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TN 취재석] 초짜 기자가 본 97번째 '전국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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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7회 충청남도 전국체육대회가 경기도의 15년 연속 종합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대회 최우수선수에는 여자 수영 김서영(23, 경북도청)이 뽑혔다. 이번 전국체전에선 세계 타이 기록 2개 한국 신기록 23개 대회 신기록 104개가 나왔다. 마흔일곱 종목 2만5천여 선수들은 1년 동안 갈고닦은 기량으로 풍성한 '기록 잔치'를 벌였다. 빼어난 경기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전국체전 취재는 처음이었다. 기자가 첫 취재 대상으로 택한 선수는 '뜀틀의 신' 양학선이었다. 지난 7일 개회식이 열리는 충남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 들르기 앞서 남녀 체조 선수들이 모인 남서울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 시도에 배정된 공식 연습 시간은 20분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선수들은 집중력을 끌어올려 연습에 나섰다. 현장 적응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그동안 흘린 구슬땀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선수들을 촌음을 아껴 연습에 매진했다.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부상 복귀전을 앞둔 양학선은 정중히 인터뷰를 고사했다. 방향을 틀었다. 그를 지도하는 김창석 수원시청 감독에게 다가갔다. 경기장 한편에서 소속 팀 선수를 관찰하던 김 감독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체조는 '예민한 종목'이다. 자기 손에 익지 않은 뜀틀, 링을 이른 시간 안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양)학선이는 몸 상태가 100%가 아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칫 모든 게 어그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매트가 깔린 체육관 구석에서 연습을 준비하던 양학선은 경기장을 나가려는 기자에게 "(이번 전국체전에선) 두 가지 기술만 구사할 계획이다"고 귀띔했다. 이어 "2020년 도쿄 올림픽에 꼭 도전할 것이다"며 재기 의지를 확실히 보였다.
남서울대학교에서 취재를 마친 뒤 택시를 잡고 개회식이 열리는 이순신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번 대회부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적용돼 셔틀버스 운행이 없어졌다. 전국체전은 지역 일대에 두루 퍼져 있는 경기장에서 열린다. 강원도, 충청북도 등 한 도(道)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시(市)와 시(市)를 넘나드는 이동 거리를 감내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취재하면서 가장 불편을 느낀 게 교통이었다. 경기장 사이사이가 상당히 멀고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차를 운전하지 못하면 이동에 큰 불편을 겪는다.
미디어 종사자뿐만 아니라 대회 관계자, 관중도 경기장을 방문하는 데 애를 먹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회 축사를 맡아 행사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이순신종합운동장 주변 차량을 통제했다. 결국 경기장과 도보 25분 정도 거리에서 하차한 뒤 부랴부랴 뛰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자와 영상 기자 2인은 그렇게 어렵게 경기장에 발을 들였다.
성공적인 개회식이었다. 97번째 전국체전 시작을 알린 개회식은 다양한 색감과 무대 연출이 돋보인 '180분 축제'였다. 옛 백제 왕조 향기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문화·복지의 고장 충남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모인 체육인을 반갑게 맞았다. '행복을 열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풍물패 고적대 공연과 뮤지컬 요소를 가미한 대회 주제곡 앙상블, 지역 예술인과 학생들이 준비한 퍼포먼스가 개회식 분위기를 북돋웠다. 박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 신임 회장의 축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대회기가 게양되고 성화 점화식이 열리면서 한민족 최대 스포츠 제전이 성대한 시작을 알렸다.
