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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기 881구' 日고시엔 혹사 논란…다시 떠오르는 최동원 추억

작성일: 2018.08.28 11:17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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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후반 어느 해, 부산 사직구장에서 최동원 글쓴이 윤학길(왼쪽부터). 글쓴이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고인을 추억하곤 한다. 그리고 이 말이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형님, 저는 부진한 투구를 해도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야수들이 기가 죽으니까요.”

- 스포티비뉴스 신명철 편집 위원 칼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7일 스포티비뉴스 신원철 기자가 쓴 '고시엔 881구 논란' 요시다, 日 언론은 "제2의 손수건 왕자" 제하 기사가 야구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글쓴이도 야구 팬이니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 팀은 자국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자 야구 월드컵에 출전한 '마돈나 재팬' 관련 기사가 더 많다. 그리고 이 둘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관심이 18세 이하 대표 팀에 쏠린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선수는 역시 요시다 고세이. 올해 아키타 현 대회에서 5경기 749구, 고시엔 대회 6경기에서 881구를 던지며 소속 팀 가나아시농고를 결승전까지 올려놓은 특급 유망주다.

(중략) 요시다는 "대회도 끝났고 피로는 다 풀렸다. 트레이너 분들의 도움을 받아 컨디션을 회복했다. 슬슬 야구다운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네오 아키라, 후지와라 교타 등 특급 유망주들이 모여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요시다에 대한 주목도가 특히 높다.

일본 주간 베이스볼은 "방송사 카메라 8대, 스틸 카메라 10대, 30여 명의 취재기자가 오직 요시다만 바라봤다"며 "2006년 손수건 왕자 신드롬을 일으킨 사이토 유키(닛폰햄)를 보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일본 야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비슷한 기사를 언제 봤지”라는 생각을 할 듯하다. 그럴 만하다. 고시엔 대회에서는 잊을 만하면 ‘괴물 투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나온 사이토 유키를 보자.

2006년 제88회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에서 와세다실업고는 결승전 재경기 끝에 고마다이토마코마이고를 4-3으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우승교의 기둥 투수인 사이토 유키는 결승전 재경기에서 6피안타 13탈삼진 무사사구 완투승을 거뒀다. 투구 수는 118개였다.

사이토는 전날 1-1로 비긴 결승전에서 7피안타 16탈삼진 6사사구로 15이닝을 버텼다. 투구 수는 178개였다. 이틀 동안 24이닝에 296개의 공을 던졌다.

사이토는 일본대학 제3고와 치른 서도쿄 지역 예선 결승에서도 11이닝 동안 221개의 공을 던졌다. 서도쿄 지역 예선을 마치고 일주일 뒤 고시엔 대회 첫 경기 스루사키공업고와 경기에서는 9이닝 동안 126개의 투구 수를 기록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이토는 고시엔 대회 사상 처음으로 7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 69이닝을 던지며 948개의 투구 수를 기록했다. 투구 수가 100개를 넘어가면 곧바로 투구 수를 확인하는 게 일반화된 요즘 국내 야구 실정에서 보면 사이토의 투구 기록은 살인적이라고 할 만하다.

사이토는 와세다대학교 시절 도쿄 6대학 리그 사상 여섯 번째인 통산 30승-300탈삼진(31승-323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2011년 닛폰햄 파이터즈 유니폼을 입은 사이토는 지난해까지 7시즌 동안 15승 23패 평균자책점 4.23의 그저 그런 성적에 그쳤다.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2군에서 출발한 2013년 시즌에는 1패 평균자책점 13.50의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고교 대학 시절 무리한 투구의 결과로 봐야 한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이가 고 최동원이다. 1978년 6월 4일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국 야구의 메카 동대문구장에서는 대통령기전국대학야구대회 준결승 연세대와 동아대 경기가 벌어졌다. 연세대 최동원과 동아대 임호균의 투수전속에 연장 14회 0-0, 일몰 일시 정지 경기가 됐고 이튿날 벌어진 계속 경기 연장 18회 초 김봉연의 결승 홈런이 터져 연세대가 1-0으로 겨우 이겼다.

그리고 몇 시간 휴식 뒤 연세대와 성균관대 결승전이 이어졌다. 연세대 선발투수는 물론 최동원이었다. 연세대는 접전 끝에 성균관대를 3-2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최동원은 이틀에 걸쳐 27이닝에 투구 수 375개 12안타 33탈삼진 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는 투구 내용을 기록했다.

성균관대 김동엽 감독(작고, 뒷날 프로 야구 해태 타이거즈·MBC 청룡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마운드에 올라가,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최동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했다. 평소 쇼맨십이 강했던 김 감독이지만 그날만큼은 결코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었다. 야구공에 혼(魂)을 실어 던진 상대 팀 에이스에 대한 정중한 예의였다.

경남중~경남고~연세대~실업 야구 롯데 자이언츠~한국전력(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잠시 있던 팀)을 거치며 아마추어 시절 엄청난 혹사를 한 최동원은 1987년 14승 12패(평균자책점 2.81)를 거둔 이후 급격하게 구위가 떨어졌다.

그 무렵 고인과 글쓴이는 사직구장 기자실에서 야구인들 표현인 ‘공이 안 온다’는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전날 선발 등판한 고인의 공이 글쓴이 눈에는 19승 14패(평균자책점 1.55)를 거둔 1986년 시즌과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경기 기사 끝에 추가했고 고인이 그 내용을 보고 글쓴이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짐작건대 고인도 분명히 어깨에 이상이 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아마추어 시절은 물론 프로에 데뷔한 1983년 이후에라도 적절하게 휴식하면서 어깨를 관리했으면 고인의 전성기는 1990년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투수 혹사 논란 얘기가 나오면 생각나는 최동원 이름 석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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