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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작전판] 에릭손이 묶은 벤투 축구, 황희찬 돌격이 열쇠였다

작성일: 2019.01.08 09: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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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손 감독은 벤투 감독의 축구 특징을 철저히 준비하고 차단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스벤 예란 에릭손 필리핀 대표팀 감독이 한국을 철저히 분석했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풀백을 높이 전진시키고 네 명의 공격수가 중앙에서 전후좌우로 이동하며 침투하는 벤투 감독 체제 특유의 패턴을 필리핀 선수들은 적재적소에서 끊었다. 풀백의 크로스는 무뎠고, 중앙으로 침투하는 선수들은 일대일에서 파괴적이지 못했다. 

흔히 말하듯 고구마를 100개쯤 먹은 듯한 경기였다. 에릭손 감독이 준비한 필리핀의 수비 그물은 틈을 찾기 어려웠다. 유럽에서 나고, 유럽에서 축구를 시작한 선수가 대부분인 필리핀 대표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았다. 역습 공격 상황에는 오히려 더 현란한 발재간을 자랑했다.

◆ 한국을 괴롭힌 필리핀, 현대 축구의 교과서적 상황

현대 축구에 압박은 일상이다. 후방에서 빌드업하면서 상대를 끌어들이고, 사이드를 전환하며 상대 블록 수비를 흐트러트리며, 측면을 파고 들다 중앙으로 공을 보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던 선수가 잘라 들어오며 득점하는 패턴은 현대 축구에서 교과서적인 플레이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두 줄 수비도 보편화됐다. 

필리핀은 5백 수비를 배치해 풀백과 센터백 혹은 센터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 침투를 제어했고, 라인과 라인 사이도 좁혀 한국이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필리핀이 펼친 예견된 수비 축구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이유는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필리핀 선수들의 기량과 준비가 예상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필리핀을 압도하지 못했다. 지난해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기성용은 한국 대표팀이 아시아 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이유로 보편화된 수비 전술을 뚫기에 일대일 능력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10명의 선수가 진을 치고 있으면, 뚫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아시아 축구 수준도 예전보다 많이 올라왔고 좀 더 조직적으로 많이 변했어요. 그걸 뚫을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메시 같은 선수가 한 두 명 있다면 문제가 없겠죠. 결국 일대일 싸움에서 누군가 한 명을 제쳐 주면 공간이 나는 거고 제치지 못하면 계속 세밀하게 콤비네이션으로 뚫고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그렇게 세밀하게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요? 아시아 팀들과 경기를 하다 보면 일대일 상황에서 능력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좀 어려운 거 같아요."



◆ 풀백이 중요한 벤투 축구, 그런데 지금 풀백이 불안요소다

그렇다면 필리핀전의 한국은 일대일에서 어떤 문제를 드러냈을까?

벤투 축구의 핵심은 풀백인데, 지금 한국 대표팀의 불안요소가 풀백이다. 레프트백 홍철과 김진수는 전지 훈련 기간 나란히 부상을 입었다. 김진수는 지난해 3월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한 뒤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는 중에 다시 잔부상을 입었다. 갓 회복하고 뛴 경기였기에 모든 면에서 둔탁했다. 

라이트백 이용도 긴 부상에서 빠져나와 2018년에 너무 많은 경기를 치러 방전된 상태다. 이용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도 그랬고, 이번 대회도 한국 대표팀의 최고령 선수다. 해가 지나면서 만 33세가 됐다. 

이용은 볼 컨트롤 미스, 드리블 미스, 패스 미스에 크로스도 평소보다 부정확했다. 좌우 풀백이 약속된 위치까지 올라왔으나 필리핀의 측면 수비를 제대로 흔들지 못하면서 중앙 지역을 공략하던 선수들이 고립됐다. 

▲ 필리핀전은 벤투호 출범 이후 풀백의 안정성이 가장 떨어졌다 ⓒ연합뉴스


그런데 라이트백의 두 번째 선수로 뽑힌 김문환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막 이름을 알리고 대표팀에 데뷔한 어린 선수다. 이용과 김문환 사이의 경험치 간극이 꽤나 크다. 벤투 감독 입장에선 이용이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섣불리 선발 선수를 바꾸기 어렵다. 풀백이 견고하지 못하면 지금의 4-2-3-1 포메이션을 통한 전략은 앞으로도 배후 공간으로 역습 위기를 노출하는 단점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앙 지역에 배치된 구자철과 이재성도 개인 돌파나 콤비네이션 플레이 상황에서 9명의 선수가 근거리에 몰려 있는 필리핀 수비를 흔들기 역부족이었다. 경기를 조율하고, 패스 길을 잘 보는 유형으로 미드필더에 가까운 둘은 속도면에서나 기교면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수비를 무너트리는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능력을 가진 한국의 에이스 손흥민은 아직 합류하지 않았다. 해당 포지션의 또 다른 공격수 나상호는 대회 개막 하루 전 부상으로 이탈했고, 대체 발탁한 이승우도 경기 당일 도착해 뛸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중앙 지역에서 한 두 명은 제칠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는 11월 A매치 일정에 장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 황희찬과 황의조는 필리핀이 막을 수 없는 수준의 선수였다. ⓒ연합뉴스


