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규칼럼] 효율 vs 시스템, 김판곤 위원장이 2000년 사례에서 얻을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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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류재규 기자] 한국축구의 새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이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지난 9~18일 유럽 출장을 통해 미리 선정해둔 10명의 외국인 감독 후보 중 5~6명을 직간접으로 만난 데 이어 최근 우선 협상 대상자 3~4명을 압축해 본격 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 후보는 대한축구협회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영국계 에이전트 'KAM 스포츠 인터내셔널(이하 KAM)'의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축구협회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8월초 새 감독을 선임하고, 그가 9월 7일 코스타리카와 친선경기를 지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무대를 밟은 외국인 사령탑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영입 과정을 돌아보면 현 김판곤 위원장의 새 감독 선임 작업이 어디까지 왔으며, 감독 선임 후에는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뒤 발간된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 '마이 웨이', 월드컵 후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가삼현 국제부장(현 현대중공업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사장)의 인터뷰, 당시 핵심 인사들에 대한 최근의 추가 취재 등을 통해 히딩크 감독 영입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봤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출발점이 된 히딩크 감독의 선임은 월드컵 개막 1년 7개월 전인 2000년 11월 1일 이용수 세종대 교수가 기술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이 위원장과 가 부장 콤비는 그 해 12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전까지는 새 감독을 뽑아야 한다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속도를 냈다. 이 위원장은 11월 열린 기술위원회에서 KAM의 자료를 참고해 10명의 감독 후보를 정하고, 우선협상 대상자 1~4번까지 추렸다.
우선 협상 대상자 1~4순위는 에메 자케 전 프랑스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전 네덜란드대표팀 감독, 조 본프레레 전 나이지리아대표팀 감독,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 전 크로아티아대표팀 감독이었다. 초호화 라인업이었다.
자케는 모국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프랑스국립축구센터인 '클레르퐁텐'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역시 1998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0-5 대패를 안겨 차범근 감독의 현지 경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온 히딩크도 카날 플러스 해설자로 활동 중이었다.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본프레레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의 금메달을 이끌었고, 블라제비치는 프랑스월드컵에서 모국 크로아티아를 4강에 올렸다.
이 위원장과 가 부장이 정상급 감독 영입에 들 비용을 걱정하자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돈 걱정은 하지 마라. 협회 예산으로 모자라면 내가 사재라도 털겠다"며 독려했다.
당시 이 위원장은 국내에서 상황을 컨트롤하고, 가 부장은 미리 유럽으로 출국해 대기했다. 협상은, 이 위원장과 가 부장이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고 중대 고비마다 정몽준 회장에게 직보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용수-가삼현 팀의 협상 전략은 다음 네가지였다.
① 우선 순위에 따라 협상하되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세부조건까지 협상을 완료한다.
② 다음 순위 후보와 협상 테이블은 접는다.
③ 촉박한 감독 선임 일정 때문에 1순위 자케, 2순위 히딩크 감독과 협상은 동시에 벌인다.
④ 1,2순위와 3,4순위 후보의 급에 차이가 있다. 자케, 히딩크 감독과 협상이 결렬되면 백지 상태에서 우선 협상 대상자를 다시 선정한다.
가 부장과 접촉한 1순위 후보 자케는 "다시 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 프랑스 축구의 미래를 다지는 현재 일에 집중하겠다. 나는 월드컵 우승 감독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며 거절했다.
11월 15일 가 부장이 소개한 아서 다시(Arthur Darcy) KAM 대표를 만난 히딩크는 한국행에 흥미를 보였다. 히딩크는 가 부장에게 "① 한국 선수들은 내 지시를 잘 따를 것인가. 내가 '저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그대로 할 것인가 ② 2002년 한국 프로리그를 조기 중단해 선수 차출과 충분한 훈련 시간을 확보해줄 수 있는가"라는 두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열흘 후 히딩크는 두 조건에 대한 정몽준 회장의 확답을 가 부장을 통해 전달받았다. 히딩크-가 부장-히딩크의 친구인 변호사 앤디 그로스는 스위스 베른에서 만나 세부 사항에 대한 협의를 완료하고 축배를 들었다.
12월 20일 히딩크는 KAM 관계자와 함께 도쿄로 날아와 한일전을 참관했고, 2001년 1월 1일 한국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1월 24일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을 직접 지휘했다.

