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라인투라인]‘청춘FC' 보다 더 ’청춘FC' 같은 호승욱의 이야기
작성일: 2015.07.30 10:38
SPOTV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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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태륭 해설위원] 예능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지만 전혀 예능 같지 않은 ‘청춘FC' 가 요즘 주말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축구에 인생을 걸었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 포기해야 했던 ‘축구 미생’들의 재기 과정 자체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카테고리가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구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엘리트 시스템’은 해당 분야에서 상위 카테고리 팀에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이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수 있는지에 대해 안내하지 못했다. 그래서 축구를 포기한 많은 선수들은 아무 준비 없이 사회에 나온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며 매일같이 선수 시절을 생각하고 아쉬워 한다.
“선수 할 때가 가장 행복했는데...”
“한 번 만 더 기회가 생긴다면 잘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이런 아쉬움과 후회를 원동력으로 6년 만에 프로 축구선수로 재기한 한 선수에 대한 동화같은 이야기다.
#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친 ‘또래 No.1' 공격수
호승욱은 기성용, 이청용, 고요한, 고명진 등 한국축구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들과 같은 1988년 생이다. U-12 부터 U-19 까지 각급 연령별 대표팀에서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고 광양제철고 3학년이던 2006년에는 여러 차례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전국대회 3관왕으로 이끌었다. 177cm, 큰 키는 아니지만 폭발적인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 능력은 그를 또래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게 했다. 그리고 호승욱은 고교 졸업과 동시에 2007년 K리그 우선지명으로 기대 속에서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승욱이 형은 고등학교 때 신이였죠.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너무 빠르고 강하니까 일대일 상황에서 승욱이 형을 막을수 있는 선수가 전국에 없었어요. 승욱이 형 동기들도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저희가 2006년에 고교 무대를 거의 평정했었어요.”- 윤석영 (전남 유스 후배, QPR)
# 최고의 유망주, 하지만 K리그 출전 기록은 0’.
2007년 우선지명으로 전남에 입단했지만 첫 시즌부터 부상의 악령이 찾아왔다. 피로 골절로 인해 두 차례 수술을 했고 그렇게 1년 동안 재활에 매진했다. 하지만 독하게 한 재활은 성과가 있었다. 2008시즌 전반기 2군리그 13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하며 당시 전남의 사령탑이였던 박항서 감독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후반기 1군 데뷔를 앞둔 어느 날, 무릎에 큰 통증을 느꼈고 병원을 찾은 결과는 또다시 수술이었다. 9월 무릎 수술을 하고 다시 한번 재활을 시작했지만 계속된 부상에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다. 결국 호승욱은 이듬해 1월, 전남과 계약을 상호해지하고 팀에서 나왔다. 연령별 대표 시절 동료였던 기성용, 이청용이 대표팀에서 맹활약 하던, 그에게는 너무도 추웠던 2009년 1월 이었다.
# 잡다한 알바부터 옷 장사까지, 그리고 유소년 지도자 시작
팀에서 나온 후, 그는 일부러 축구를 멀리 했다. 축구 선후배 및 동료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취미로 하는 축구조차 하지 않았으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도 보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옷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몇 군데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모두 얼마 가지 못했다. 그렇게 축구 없이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길이 없을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축구를 멀리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것은 축구였다. 2013년 4월, 그는 지인의 소개로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한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교육하기 어려운 취미반 아동들도 큰 어려움 없이 잘 다뤘다. 덕분에 그는 1년 만에 인정받는 인기 강사가 되었다. 소속된 아카데미에서 승진도 했고 일에 대한 보람도 느끼기 시작했다.
# 4년 만에 처음 신은 축구화, 그렇게 살아난 가슴 속의 야수
호승욱은 유소년 지도자를 시작하며 아이들과 자연스레 공을 찼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아닌 성인들과 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동네 조기회와 지인들이 속한 클럽팀에 한두번씩 나가기 시작했다.
"4년 만에 축구화 신고 성인들과 경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몸이 좋더라구요. 한 경기에 7~8골씩 넣다보니까 조금 더 체계적인 팀에서 강한 상대와 경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4년간 축구는 물론 헬스도 안하다 보니 몸무게가 10kg 이상 불었었는데 유소년 지도자 시작하면서 두달 만에 다 뺐어요. 매일매일 줄넘기 만번씩 하니까 빠지더라구요. 살 찌는게 너무 싫어서...”
모르는 전화번호를 통해 승욱이가 내게 전화를 한 건 2014년 봄 무렵이었다. 나의 전남 드래곤즈 선수 시절 시즌 막바지에 석달 정도 함께 생활을 했었다. 나 또한 팀을 나온 후로는 소식이 끊겼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한 통화였다. 승욱이는 내가 감독을 하고 있는 사회인 축구팀인 TNT FC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솔직히 조금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팀은 비록 사회인 팀이지만 내부 규율과 질서가 엄격한 팀이다. 무엇보다 승욱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몰랐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기에 합류시켰다. 팀에 합류한 첫 연습경기에서 승욱이는 5골을 기록했고 팀원 모두에게 호감을 주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마치 팀에 오래 있었던 선수와 같은 느낌을 갖게 했고, 모든 팀원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되었다.
