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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리뷰]'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이별과 하인리히 법칙의 공통점

작성일: 2023.02.13 14:00 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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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메인 포스터. 제공| 26 컴퍼니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메인 포스터. 제공| 26 컴퍼니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장기 연애를 하다 헤어지는 커플들의 모습은 마치 하인리히 법칙(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가 맞지 않아 생기는 미세한 균열이 두 사람 사이의 틈을 만든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는 시점엔 관계가 붕괴된다. 하지만 무너져내리기 전, 어느 순간부터는 사실상 이별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감독 형슬우)는 사랑하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준호(이동휘), 아영(정은채)의 현실 이별 보고서다. 장기 연애의 끝에 언제부터 헤어진 상태였는지 모를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연인이 갈라서는 과정을 현실감있게 드러냈다. 

아영(정은채)과 준호(이동휘)는 미대 CC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어림잡아 10년 가까이 연애를 해온 장수 커플이다. 촉망받는 화가였던 아영은 남자친구 준호와 결혼하기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두고 전공과 관계 없는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든 상황. 준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생활비를 보태며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 중이다. 

반면 아영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인 준호는 공부에는 영 집중하지 못하고 무기력함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영의 눈을 피해 도서관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친구와 집에서 게임을 하던 준호는 설상가상 이 모습을 들키는 바람에 폭발한 아영에게 쫓겨나게 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친구들의 남자친구와 달리 후줄근한 모습으로 커플 모임에 참석한 준호, 라면 한 입 얻어먹는 자신에게 크게 화를 내며 먹던 냄비째 개수구에 버리는 준호, 꿈을 포기하고 뒷바라지하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온도의 한심한 준호가 만든 균열은 결국 아영을 무너져내리게 만든다. 이 와중에도 자신을 무시한다며 자존심을 내세우고 "헤어지자"는 준호를 아영은 깔끔하게 잘라내고 만다. 아마 아영은 수백번의 크고 작은 아쉬움과 수십 번의 실망을 거쳐, 찰랑찰랑하게 넘칠 듯 물이 차오른 이별의 잔을 넘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을 그 순간 발견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각각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준호와 정반대로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고, 젠틀한 태도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경일(강길우)을 만난 아영과 자신에게 압박을 주지 않고 응원해주는 대학생 안나(정다은)를 만난 준호는 새로운 연애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아영이 만난 경일은 유부남이었고, 본의 아니게 불륜녀가 된 아영은 경일과 관계를 정리한다. 

이후 아영은 부동산 중개업을 접어두고 다시 미술을 시작하고, 어떤 심경인지 준호에게 빌려준 태블릿PC를 돌려받는다는 명목으로 그를 다시 불러낸다. 안나와 함께 있던 준호는 "거짓말은 절대 금지"라는 안나의 말을 뒤로하고 자다 일어나 담에 걸린 채 친구를 만난다며 아영의 화실을 찾아온다. 서로를 향해 날 선 대화를 쏟아내는 두 사람은 끝난 듯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을 언뜻 드러낸다.

이번 작품은 형슬우 감독의 단편 '왼쪽을 보는 남자, 오른 쪽을 보는 여자'에서 시작했는데, 이별 후 두 사람이 나누는 화실 대화 신이 바로 이 단편 분량이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전사를 확대하면서 장편이 만들어진 셈이다. 

완전히 끝난 듯 보이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을 쉽게 지울 수 없듯, 어쩌면 미련도 남아 있는 것처럼 미묘한 대화를 나누는 준호와 아영. 특히 아영은 태블릿PC 상태를 점검한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며 준호에게 그간의 원망을 쏟아내기도 한다. 준호 역시 그런 아영에게 장단을 맞춰가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대꾸한다. 관객 누구나 자신의 과거 연애를 떠올려볼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화들이 오간 끝에 이들은 남은 감정을 해소하고 진정한 이별을 맞는다. 청춘을 함께한 연인을 씁쓸하게 각자 연락처에서 지우고, 이후 닿지 못할 거리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인사조차 나눌 수 없게 된 사이가 되면서 완전히 남남이 된다.

이렇듯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현실 이별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만큼 동시대 청춘들이 겪을 법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만 아영과 준호의 팽팽한 입장차가 느껴지는 설정 대신 압도적인 준호의 실책으로 공감보다는 분노 유발 지수가 더욱 큰 점은 아쉬운 지점이다. 특히 화실 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다보니 이야기의 연결 고리가 되는 아영과 준호의 새로운 연인 에피소드는 뜬금없는 지점이 있다. 경일의 정체도 아영의 감정선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퍼즐처럼 느껴지진 않고, 안나가 준호에게 반하는 과정은 더더욱 공감이 어렵다. 연기한 배우조차 어려움을 호소했을 정도다. 

물론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다시 화실에서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의 감정만큼은 어찌됐건 한번에 털어내기 힘든 오랜 연인의 '미련'이란 개연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8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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