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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V11] ‘V 11 타이거즈 왕조‘ 어떻게 시작됐나…1983년 ’용호상박 매치에서‘ 승리하다

작성일: 2017.10.30 13:36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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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 1980년대 해태 야구를 추억하는 팬들에게 그리운 얼굴들이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7년 한국시리즈가 호랑이와 곰으로 상징되는 ‘단군 매치’라면 KBO 리그 출범 두 번째 시즌인 1983년 한국시리즈는 ‘용호상박(龍虎相搏) 매치’였다.

KBO 리그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 승자가 맞붙는 방식의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1985년은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 모두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가 무산됐다.

OB 베어스가 삼성을 4승1무1패로 누르고 프로 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된 이듬해인 1983년 KBO 리그 정규 시즌 전기 리그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후기 리그에서는 MBC 청룡이 1위에 올라 ‘용호상박 매치’가 이뤄졌다.

그해 전기 리그 최강자는 해태였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응룡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 해태는 전기 리그를 30승1무19패(승률 0.612)로 마치며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후기 리그에서는 MBC의 선전이 돋보였다. 백인천 감독이 개인적인 문제로 팀을 이탈하며 전기 리그 내내 어수선했던 MBC는 김동엽(작고) 감독을 영입하고 전열을 정비한 후기 리그에서 재일 동포 장명부(작고)를 내세운 삼미 슈퍼스타즈를 제치고 30승1무19패로 1위를 기록해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겨루게 됐다.

두 팀의 한국시리즈는 장타력의 해태와 기동력을 앞세운 MBC의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지만 직전 시즌 자신이 이끌었던 팀과 맞붙게 된 김동엽 MBC 감독의 처지가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1970년대 아마추어 실업 야구 시절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인기를 모았던 김동엽 감독은 프로 원년인 1982년 해태 창단 감독을 맡았지만 코치진과 불화 끝에 한 달여 만에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김동엽 감독으로선 자신을 밀어낸 팀을 상대로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두 팀 감독은 선수 시절 경력과 지도 스타일에서 대조를 이뤘다. 김응룡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 강타자 출신이자 국가 대표 팀 사령탑을 지낸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김동엽 감독은 선수 경력은 미미했지만 실업 야구에서 스파르타식 강훈련을 앞세워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하일성(작고) KBS 해설 위원을 뺀 대다수 전문가가 ‘MBC 우세’를 예상했다. 후기 리그 우승으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봤고 기둥 투수 하기룡과 왼손 유종겸, 언더핸드 이광권, 사이드암 이길환(작고) 등이 버틴 마운드가 해태보다 수적으로도 앞서고 구색도 갖췄다는 평가였다. 1차전만 광주에서 열리고 2차전부터는 잠실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도 MBC에 유리했다. 이런 불합리한 경기 장소 배정은 구장 규모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10월 1일로 예정됐던 한국시리즈가 전국체육대회 그리고 10월 9일 터진 아웅산 테러 사건 등으로 계속 미뤄진 끝에 10월 15일이 돼서야 시작된 것이다. 시즌 막판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하던 MBC의 팀 분위기는 이 기간 엉망이 됐다.

보너스 지급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원인이었다. 호탕한 성격의 김동엽 감독은 “우승하면 구단에서 보너스 500만 원을 주기로 했다”고 선수들에게 말했지만 구단에선 ‘후기 리그 우승이 아니라 한국시리즈 우승을 말한 것’이라고 다른 말을 했다. 선수들이 불만을 터뜨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1차전(광주) MBC 4-7 해태

MBC 김동엽 감독은 1차전 선발투수로 하기룡이 아닌 이광권을 예고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스코어보드에 오른 이름은 신인 오영일이었다. 해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해 20승을 거둔 에이스 이상윤을 선발로 내세웠다.