◆ 황희찬의 돌격, 황의조의 결정력, 한국의 무기

그나마 일대일 상황에서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선수가 황희찬이었다. 필리핀전 결승골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황의조의 슈팅 보다 황의찬의 패스다. 황희찬의 돌격이 벤투호의 숨통을 틔웠다. 황의조가 넣은 결승골은, 황의조의 정확한 슈팅력도 중요했으나 그에 앞서 필리핀 수비를 뚫고 문전으로 진입해 견제 속에도 정확히 패스한 황희찬의 어시스트가 그에 준하는 비중을 갖는다. 

황희찬은 경기 내내 한국의 가장 위협적인 공격 옵션이었다. 실제 경기 기록을 봐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일대일 성공 횟수(17회)를 기록했고, 키패스도 두 차례 기록했다.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결과를 내는 것이다. 황희찬이 전반전에는 일대일 대결에서 55%로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한 필리핀 수비를 지속적으로 흔들었기에 한국이 이변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무려 4차례나 유효 슈팅을 기록한 황의조의 빼어난 슈팅 능력도 중요했다. 황의조가 시도한 슈팅 중 골문을 빗나간 것은 두 차례 뿐이었는데, 그 중 한 차례도 옆그물을 때렸다. 황의조와 황희찬처럼 확실한 강점을 가진 선수를 보유한 점은 벤투호의 축복이다. 

벤투호에서 중요한 것은 황씨성을 가진 세 명의 선수다. 기성용이 갑작스레 부상으로 이탈한 뒤 투입된 황인범도 좋은 패스를 뿌리며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진 필리핀의 공간을 직접적으로 공략했다. 물론 그에 앞서 투입된 이청용이 결승골 상황의 기점 패스를 보낸 것을 포함해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은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불안요소가 없지 않다. 앞서 언급한 풀백의 리스크와 더불어 상대 역습에 대처할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력이다. 볼을 소유한 상황에 더 강한 기성용과 정우영 조합은 발빠른 상대 역습 공격을 제어하는 데 약점이 있다. 풀백의 지원마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1차 저지선 역할에 능하지 않다. 그래서 필리핀전에 김진수, 이용과 정우영이 경고를 받았다.

▲ 기성용이 부상으로 이탈하면 한국 중원의 무게감은 크게 떨어진다. ⓒ연합뉴스


◆ 경고 트러블, 기성용 부상, 남은 일정의 최대 리스크

이들이 받은 경고는 향후 경기에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한 번 더 경고를 받으면 1경기 결장 징계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성용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회 자체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성용이 부상으로 빠지고, 정우영까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다면 황인범, 구자철, 주세종 등 세 명의 선수로 중원을 커버해야 한다. 

벤투 감독은 대회 전 "우리가 우승후보 중 한 팀이지만 절대적이지 않다"고 했다. 겸손이나 엄살이 아닌 냉정한 현실이었다. 필리핀전에 벤투 감독은 매우 격정적이고 진지했다. 쉬어갈 수 있는 경기가 없을 것이다. 키르기스스탄도 중국을 상대로 전반전이 기대 이상의 세련된 플레이를 했고, 오합지졸이라는 중국도 한국과 3차전에는 조직적으로 가장 완성된 상태로 경기할 것이다. 

손흥민이 합류하고, 선수들의 컨디션이 더 올라오면 한국은 더 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대회 일정을 치르면서 만나게 될 팀의 수준과 컨디션도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다.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린다. 가장 큰 근거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그리고 월드컵 4강 신화와 원정 16강, 독일전 승리와 같은 상징적인 결과다. 하지만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59년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일부 팀을 만나 리그 형태로 치르는 월드컵 예선과 달리, 녹아웃 스테이지를 거쳐 최고의 한 팀이 되야 하는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 벤투 감독의 아시안컵 목표는 우승이다. ⓒ연합뉴스


물론, 59년이나 한국이 우승하지 못한 데에는 객관적인 전력 외에 지도자의 문제, 대진표의 문제, 대회 중의 불운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챔피언은 그 모든 난관을 이겨내야 될 수 있다. 벤투 감독에게 주어진 미션도 쉽지 않다. 에릭손 감독의 필리핀을 만나 힘겹게 승점 3점을 얻은 것은 선수들의 정신 자세는 물론 벤투 감독과 코칭 스태프를 더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패한 뒤 각성했던 것처럼, 정신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남은 과제는 필리핀전에 드러난 기술적인 문제를 실제로 보완하는 것이다. 벤투 감독은 경기 후 회견에서 "첫 득점 때까지 좋은 기회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인정한 뒤 다음 경기에서는 더욱 정교한 공격을 준비하겠다. 최대한 공격을 많이 해서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키르기스스탄과 2차전은 12일 새벽 1시에 킥오프한다. 휴식 시간도 준비 시간도 결코 충분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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