9월 23일 오전, 베이징 서남쪽 펑타이 구장. 전날 밤 공인체육장에서 열린 개회식 취재를 마치고 숙소인 오주대반점에서 잠시 눈을 붙인 글쓴이는 이날 아침 일찍 셔틀버스에 올라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남북 응원단이 1루 쪽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세련된 응원단장 옷을 갖춰 입은 ‘뽀빠이’ 이상룡이 먼저 눈에 띄었다. 다소 촌스러운 복장의 북 측 응원단장도 열심히 응원을 이끌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많은 인원이었다.
단순한 경기장 스케치만으로는 기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스탠드로 올라가 북 측 응원단 몇몇을 인터뷰했다. 빨간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 투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에게 먼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스포츠** 기자입니다.” 20대 초반의 예쁘장한 이 여성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글쓴이가 얼른 상황을 파악했다. “운동 신문입니다.”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꽤 많이 왔는데 모두 몇 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판 마감 시간에 쫓겨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질문에 이 여성은 상냥하게 답했다. “대학을 나와 평양에 있는 기업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외국에는 처음 나왔습니다.” “남쪽 사람도 처음 봅니다.” 하기는 글쓴이도 1987년 2월 뉴델리(인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그해 11월 에센(당시 서독)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만난 선수단 임원과 선수 몇몇(이들 가운데에는 뒷날 탈북한 선수도 있다)이 그동안 만난 북한 사람의 전부였다.
메인 프레스센터로 연결되는 직통 전화를 들고 기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과 북은 23일 베이징 펑타이 구장에서 역사적인 남북 공동 응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소프트볼 경기를 갖고…” 이후 기사에서 ‘역사적인’이라는 표현이 두어 번 더 나온 듯하다. 기사를 받고 있던 동기 녀석이 “야, 네 기사대로 하면 통일이 다 된 것 같다”며 핀잔을 퍼부었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를 몇 차례 치렀지만 이날만큼은 좀 흥분했던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가 시작됐다. 응원은 응원, 남과 북은 여러 종목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메달 레이스를 벌였다. 이 대회 남북 경기 하이라이트는 탁구 남자 단체 결승전이었다. 한국은 예선 리그를 3연승으로 통과한 뒤 준준결승에서 홍콩을 5-1, 준결승에서 일본을 5-0으로 잡고 결승에 올랐다.
또 다른 준결승에서 북한은 마원거, 천룽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홈 테이블의 중국을 5-1로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 무렵 북한 남자 탁구는 세계적인 수비수 리근상, 뒷날 리분희 남편이 되는 김성희 등이 이끌고 있었다.
당시 남자 단체전은 세 명의 선수가 나서서 돌려 붙는 9단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접전이 펼쳐지면 4시간이 훌쩍 넘는 경기가 종종 나왔다. 이 경기도 그랬다. 한국과 북한은 게임 스코어 4-4로 팽팽히 맞섰고, 마지막 9번 단식에서 김택수가 북한의 신예 최경섭과 맞붙었다.
김택수는 첫 세트를 21-13으로 따 손쉽게 승리하는 듯했다. 그러나 2세트에서 일방적으로 몰려 15-21로 세트를 내줬고, 마지막 세트에서도 1-8, 3-9로 계속 밀렸다. 하지만 승리를 자신한 최경섭의 무리한 공격이 실수로 이어지면서 김택수의 반격이 시작됐다. 내리 7점을 뽑아 10-9로 역전했다. 최종 스코어는 21-19였다. 한국은 다섯 시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대회 2연속 우승을 이뤘다.
남북 단일팀은 아니었지만 제3의 나라와 남북이 경기를 치르면, 심정적으로 거의 단일팀이 돼 서로를 격려했다. 체조 이단평행봉의 세계적인 선수 김광숙에 대한 편파 판정 문제를 놓고 북 측 지도원과 남 측 기자가 한목소리로 중국을 성토하기도 했다.
대회가 종반에 접어든 어느 날 아운촌(亞運村·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인근 류경식당에서 남북 유도 관계자들이 함께한 저녁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대회 초반 만난 응원단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여성 응원단 몇 명이 있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청진사범대학 학생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 여성들은 한눈에 봐도 뽑혀 온 게 확실한,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2000년대 들어 남녘에 온 ‘미녀 응원단’의 원조라고나 할까.
이 대회 이후 화해 분위기를 탄 남북이 이룬 스포츠 교류 결과는 앞에 소개한 대로다. 개·폐회식 공동 입장 수준이든, 나아가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첫 남북 단일팀 구성이든 어렵사리 잡은 남북 스포츠 교류 기회를 남북 모두 소중히 살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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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 기자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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