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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농구(13)

작성일: 2016.05.09 06:00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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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1979년 제 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캐나다와 5승1패로 타이를 이뤘으나 골득실차에서 캐나다에 밀려 준우승했다. ⓒ한국 농구 100년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남자와 달리 여자는 1970년대 각종 대회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았다. 1976년 홍콩에서 열린 제 6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중국에 68-73으로 져 준우승했다. 그러나 1978년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진 제 7회 대회에서 중국을 63-61로 따돌리고 곧바로 정상을 되찾았다. 한국은 1965년 첫 대회(서울)에서 우승한 뒤 1970년 쿠알라룸푸르 대회에서 일본에 잠시 정상을 내줬을 뿐 1974년 제 5회 대회(서울)까지 4차례나 우승하며 아시아 여자 농구의 강호로 군림했다. 1978년 대회 이후에는 1984년 상하이 대회까지 4연속 우승했고 1986년 쿠알라룸푸르 대회(우승 중국, 준우승 한국) 이후에는 중국과 우승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 기간 1978년 제 8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1960년대 박신자의 뒤를 이어 1970년대에 샛별처럼 등장한 센터 박찬숙과 가드 강현숙 홍혜란 그리고 포워드 정미라 조영란 등을 앞세운 한국은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08-20으로 꺾은 데 이어 라이벌 일본을 63-48, 태국을 97-49로 물리치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77-68로 잡고 4전 전승으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여자 농구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일본에 70-71로 져 준우승한 아쉬움을 달랬다. <13편에 계속>  
   
1979년 4월 잠실체육관이 완공돼 1980년대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양대 스포츠 축제의 터전이 되는 ‘잠실 스포츠 콤플렉스’의 출발을 알렸다. 잠실체육관에는 장충체육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기 전 워밍업을 위한 보조 경기장이 주 경기장 옆에 있었다. 장충체육관에는 보조 경기장이 없어 복도에서 선수들이 몸을 풀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 등 기존 시설로는 폭증하는 국내외 스포츠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76년 10월 잠실종합운동장 건설 기본 계획을 세웠다.   1970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열려고 했을 때 육상 등 주 경기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던 동대문운동장에는 400m 트랙이 갖춰진 보조 경기장이 없었을 정도로 한국의 스포츠 인프라는 열악했다. 서울시는 이 무렵 대한탁구협회가 건설할 계획이었던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제패 기념관을 흡수해 이를 종합운동장 내 체육관으로 확장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1976년 12월 착공했다. 1977년 11월에는 주 경기장과 수영장 건설에 착수했다. 

체육관에 이어 수영장이 1980년 12월 완공됐다. 1981년 9월과 11월 1988년 올림픽과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면서 잠실종합운동장 건설 사업에 박차가 가해졌다. 1982년 6월에는 야구장이 준공됐고 주 경기장은 1984년 9월 개장했다. 

잠실체육관 개장 기념 경기가 한국이 1967년 제 5회 대회(체코슬로바키아) 이후 또다시 준우승한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다. 

1963년 개관 이후 20년 가까이 우리나라 실내 스포츠 메카로 제 몫을 다한 장충체육관의 뒤를 이은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첫 국제 대회가 제 7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다. 1979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는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나라들이 불참한 아쉬움 속에 한국과 미국, 캐나다 등 12개국이 출전해 기량을 겨뤘다. 

한국은 예선 리그에서 네덜란드와 볼리비아를 78-63, 106-38로 꺾었으나 캐나다에 63-76으로 져 2승1패, 조 2위로 결승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미국을 94-82, 일본을 64-56, 호주를 76-72, 프랑스를 76-71, 이탈리아를 63-56으로 물리쳐 5전 전승을 기록했으나 예선 리그 전적을 안고 싸우는 대회 방식에 따라 5승1패를 기록해 결승 리그에서 캐나다를 77-61로 누른 미국, 캐나다와 타이를 이뤘다. 3개국의 득실차에 따라 미국이 우승, 한국이 준우승, 캐나다가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는 강현숙과 정미라, 조영란, 홍영순, 홍혜란, 박찬숙 등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멤버에 전미애를 보강한 멤버가 출전했다.  

여자는 1978년 제 7회 대회(방콕)부터 1984년 제 10회 대회(상하이) 대회까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4연속 우승하는 등 중국이 아시아 무대에 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강세를 유지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첫선을 보인 중국 여자는 1976년 제 6회 아시아선수권대회(홍콩)에서 한국을 73-68로 누르고 우승했으나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벽을 쉽게 넘지 못했다. 홈에서 열린 제 10회 대회에서는 준결승 리그에서는 76-59로 이겼으나 준결승 리그 1, 2위가 벌인 결승전에서는 한국에 61-62로 져 땅을 쳤다. 

그러나 중국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을 75-67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으로 1980년을 전후해 한국과 호각세를 이뤘다. 

1982년 한국 스포츠의 최대 행사는 11월 19일부터 12월 4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 9회 아시아경기대회였다. 이때는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확정돼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대회보다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컸다. 축구와 요트에서만 메달을 따지 못했을 뿐 18개 종목에서 금메달 28개와 은메달 28개, 동메달 37개를 획득해 북한(금 17, 은 19, 동 20)을 압도하고 종합 3위를 차지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한 가운데 남자 농구는 중국을 꺾고 값진 금메달을 차지했다. 남자 농구의 금메달은 극적이었다. <1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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