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브리지, 월드시리즈서 아시아 유일 16강…‘삼성 갤럭시’ 경기 도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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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한국 브리지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 월드브리지시리즈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켰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된 서울(SEOUL)팀은 폴란드 카토비체 MCK 인터내셔널 콩그레스 센터에서 열린 2026 제17회 월드브리지시리즈 오픈팀 챔피언십에서 한국팀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 오른 팀 가운데 아시아팀은 서울팀이 유일하다.
강성석, 김대홍, 노승진, 이수익으로 구성된 서울팀은 32강전에서 폴란드와 이스라엘 선수 등이 포함된 다국적 강호 이지 스트리트(EASY STREET)를 144-133으로 꺾었다.
2022년 폴란드 브로츠와프 월드브리지시리즈에서 32강에 머물렀던 서울팀은 4년 만에 한 단계 더 올라서며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한국 브리지는 최근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202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월드브리지게임 오픈팀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8강에 포함됐다. 이번 월드브리지시리즈에서는 서울팀이 16강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아시아팀이 됐다.
월드브리지게임이 국가별 대표팀이 출전하는 국가대항전 성격이라면 월드브리지시리즈는 국적에 관계없이 선수들이 연합팀을 구성할 수 있다. 세계 정상급 프로 선수들과 스폰서가 결합한 강팀들이 대거 출전해 경쟁 강도가 특히 높은 대회로 꼽힌다.
이번 대회 오픈팀에는 52개국 137팀, 709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우승팀에는 '로젠블럼컵'이 주어진다.
◆수적 열세…6명 아닌 4명이 만든 16강
서울팀의 성과는 단 4명의 선수가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팀들은 장기간 이어지는 일정과 하루 8시간 안팎의 경기에 대비해 대부분 6명으로 선수를 구성한다. 3개 페어를 번갈아 투입하면서 선수들의 체력과 집중력을 관리한다.
반면 서울팀은 강성석-김대홍, 노승진-이수익 두 페어가 교체 선수 없이 사실상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장시간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브리지의 특성상 4인 체제는 체력과 정신력 모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김혜영 한국브리지협회 회장은 "세계 정상급 팀들은 대부분 6명으로 출전해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데 한국은 네 명이 하루 종일 경기를 했다"며 "오랜 시간 쌓아온 파트너십과 팀워크가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에 넘지 못했던 32강 벽을 깨고 이번에는 아시아팀 가운데 유일하게 16강에 남았다"며 "한국 선수들이 세계 정상급 팀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서울팀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마시밀리아노 디 프랑코와 안드레아 마노는 약 8년 동안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도왔다. 디 프랑코와 마노는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 남자와 혼성 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한국 브리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브리지는 기억력과 확률 판단, 논리적 사고뿐 아니라 파트너십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기 중 파트너끼리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없어 비딩과 카드 플레이를 통해 상대 전략을 읽고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네 명의 선수가 교체 없이 세계 강호들과 경쟁했다는 점에서 서울팀의 팀워크가 더욱 돋보였다.
◆16강 이후에도 선전…스위스게임 13위로 파이널 진출
서울팀의 도전은 오픈팀 16강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스위스 팀 게임에서도 다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스위스 팀 게임에는 오픈팀 메인 이벤트에서 탈락한 세계 정상급 팀들이 계속 합류한다. 토너먼트에서 밀려난 강팀들이 또 다른 경쟁을 이어가는 만큼 만만치 않다.
서울팀은 이 대회에서 13위를 기록해 파이널 진출권을 따냈다. 오픈팀 16강까지 장시간 경기를 소화한 직후 다시 세계적인 팀들을 상대해 상위권에 올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서울팀은 파이널에는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선수 4명 모두 대학팀의 감독 또는 코치를 맡고 있어 곧 예정된 대학 경기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팀 선수단은 금요일 새벽 귀국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오픈팀에서 탈락한 세계적인 팀들이 스위스 게임에 모두 합류하기 때문에 이 역시 상당히 터프한 필드"라며 "그 가운데 13위로 파이널에 진출했다는 것도 한국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서울팀은 월드브리지시리즈 첫 16강, 16강 유일한 아시아팀, 스위스게임 파이널 진출이라는 성과를 남기며 3일 막을 내린 이번 대회를 마무리하게 됐다.
◆서울 국제대회·2030 도하 아시안게임 향한 국제행보
이번 월드브리지시리즈는 한국 브리지의 국제 네트워크를 넓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선수로 직접 대회에 참가하는 동시에 국제 브리지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과 세계 브리지계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 회장은 마시밀리아노 디 프랑코, 강성석, 이탈리아 여자대표 출신 시모네타 파올루찌 등과 혼성팀에 출전했다. 혼성팀에서는 32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후 바베이도스 스위스컵에서 준결승 단계까지 올랐다.
경기 일정을 마친 뒤에는 에릭 로랑 세계브리지연맹(WBF) 부회장 등 국제 관계자들을 만나 오는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릴 국제 브리지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의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의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30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브리지가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아시아 각국 협회와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브리지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치러졌다. 한국브리지협회는 아시아 각국과 공조해 2030 도하 대회 정식종목 진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11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리는 국제 브리지대회에 한국대표단이 참가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김 회장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함께 세계 브리지계에서 한국의 역할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며 "서울 국제대회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진입을 위해 국제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500평 메인홀에 280개 테이블…삼성 갤럭시가 경기 도구로
이번 대회가 열린 카토비체 MCK 인터내셔널 콩그레스 센터의 규모는 눈길을 끌었다. 메인 경기장은 약 2500평 규모로 한 공간에 280개의 브리지 테이블이 설치됐다.
김 회장은 "그동안 여러 세계대회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큰 브리지 경기장은 처음 봤다"며 "280개의 테이블에서 세계 각국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를 치르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대회 운영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선수들은 태블릿을 이용해 비딩과 스코어링을 진행했고, 특히 삼성 갤럭시 태블릿이 대규모로 사용됐다.
김 회장은 "280개의 테이블에 선수 한 명마다 갤럭시 태블릿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며 "해외에서는 삼성 제품을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오히려 한국 제품이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을 정도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브리지에서 태블릿은 단순한 전시 제품이 아니다. 비딩과 스코어링 과정에서 선수들이 직접 사용하는 경기 운영 장비다.
김 회장은 "브리지에서 태블릿은 이제 테니스의 라켓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세계 각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직접 사용하는 만큼 글로벌 기업과 브리지의 협력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로랑 WBF 부회장이 오는 11월 한국을 방문할 경우 삼성 측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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