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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북 체육 교류 완결편 올림픽 단일팀, 첫발 뗐다

작성일: 2018.11.02 19:41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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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오른쪽)이 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체육분과회담에서 원길우 북한 체육성 부상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일 스포티비뉴스 이민재 기자가 개성에서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남과 북은 앞으로 열릴 여러 국제 대회와 2020년 도쿄 여름철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문제에 대해 뜻을 함께했다. 이는 나아가 ‘통일 한국’ 팀을 이룰 수 있는 매우 의미 깊은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체육 분과 회담에는 남측에서 수석 대표인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송혜진 총리실 협력관, 박철근 대한체육회 국제본부장이 참석했다. 북측에선 원길우 체육성 부상을 단장으로 고철호 북한올림픽위원회 서기장과 리은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참사가 자리했다.

북측 인사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갖고 있는 정보가 없지만 남측 대표 가운데 노 차관은 문체부 체육국장을 지낸, 박 본부장은 체육회에서 잔뼈가 굵은 스포츠 분야 최고 전문가다.

남북은 공동 보도문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경기 공동 진출 뜻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단일팀 출전과 관련된 실무적 문제들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및 종목별 국제 경기 단체들과 협의해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32년 여름철 올림픽 공동 개최 의향을 담은 서신을 IOC에 공동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종목별 단일팀 구성은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 그리고 2018년 평창 겨울철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등 몇 차례 사례가 있기에 진행 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공동 유치와 올림픽 모든 종목 단일팀 구성은 만만치 않은 과제다.

올림픽 공동 개최 의향서 제출과 관련해서는 서울 올림픽 때 사례를 살펴본다. 북한이 뒤늦게 공동 개최 또는 분산 개최를 주장하기 전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과 전두환 신군부 출현 등으로 어수선했던 1979년 말과 1980년 초를 지나 1980년 12월 4일 IOC는 한국 서울시와 일본 나고야시가 1988년 여름철 올림픽 유치 신청 도시가 됐다고 발표했다.

1978년 태릉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올림픽 유치 꿈을 갖게 된 뒤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결과였고 이후 서울이 나고야를 따돌리고 제24회 여름철 올림픽 개최 도시가 된 내용은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유치 신청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정부 유관 부처 사이에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IOC는 1980년 12월 151쪽에 이르는 질문서를 KOC(대한올림픽위원회)에 보내는 한편 서울시의 올림픽 유치 신청서 및 KOC의 서울시 지원 확인서 그리고 정부 책임자가 서명한 올림픽 유치 보증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따라 문교부(당시 스포츠 관련 정부 부처)는 서울시, 대한체육회와 대책 협의회를 갖고 유치 신청서 작성의 주관 부처와 합동 작업반 편성 및 예산 확보 등 제반 문제를 검토했다.

애당초 올림픽 유치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서울시는 체육회와 합동 작업반 구성에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문교부는 체육국장이 실무 작업반 총책임을 맡고 문교부와 서울시 사무관 1명씩을 KOC 전문위원실에 파견해 합동 근무하도록 절충안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유치 도시인 서울시는 유치 신청서 작성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해를 넘긴 1981년 1월 6일에야 KOC 주도로 서둘러 작업에 착수했고 시간에 쫓긴 KOC 실무반은 40여 일의 철야 작업 끝에 영문판 190쪽, 프랑스어판 163쪽 등 방대한 질문 답변서를 제출 마감일을 불과 나흘 앞둔 1981년 2월 24일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KOC는 이 많은 분량의 질문 답변서와 신청서를 우송할 경우 마감일까지 IOC 본부에 접수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KOC와 서울시 실무자 3명이 이를 휴대하고 직접 제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1981년 2월 25일 서울을 떠나 26일 IOC 본부에 도착한 3명의 운송반은 주 제네바 한국 대표부 협조를 받아 제반 서류를 제출했다.

경쟁 도시인 나고야는 한국보다 1시간 앞서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유치 신청서는 양적인 면에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고 한국에 비해 내용도 부실했던 것으로 뒤에 드러났다.