대회 둘째날인 지난 8일 양궁 경기가 열리는 충남 홍성 홍주종합경기장으로 향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세계 양궁 사상 첫 전 종목 우승을 이룬 '태극 전사 6인'을 취재하기 위해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리우 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구본찬이 전국체전 양궁 일반부 남자 90m에서 336점으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리우에서 함께 과녁을 조준했던 이승윤은 335점으로 뒤를 이었다. 여자 신궁(神弓) 기보배도 양궁 일반부 여자 60m에서 349점을 쏴 2위에 올랐다. 세 선수는 체면치레를 했지만 나머지 3인은 몸이 덜 풀린 듯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국가 대표 선발전, 전국체전과 같은 국내 대회가 올림픽 메달 수확보다 어렵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실제 눈앞에서 보니 바늘구멍 뚫는 일에 비유될 만했다. 양궁은 종목 특성상 힘과 스피드, 운동 능력보다 지구력을 더 필요로 한다. 어느 종목보다 체력이 중요시되는 운동이다. 조금만 훈련을 소홀히 해도 활 무게나 활을 놓을 때 감각이 무뎌진다. 한두 달 사이에 뒤집기가 가능한 종목이 양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고 노트북을 닫았다.

대회 셋째날 남자 사격을 보기 위해 청주로 나섰다. 충북 청주종합사격장에서 '사격의 신(神)' 진종오와 리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종현을 만났다. 두 선수 모두 예상대로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사선에 선 '총잡이 동료'와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쳤다. 한 발 한 발 온 정신을 집중해 타겟지(紙)에 꽂았다. 단 한번 실수에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종목 특성상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선수들은 방음을 위해 대형 귀마개를 꼈다. 경기장에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선수가 쏜 총알이 타겟지를 관통하고 점수가 전광판에 뜨면 관중석에선 함성과 탄성이 교차했다. 4~5m 간격을 두고 이질적인 공기가 느껴졌다. TV로 볼 때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이 몸으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김종현은 전국체전 사격 일반부 남자 공기소총 3자세에서 208.5점을 얻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6.6점을 쏜 한진섭을 접전 끝에 따돌리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김종현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예비 신부에게 수줍게 프로포즈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깨끗이 털어 냈다.
진종오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사격 일반부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서 203.3점을 기록해 202.4점을 얻은 팀 동료 한승우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 종목 전국체전 6연속 우승을 이루는 기쁨을 맛봤다. 진종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전날 자신의 인터뷰가 몇몇 사람의 오해를 부르는 내용이 있었다며 다소 꺼려했다. 그러나 기자가 진종오 매니저와 통화하는 등 어느 정도 정성을 보인 끝에 어렵게 동의를 구했다. 질문 3~4개를 던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진종오는 6연속 금메달을 챙겼다는 기쁨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에게 "벌써 그렇게 됐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기 일보다 사격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당부를 건넸다. 현란한 수사는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진종오는 "(후배들이 중도에) 사격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결실을 맺고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포기 없이 (사격에) 정진하기를 바란다"며 총대를 멘 후배를 격려했다. 10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선수의 기품이 엿보였다.

인천시청 소속으로 출전한 박태환은 지난 10일 충남 아산 배미수영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수영 일반부 자유형 남자 200m서 1분 45초 01을 기록했다. 2위권과 큰 격차를 보이며 가장 먼저 터치 패드를 찍었다. 금메달 수확보다 더 고무적인 건 기록의 질이었다. 리우 올림픽을 기준으로 은메달을 따낼 수 있는 페이스를 보였다. 또 6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작성한 자신의 최고 기록 1분 44초 80과도 0.21초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전성 시절 기량을 완벽히 회복한 경기력으로 경기장에 모인 수영인들을 술렁이게 했다.
대회 4~5일째 배미수영장에서 본 박태환은 놀라웠다. 국내에선 적수가 없었다. 부활 예고편을 확실히 찍으며 4년 뒤 도쿄를 향한 의지를 보였다. 무엇보다 그가 세계 정상급 랭커였을 때 내용이 나왔다는 점이 취재진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초반 탐색전 뒤 후반에 승부를 거는 경기 운용을 효과적으로 펼쳤다. 기록이 말해 준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1분 44초 85,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1분 44초 93를 남겼다. 전국체전 자유형 200m 기록과 0.08~0.16초 차밖에 나지 않았다. 현장에선 박태환을 향한 환호성이 멈추지 않았다.