히딩크 감독의 연봉은 얼마였을까. 히딩크 감독의 측근 인사는 최근 스포티비뉴스에 "히딩크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의 5분의1도 안되는 기본 연봉 100만달러에 월드컵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사인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후까지 연봉과 인센티브, 광고 출연료와 자서전 인세 등 모든 수입을 합쳐 당시 환율로 한화 43억원 정도를 번 것으로 안다. 이 수입은 전액 거스 히딩크 재단 설립 재원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용수 위원장이 훗날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고, 나름대로 협상 전략을 치밀하게 세우고 과감하게 실행했지만, 돌아보면 참으로 무모했다. 자케 감독을 1순위로 올려 접촉하고, 히딩크 감독과 그렇게 헐값에 계약한 것은 천운이었다"고 밝혔듯 히딩크 영입 협상은 한국축구와 팬에게도, 히딩크 본인에게도 해피 앤딩이었다.
히딩크 영입 과정과 현재 김판곤 위원장-전한진 사무총장 체제의 새 감독 찾기 과정을 비교해 보면 몇가지 특징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감독 후보 선정과 협상 과정에 KAM이 깊이 개입했다.
세계 60여개국 축구협회와 네트워크를 형성한 KAM은 대우 집행부 시절인 1990년대 초부터 30년 가까이 대한축구협회와 인연을 맺고 있다. KAM의 설립자인 아서 다시는 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 일하던 시절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를 도왔지만, 국회 청문회에서 축구협회와 유착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한국축구는 히딩크를 비롯해 움베르투 쿠엘류, 조 본프레레, 핌 베어벡, 울리 슈틸리케에 이어 이번 새 대표팀 감독까지 모두 6명의 외국인 감독 영입을 KAM과 함께하게 됐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설기현의 벨기에리그 진출에도 KAM의 영향력이 있었다.
국내 에이전트들이 이번 감독 영입 작업에 참여할 여지가 없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배경에는 축구협회와 KAM의 협업이라는 사정이 깔려 있다.
※ KAM은 아버지 아서 다시와 장남 키스(Keith), 셋째 마이클(Michael), 막내 데니스(Dennis) 다시를 비롯한 5명의 아들, 여직원 1명으로 운영되는 가족회사로 알려져 있다. 회사 이름 KAM도 창업자인 아서의 이니셜을 키스와 마이클 사이에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각급 대표팀간 경기를 주선하는 매치 에이전트가 주업무였는데, 감독 추천으로 영역이 확장됐다. 최근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선수로 뛰었던 막내 데니스가 선수 에이전트(Player's Agent) 자격을 얻어 사업 영역을 다변화하고 있다.

둘째, 2002년 월드컵 당시 이용수-가삼현 체제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김판곤-전한진(사무총장) 체제가 감독 선임 작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수-가삼현 체제는 역대 외국인 감독 영입 협상과 관리 측면에서 한국축구 최고의 콤비라는 평가를 받았다. 곧 밝혀질 새 감독의 역량과 대표팀의 성과는 김판곤-전한진 체제의 역량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이용수-가삼현 체제가 현장 중심의 협상, 회장과 직접 소통에 따른 신속한 의사 결정이라는 효율을 지향했다면 이번 김판곤-전한진 체제는 절차와 시스템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 예비 후보와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사이에 유럽 현지 사전 접촉, 귀국 후 소위원회를 통한 논의와 우선협상 대상자 재선정이라는 절차를 추가한 것이 이같은 경향을 보여준다.
감독 선임 과정에 정몽규 회장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감독 선임 과정 어디서도 정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넷째, 김판곤-전한진 체제의 일처리 방식과 지나친 비밀주의에 대한 평가다. 회의 내용은 물론 위원장의 동선과 일정, 회의 장소까지 비밀로 했다.
이용수-가삼현 체제 때 회의 내용은 가능한 공개됐다. 당시와 현재 미디어 환경은 크게 달라졌지만, 우선협상 대상자의 면면을 언론에 슬쩍 흘려 여론을 떠보는 일도 있었다. 회의 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가능한 답변했다. 이 위원장은 "정몽준 회장에게 보고하면 '나는 늘 언론을 통해 회의 내용을 안다'고 농담했다.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설명하면 정 회장은 '알아서 하라'고 말하곤 끝이었다. 정 회장과 즐겁게 일했다"고 돌아봤다.

다섯째, 감독 선임 뿐만 아니라 그 후가 더 중요하다.
기술위원장이나 감독선임위원장은 새 감독과 협회 행정 조직, 코칭스태프, 선수, 팬과 관계를 정상적으로 설정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른바 코디네이터 역할이다.
이 위원장은 히딩크 감독의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의 대표팀 숙소 방문, 히딩크 감독의 휴가 일정과 시기 문제, 감독과 코치 선수 지원스태프와 갈등, 언론과 소통 등 히딩크 감독 재임 기간 동안 발생한 수많은 문제에 대해 때로는 협의하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합의점을 찾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신태용 감독이 이번 러시아월드컵 스웨덴전을 비롯한 조별리그 초반 정상적인 경기력을 보이지 못한 원인으로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때의 컨디션 조절 실패, 러시아 현지 캠프 선정 문제, 감독과 선수간 불신 등을 꼽는다. 신 감독과 지원 스태프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백서를 한번이라도 찬찬히 읽어봤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화와 생각이 다른 외국인 감독의 경우 문제는 더 크게 나타난다. 감독 선임 후 김 위원장이 할 일이 더 많다는 뜻이다.
과거는, 건성으로 보면 그냥 흘러간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찬찬히 곱씹어 보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김판곤 위원장은 앞선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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