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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뿌리를 찾아서⑨-한국 스포츠의 금과옥조인 조선 체육회 창립 취지서

작성일: 2018.11.01 09:49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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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체육회 90년사에 실려 있는 조선체육회 창립 취지서.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9년 역사적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를 앞두고 익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일원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전이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오늘날 대한체육회)는 그해 가을 전국체전의 기산점이 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해 100여년 뒤 후손들이 프로 야구와 축구 월드컵에 열광하고 조기 축구와 직장 야구, 3-3 농구, 주말 골프를 즐기는 스포츠 환경의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 스포츠 ‘선사 시대’에 선각자들은 이 땅에 스포츠를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활동을 했을까. <편집자 주>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 창립총회에서 발기인을 대표해 장덕수가 자신이 쓰고, 읽은 창립 취지서를 오늘날 말로 풀어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라 반공중에 솟은 푸른 소나무와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그 얼마나 굳세며 꿋꿋한가! 천지에 흐르는 생명은 정말 모두 움직이고 있도다. 보라! 공중에 나는 빠른 새와 땅위에 기는 날랜 짐승을! 그 얼마나 강건하며 민첩한가. 천지에 흐르는 생명은 정말 웅장하도다.

오오! 천지의 만물은 오직 생명의 한 덩어리로다. 사람은 원래 약동, 충실, 웅장한 생명을 받고 태어났으니 그 몸은 소나무처럼 웅건하고 그 정신은 해와 달처럼 밝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지 못해 안색은 어두워 아무런 광채가 나지 않고 그 몸은 가는 버드나무 가지 같아 아무 기력이 없으며 그 정신이 흐릿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런 현상은 안일한 생활과 절제 없는 몸가짐에 빠져 하늘의 섭리를 거슬렀기 때문에 생명이 막힘없이 뻗어 나지 못한 탓이다. 이런 현상은 개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국가 사회의 쇠퇴를 불러오는 데다 그 나쁜 영향이 현재에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장래로 이어져 자손에 미칠 것이니 바로 멸망의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우리가 한심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이런 한심한 현상을 바르게 회복하여 웅장한 기풍을 일으키고 강건한 몸을 키워 사회 발전과 개인 행복을 바란다면 그 길은 오직 하늘이 내린 생명을 몸에서 뻗어 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운동을 장려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 조선에 개개의 운동 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를 후원하고 장려해서 조선 사람들의 생명을 원숙하게 뻗어 나아게 하는 사회적 통일적 체육 기관이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들이 안타깝게 여기던 일이었고 민족의 수치라고 하겠다. 우리들은 여기에 느낀 바 있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발기하는 것이니 조선 사회의 동지 여러분들은 와서 찬동해 주기를 바란다.”

100여년 전 조선체육회 창립 취지서는 오늘날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한국 스포츠의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할 수 있다.

조선체육회는 평의원회를 두고 학교장과 체육 교사 등 각 학교 관계자와 체육회 창립에 참여한 체육인 등 20명을 선임하는 한편 임경재(휘문고보 교장)를 평의원들의 장으로 선출했다.

집행부에는 회계 감독(김병대 김규면), 운동부(현홍운 외 부원 11명), 사교부(이승우 외 부원 16명, 편집부(유지영 외 부원 4명) 등 4개 부서를 뒀다. 이밖에 임원진에는 들지 않았으나 체육회 발기와 창립에 중대한 일을 한 이중국은 총무를 맡았다.

오늘날 한국 스포츠 있게 한 고마운 선각자들인 조선체육회 발기인 명단은 아래와 같다. 괄호 안은 당시 직업이다.