박태환은 지난 11일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도 3분 43초 68을 올리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리우 올림픽에서 이 기록을 남겼다면 4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박태환이 전국체전에서 거둔 성과는 스퍼트 능력 회복과 전성기처럼 경기 운용을 해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다. 그는 충남에서 금메달보다 더 큰 소득을 거두며 활짝 웃었다.
수영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계단을 딛으려는데 호통이 들렸다. 기자가 묶는 숙소 주차장에서 지도자로 보이는 한 어른이 남자 대학부 육상 선수에게 스타트 동작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30분쯤 흐른 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편의점을 가려는데 이 '달밤의 교습'은 아직 진행되고 있었다. 그 선수는 코치 지도에 따라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땀방울이 결코 프로 스포츠 선수의 그것보다 가볍지 않아 보였다.
'팬이 없다.' 전국체전 5일 동안 기자가 취재하며 느낀 감정은 대회를 향한 '앙상한' 관심이었다. 경기장에 앉아 선수를 응원하는 이는 대부분 가족과 해당 협회 관계자였다. 순수 팬은 몇 보이지 않았다. 대형 스타가 없는 종목은 더 열악했다. 한민족 최대 스포츠 제전으로 100년여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체전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듯했다.
무게중심이 프로 리그로 옮겨 간 뒤 실업·대학 스포츠는 자생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국가 정책으로 육성을 받다 보니 팬과 스킨십이 떨어져도 협회 자체 운용에는 큰 영향이 없다. 해마다 생활체육과 유기적 교류, 실업 팀 창단, 예산 증액을 대안으로 내놓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문득 프로 스포츠 울타리 바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의 '짠내'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했다.
스포츠를 취재하는 기자 뿐 아니라 여러 경기 연맹과 현역 체육인들이 머리를 맞대 풀어야 할 숙제가 선명해 보였다.
균형 잡힌 순위 싸움이 실종된 점도 아쉬웠다. 대회 6일째에 경기도가 충남을 제치고 종합 1위로 올라섰다. 한 세기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전국체전에서 서울, 경기도를 제외한 시도가 종합 우승을 차지한 예는 단 4번에 그친다. 그만큼 지역별 체육 역량 편차가 크다. 경기 종목이 늘어나면서 특정 종목에 선수를 1명도 출전시키지 못하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현장에선 지역마다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학교 운동부·실업 팀 수가 큰 차이를 보이는 현실을 고려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득 점수를 환산해 기록하는 종합 순위제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폐막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MVP 후보가 3인으로 좁혀졌다. 전국체전 3관왕을 이룬 남자 사격 진종오, 충남에서 부활 청신호를 밝힌 남자 수영 박태환, 대회 첫 4관왕에 빛나는 여자 수영 최정민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최우수선수 영광은 여자 수영 김서영에게 돌아갔다. 김서영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만 4개를 챙기는 압도적인 성적을 챙겼다. 전체 31표 가운데 17표를 얻었다.
번외 경기로 치러진 개인혼영 200m를 비롯해 개인혼영 400m, 계영 400m·800m에서 한국 신기록을 썼다. 금메달 수도 많지만 신기록 상징성이 컸다. 김서영이 강력한 MVP 후보를 제치고 가장 가치 있는 선수에 뽑힐 수 있었던 이유다. 투표 직전 열린 개인혼영 400m에서 네 번째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을 차지한 '임팩트'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회기가 내려졌다. 정확히 일주일 전 세찬 비바람을 뚫고 힘차게 올라갔던 대회기가 자기 소임을 다하고 강하했다. 이후 제 98회 전국체전 개최지인 충청북도를 소개하는 특별 영상이 상영됐다. 충청남도 교육감의 폐회 선언 뒤 성화가 꺼지면서 충남 대회는 끝을 알렸다. 기자 옆에 앉아 있던 몇몇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오는 21일 열리는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또 보자는 말을 남겼다. '국민 화합 감동 체전'을 외쳤던 스포츠 축제가 그렇게 마지막을 고했다. 폐회식·대회 결산 기사를 적은 뒤 송고 버튼을 눌렀다. 기자의 첫 전국체전 취재기도 종료 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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