남북 단일팀을 꾸리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3차례 여름철·겨울철 올림픽에 출전했던 동·서독 단일팀 사례를 알아본다.

독일 단일팀은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세 차례 동·하계 올림픽에서 각각 종합 순위 9~2~6, 7~4~4위를 기록했다. 뒷날 '통일 독일(United Germany)'로 출전하는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에서 1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에서 3위에 오른 것보다는 뒤지는 성적이지만 '베를린 장벽'이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 상태에서 하나의 독일로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독일 단일팀은 이뤄지지 않았고 스포츠 팬들은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때 GDR[동독, 독일민주공화국] FRG[서독, 독일연방공화국] 팻말을 들고 입장하는 두 나라 선수들을 지켜봤다. 서울 올림픽에서 뛴 서독 선수로는 슈테피 그라프(테니스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동독 선수로는 크리스틴 오토(여자 수영 6관왕)가 있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통일 이후 1992년 알베르빌 동계 대회와 바르셀로나 하계 대회 때 단일팀보다 한 발 더 나아간 '통일 독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통일된 독일의 올림픽 출전은 1936년 가르미시-파르텐키르헨(독일) 동계 대회와 베를린(독일) 하계 대회 이후 56년 만의 일이었다.

'통일 독일'이 독립국가연합(옛 소련)과 미국에 이어 종합 순위 3위를 차지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여자 멀리뛰기에서 우승한 하이케 드렉슬러는 동독, 테니스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보리스 베커는 서독 출신이었다.

이어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제 종합 경기 대회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내용을 다시금 살펴본다. 오래전이지만 당시로서는 남북 체육 관계자들이 머리를 짜낸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이제는 다듬어야 할 곳이 꽤 많겠지만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결과물이었다.

*선수의 선발

1)선발 경기를 통해 선발

2)선발 경기는 합동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공개적으로 실시

3)선발 경기는 종목별로 서울·평양 등 남북 지역에서 1회 이상 실시

4)종목별 선발 방법

#기록 종목:육상 경영 역도 양궁 사격 사이클 조정 카누·요트 골프

#채점 종목:체조 다이빙 우슈

이상의 종목은 선발 경기 기록 위주로 하되 훈련 중 평가 기록도 고려. 출전 선수가 2명 이상인 경우 남북에서 적어도 1명씩 포함

#격투기 종목:복싱 유도 레슬링 펜싱 카바디

합동 훈련 및 국제 대회 성적을 고려. 카바디는 구기 종목의 예를 따름

#구기 종목:축구 농구 배구 수구 핸드볼 소프트볼 하키 세팍타크로 야구

이상의 종목은 선발 경기에서 먼저 2승을 거둔 팀을 선발

탁구 배드민턴 연식정구 테니스

이상의 종목은 리그전에서 승률 순. 우수 선수 일부 포함

#특정 종목의 선수가 없는 경우는 선수 보유 측에서 선발

#구체적인 방법은 공동 추진 기구에서 협의해 결정

*선수의 훈련

1)훈련의 종류:합동 훈련 강화 훈련

2)선수·원의 수:경기 참가 정원 수 정도로 하되 종목별 특성에 따라 조정

3)훈련 방법:상대방의 고유 훈련 방법 존중

4)선수 교체:합동 훈련 기간 중 가능

5)실시 기간:공동위원회 발족 후 1개월 이내

6)강화 훈련:선수단 구성 후 대회 참가 때까지

7)훈련 장소:남·북한 및 제3의 장소

8)편의 제공:훈련 장소를 제공하는 측에서 제공

9)그밖의 사항은 공동추진기구에서 협의해 결정

*선수단의 구성

1)구성 시한:예비 신청 마감일까지

2)단장은 선수가 많은 측, 부단장은 선수가 적은 측

3)감독은 선수가 많은 측, 코치는 선수가 적은 측

4)본부 임원: 선수 비율에 따라서

5)선수단 균형:가능한 한 현저하게 잃지 않도록

*선수단의 경비

1)참가 경비:구성 비율에 따라 공동 부담

2)훈련 경비:초청 측 부담

3)전지훈련:협의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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