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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설 아니다" 끝까지 몸 낮췄던 '맨유 거미손' 떠났다…유러피언컵 2회 우승 지미 리머 별세

작성일: 2026.08.15 03:00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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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애스턴 빌라에서 1970년대 대표 '거미손'으로 활약한 지미 리머가 숨을 거뒀다. ⓒ 영국 '데일리 메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애스턴 빌라에서 1970년대 대표 '거미손'으로 활약한 지미 리머가 숨을 거뒀다. ⓒ 영국 '데일리 메일'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애스턴 빌라에서 1970년대 대표 '거미손'으로 활약한 지미 리머가 숨을 거뒀다. 향년 78세.

영국 '데일리 메일'은 15일(한국시간) "리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자국 축구사 중심에 놓길 꺼려한 인물"이라며 평생 몸을 낮췄던 전설의 수문장 별세 소식을 전했다.

리머는 애스턴 빌라 역대 최고이자 1970~80년대 유럽 정상급 골키퍼로 꼽히는 레전드다. 잉글랜드 전설 고든 뱅크스가 "세계 20대 골리 가운데 한 명"이라 평가할 만큼 기량을 인정받았다.

특히 서로 다른 두 팀에서 유러피언컵(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맨유 유스 출신인 리머는 20세이던 1968년 벤피카(포르투갈)와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출전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맨유가 4-1로 승리하면서 생애 첫 유럽 정상의 기쁨을 누렸다.

두 번째 우승에는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

애스턴 빌라 주전 수문장이던 리머는 1982년 바이에른 뮌헨(서독)과 유러피언컵 결승을 닷새 앞두고 리그 경기에서 목을 다쳤다. 치료를 받고 결승전에 선발 출장했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해 경기 시작 9분 만에 교체됐다.

라커룸으로 돌아간 리머는 눈물을 흘렸다. 대신 투입된 나이절 스핑크가 맹활약했고 애스턴 빌라는 뮌헨을 1-0으로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에 올랐다.

리머는 이후 당시 결승에서 물러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팀으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미 리머'가 될 수 없었다"고 답했다.

▲ 애스턴 빌라 주전 수문장이던 지미 리머(왼쪽)는 1982년 바이에른 뮌헨과 유러피언컵 결승을 닷새 앞두고 리그 경기에서 목을 다쳤다. 치료를 받고 결승전에 선발 출장했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해 경기 시작 9분 만에 교체됐다. 리머는 이후 당시 결승에서 물러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팀으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미 리머'가 될 수 없었다"고 답해 찬사를 얻었다.
▲ 애스턴 빌라 주전 수문장이던 지미 리머(왼쪽)는 1982년 바이에른 뮌헨과 유러피언컵 결승을 닷새 앞두고 리그 경기에서 목을 다쳤다. 치료를 받고 결승전에 선발 출장했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해 경기 시작 9분 만에 교체됐다. 리머는 이후 당시 결승에서 물러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팀으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미 리머'가 될 수 없었다"고 답해 찬사를 얻었다.

그는 맨유(1963~1974년)와 아스널(1974~1977년), 애스턴 빌라(1977~1983년), 스완지 시티(1983~1986년)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1976년에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전도 치렀다. 

다만 레이 클레멘스와 피터 실턴이라는 걸출한 경쟁자에 밀려 A매치 출전은 1경기에 그쳤다.

은퇴 뒤에는 중국에서 3년간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고 말년에는 웨일스에서 생활하며 스완지 경기를 꾸준히 지켜봤다.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리머는 생전 자신에게 따라붙은 '전설'이란 수식어를 끝내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전설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만 내가 위대한 전설들과 함께 뛰었던 건 확실하다."

▲ 출처 영국 '데일리 메일'
▲ 출처 영국 '데일리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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