그가 바라던 대로 보다 체계적인 팀에서 마음 편하게 공을 차기 시작했다. 일과 사회인 축구를 병행하며 만족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TNT FC 에는 프로팀에서 방출되었거나 대학 졸업후 취업에 실패하여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여름과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국내외 프로팀의 테스트를 통해 프로무대에 도전하는데 2014년 7월, TNT에서 전반기를 보낸 두 명의 선수가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호승욱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다.
“처음에는 TNT에서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축구할 수 있는것 자체가 좋았어요. 대회에 나가서 오랜만에 긴장감도 갖고 우승의 기분도 느끼구요. 그런데 같이 있던 동료들이 다시 프로로 복귀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뛰더라구요. 나도 저 정도는 할수 있을것 같은데.조금만 몸 착실하게 만들면 할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 년간 이어졌어요.”
그는 유소년 지도자로 자리를 잡았고 축구는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지금것 살아온 삶 중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다. 6년의 공백이 있지만 워낙에 타고난 신체가 우수했기에 몸 상태는 좋았고 수술 받았던 무릎과 발에도 통증이 없었다. 다만 축구선수가 다시 되기 위해서는 몸을 만들어야 했고,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절대 쉽게 결정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 아버지의 한마디 “네가 축구선수로 뛰는 거 다시 한 번만 보면 소원이 없겠다.”
가족 및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여전히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또한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한마디가 그의 결심을 이끌어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한잔 드시고 집에 들어오셨는데 가만히 있으시다가 갑자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네가 축구선수로 뛰는 거, 다시 한 번만 보면 소원이 없겠다라고요. 그 다음날 바로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어요. 감사하게도 대표님도 제 뜻을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셨죠. 지인들과 팀 동료들도 응원해줬어요. 결심하고 행동한 게 올해 초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했어요. 다행히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 같았고요.”
사실 승욱이의 결심을 듣고 마음이 복잡했다. 자리잡고 잘 사는 애한테 내가 괜히 바람 넣은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6년의 공백을 딛고 프로무대로 복귀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승욱이가 신체적으로 준비를 잘 하더라도 상황 상, 국내 프로팀에서는 테스트조차 보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심한 이상, 안되더라도 도전해보고 안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기에 승욱이를 지지했다. 그때부터 유독 쓴 소리를 많이 했다. 경기 중에나 일상생활에서 잔소리로 들릴만큼 승욱이를 종종 귀찮게 했다. 그리고 몇 번은 동료들 앞에서 그의 경기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축구선수 호승욱의 레벨은 2009년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은 2015년이다. 6개월 동안 6년간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욱이는 잘 이해했고 수긍했다. 그리고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표현해냈다.

# 태국에서 축구동화의 주인공이 되다.
현 TNT FC의 강화부장이자 에이전트인 정현민은 태국 리그 전문가다. 과거 부천FC의 플레잉코치를 맡기도 했던 그는 태국 현지의 파트너를 통해 많은 구단주와 감독들과 교류하고 있고 한국 선수들이 태국 리그에 진출할 때 겪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정현민은 호승욱의 프로필과 경기자료를 태국리그 디비전1에 소속된 팀에 제공했고 그 중 몇 개 구단으로부터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테스트 받았던 한 구단의 감독은 영국인이였는데 저를 무척 좋게 평가했어요. 다만 경기력에서 그동안의 공백 기간이 조금은 느껴진다고 하더라구요. 팀에서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는데 일주일내에 구하지 못하면 바로 저와 계약하겠다고 했어요. 2,3차례 연습경기를 했는데 그게 소문이 났나봐요. 이후 다른 팀에서 구체적인 제의가 오기 시작했어요. 앙통FC가 가장 적극적이였고, 앙통FC에서 한차례 더 연습경기를 소화하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했어요. 연습경기 마치고 나올 때 경기를 지켜보던 구단주가 엄지를 척 하고 들어올릴때 뭔가 될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있었어요.”
앙통FC는 현재 태국리그 디비전1에서 4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순위 3위 내로 시즌을 마감하면 다음 시즌 TPL (Thai Premier League)로 승격한다. 최근 태국리그는 중국과 더불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김동진, 고슬기, 조병국, 이호, 김근철 등 많은 선수들이 태국에서 활약하고 있고 무앙통FC, 부리람 유나이티드는 ACL에서 이미 경쟁력을 증명했다. 앙통FC는 호승욱에게 1년6개월의 계약기간과 디비전1 소속의 외국인 선수 중 상급에 속하는 대우를 제시했다. 그동안 공백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무대로 재기하는 선수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6년의 공백기를 극복한 선수는 호승욱이 유일했다. 축구를 하기에 너무도 좋은 몸을 타고난 것도 있지만, 다시 몸을 만들기까지 흘린 땀방울은 누구의 것보다 무거웠을 것이다.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맞는것 같아요. 동화같이 다시 재기했으니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어요. 국내무대로 복귀하는것도 좋지만 우선은 태국리그에서 인정받으면서 선수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요. 팀의 승격을 돕고 ACL도 출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연락 끊었던 옛 친구들과도 이제는 연락도 하고 해요. 필드에서 다시 함께 웃고 싶습니다.”
호승욱은 지난 주말 열린 방콕FC를 상대로 태국무대 데뷔전이자 6년만에 프로 레벨 경기를 치렀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위협적인 돌파로 팀의 2-1 승리에 힘을 보탰다.
[사진] 호승욱 연령대 대표팀, 태국리그 시절 ⓒ SPOTV NEWS, 김태륭
[영상] 호승욱 ⓒ SPOTV NEWS, 송경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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