강락원(유도·검도 사범) 강창희(정구인) 고원훈(보성전문 교장) 구자옥(서울YMCA 총무) 구종태(조선은행 정구 선수) 권동진(천도교 간부) 권승무(야구인) 김규면(공동무역 전무) 김기전(개벽사 주필) 김동식(식산은행 -> 산업은행 행원) 김동철(동아일보 기자) 김동혁(배재고보 교원) 김명식(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성수(동아일보 사주) 김세환(수원 실업인) 김영주(보성전문 상과 과장) 김용채(내과 의사) 김우영(변호사) 김병대(실업인) 김운호(실업인) 김윤수(동양물산 중역) 나경석(수원 유지) 남백우(원산 유지) 노정훈(축구인) 민규식(은행가) 민대식(제일은행 두취 -> 은행장) 박승빈(변호사) 박용준(산부인과 의사) 박우병(경신학교 교원) 박이규(노동공제회 간부) 박준호(동성학교 교장) 박창훈(의학 박사) 방한용(고려구락부 소속 야구인) 백낙준(연희전문 교수) 변봉현(동아일보 기자·야구인) 서병희(라이싱 선 석유회사 사원) 서상국(야구인) 서상일(동아일보 대구지국장) 송제원(동아일보 신의주지국장) 송진우(수감 중) 신봉균(상업은행 행원) 신일용(광주 의사) 신흥우(도쿄 조선인 YMCA 회장) 안종서(치과 의사) 안종원(양정고보 교장) 안희제(동아일보 부산지국장) 오극선(세브란스의학전문 교장) 오한영(의사 정구인) 원달호(연희전문 교수) 유문상(경성직물 사장) 유양호(중앙유치원 원장) 유용택(야구인) 유지영(매일신보 기자) 윤기현(도쿄 유학생 야구인) 윤방현(광산업) 이건표(축구인) 이기동(휘문고보 교원) 이동선(조선매약주식회사 사장) 이동식(도쿄 성학원 심학교 출신) 이병희(보성전문 출신 체육인) 이상기(도쿄 유학생 야구인) 이상협(동아일보 편집국장) 이상희(보성고보 교원) 이석찬(한성광업 평양지소장) 이성열(배재고보 교원) 이세정(매동보통학교 교원) 이세현(동양물산 지배인) 이승우(변호사) 이용문(봉명학교 교주) 이원용(서울YMCA 회원) 이중국(도쿄 유학생) 이창석(동아일보 선천지국장) 임경재(휘문고보 교장) 임극순(조선은행 행원 보성전문 강사) 장덕수(동아일보 주필) 장덕준(동아일보 기자) 장두현(동양물산 사주) 정대현(보성고보 교장) 조동식(동덕여학교 교장) 조철호(중앙학교 교원) 진학문(동아일보 정경부장) 차관호(실업인) 차상찬(보성초등학교 교원) 최규동(중동학교 교장) 최남(동아부인상회 주인) 최두선(중앙고보 교장) 최명환(보성고보 교감) 최순택(함흥 유지) 최진(변호사) 하상훈(동아일보 인천지국장) 한기악(동아일보 기자) 한진희(서울YMCA 유도 사범) 홍준기(야구인, 이상 91명) 이들 밖에 몇 사람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선체육회는 도쿄 유학생 체육인들과 국내 체육인들이 뜻을 모아 창립하는 과정에서 장덕수를 비롯한 민족 지도자급 인사들과 민족정신이 강한 교육계 중진, 서울YMCA 인사들의 후원과 참여로 민족 운동체로서 성격을 갖게 된다.

발기인들의 얼굴들을 살펴보면 체육인들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나 뒷날의 부통령 김성수, 광복 이후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거물 정치인이었으나 암살당한 장덕수, 국무총리 최두선, 문교부장관과 참의원 의장을 지낸 백낙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신흥우 그리고 대학이 없던 시절 보성전문, 연희전문, 세브란스 의학전문, 보성고보, 배재고보, 경신학교, 동성학교, 양정고보, 휘문고보, 동덕여학교, 중앙학교, 봉명학교, 중동학교 등 사립 명문교의 교장이나 교원들이 대거 참여했으니 조선체육회 창립은 거족적인 찬동과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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