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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예' 허미미, 할아버지에 메달 바쳤다 "정말 행복하다" [올림픽 NOW]

작성일: 2024.08.06 18:57 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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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허미미가 대구를 찾았다. 독립운동가이자 현조부인 허석 지사를 보기 위해서다.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허미미는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에 조성된 허석(1857~1920) 지사 기적비에 참배했다. 5일 입국한 뒤 불과 하루 만에 할아버지에게 간 것이다. 

이 자리에서 허미미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기적비 앞에 내려놨다. 허미미는 "메달을 이렇게 가지고 올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허미미는 재일교포 3세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태어나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다. 한국으로 귀화한 후 경북도체육회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할아버지 허무부 씨가 허석 지사의 증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립운동가의 후예'로 주목 받으며 파리 올림픽에 나선 허미미는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기며 기대에 부응했다. 

올림픽 이전부터 여자 유도계에선 알아주는 강자였다. 와세대 대학에 재학 중인 허미미는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처음 유도를 시작할 때부터 유망한 재능을 과시했던 허미미는 올림픽을 앞둔 지난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9년 만에 우승해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을 키웠다. 

올림픽에도 분위기가 좋았다. 2번 시드로 16강부터 경기한 허미미는 팀나 넬슨 레비(10위, 이스라엘)에게 반칙승을 거뒀다. 나란히 지도 2개를 받은 상황에서 골든스코어에 접어들었고, 허미미가 과감한 업어치기를 시도해 상대에게 세 번째 지도를 안겨 승리했다. 

8강에서는 천적 엥흐릴렌 라그바토구(몽골)를 넘었다. 허미미는 초반부터 업어치기를 시도하며 라그바토구를 압박했다. 기세에서 이긴 허미미는 상대가 계속 수비하게 만들었고, 지도 2개를 안기는 데 성공했다. 라그바토구도 종료 1분 전 배대뒤치기를 구사해 허미미를 넘어뜨렸다.

다행히 등으로 떨어지지 않아 실점은 면했으나 복부를 가격당해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통증을 참아낸 허미미는 종료 15초를 남기고 기습적인 안다리로 절반승을 일궈냈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준결승에서는 베테랑인 실바를 꺾었다. 올림픽 금메달이 있는 실바를 맞아 허미미는 순식간에 안다리로 절반을 따냈다. 그러나 판독 결과 취소 판정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위기를 넘긴 실바가 노련하게 응수했다. 허미미도 패기 넘치게 맞받아쳤다. 이 과정에서 실바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지도를 받았다. 

결국 점수 없이 골든스코어에 돌입했다. 허미미가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계속 실바의 도복을 잡고 흔들었다. 이때 업어치기가 제대로 들어갔고, 10초간 굳히기에 성공하면서 절반을 얻어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결승전은 아쉬웠다. 세계랭킹 1위인 캐나다의 크리스티나 데구치에게 반칙패를 당했다. 석연찮은 판정으로 잇달아 지도를 받아 경기 후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허미미는 혼성 단체전에서 메달을 추가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대표 주자 6명 중 하나로 나와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독일과 연장 승부 끝에 4-3으로 이기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 허미미가 은메달, 동메달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있는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회수리를 방문했다. 재일교포 3세인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나고 자랐지만, 2021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유언 때문이다. 허미미는 허석 지사의 5대손이기도 하다. 허석 지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에는 고종 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대통령 표창 추서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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