김동엽 감독의 ‘위장 선발’ 카드는 효험이 없었다. 이상윤이 1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낸 반면 오영일은 1회 말 무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MBC로서는 운도 따르지 않았다. 해태 선두 타자 김일권이 안타로 출루한 뒤 김일환이 볼넷을 얻어 만든 무사 1, 2루. 여기에서 김성한의 타격 때 배트가 부러지면서 공과 함께 3루 쪽으로 날아갔다. MBC 3루수 이광은은 배트 조각을 피하려다 공을 놓쳤고, 주자가 모두 살았다.

오영일은 후속 타자 김봉연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김종모의 타구가 이번에는 3루 베이스를 맞고 방향이 바뀌는 불운이 이어졌다. 이 타구가 2루타가 되면서 2-0. 이어 김무종의 땅볼로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1회에 해태가 3-0 리드를 잡았다.

MBC의 팀 분위기는 초반부터 바닥을 쳤다. 해태 쪽은 신이 났다. 해태는 2회 말 김일권의 3루타로 4-0으로 달아났고 4회 말에 2점, 5회 말에 1점을 보태며 7-0으로 일찌감치 승리를 결정 지었다. 김동엽 감독은 두드려맞는 오영일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마운드에 두면서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했다.

MBC는 6회 초 김인식의 2점 홈런으로 2-7로 점수 차를 좁힌 뒤 8회에 2점을 추가했지만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태는 김일권이 4타수 3안타 2타점, 김종모와 김무종(재일 동포)이 각각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이상윤은 9이닝을 4실점으로 버티며 완투승을 거뒀다.


◇ 2차전(잠실) 해태 8-4 MBC

김동엽 감독은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공수표’를 날렸다. 애초 MBC가 예고한 선발투수는 하기룡이었지만 실제 선발로 나온 투수는 유종겸이었다. 유종겸은 시즌 완투가 4경기밖에 되지 않은, 불펜 요원이었다. 해태는 후기 리그에서 충분히 쉰 사이드암 주동식(재일 동포)을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은 MBC였다. MBC는 2회 말 1사 2, 3루 찬스를 잡으며 선제 득점을 노렸지만 3루 주자가 포수 김무종의 견제구에 아웃당하며 허무하게 기회를 날렸다. 그러자 흐름이 해태 쪽으로 넘어갔다. 해태는 3회 초 하위 타선의 서정환과 차영화가 출루한 뒤 더블스틸에 성공하며 무사 2, 3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김일권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대타로 나온 양승호가 좌중간 쪽 외야 담장에 맞는 2루타를 터뜨리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MBC가 집중 3안타를 터뜨리며 2-1로 추격한 4회에는 김응룡 감독 특유의 빠른 선발투수 교체, 요즘 용어로 ‘퀵 후크’가 들어맞았다. 주동식이 흔들리자 김응룡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김용남으로 투수를 바꿔 추가 실점을 막았다. 위기를 넘긴 해태는 5회 초 2점을 뽑아 4-1로 점수 차를 벌린 뒤, 7회 초 찬스에서는 4번 타자 김봉연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하는 강수를 두며 5-1로 달아났다. 김봉연은 이날 이전까지 프로 통산 633타석에서 한번도 번트를 댄 적이 없었다. MBC는 7회 말 무사 만루 기회를 만든 뒤 주자를 모두 불러들여 5-4로 추격했지만 동점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8회 초. 많은 이가 하기룡으로 투수를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김동엽 감독은 눈으로 보기에도 힘이 떨어진 유종겸을 고집했다. 유종겸은 계속해서 더그아웃을 쳐다보며 교체를 원했지만 김동엽 감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유종겸은 8회 집중 4안타를 얻어맞으며 3점을 더 내줬고 8-4, 해태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승리투수는 4회 구원 등판해 역투한 김용남, 패전투수는 8실점하며 완투한 유종겸이 기록했다.


◇ 3차전(잠실) MBC 3-5 해태

하루를 쉬고 열린 3차전. 해태는 주동식을 다시 선발투수로 내세웠고 MBC는 이번에도 하기룡 대신 이광권을 내보냈다.

3차전에서도 선취점은 해태가 올렸다. 해태는 1회 말 2사 2루에서 김봉연의 타구가 3루수 이광은 무릎에 맞고 튕기는 안타가 되며 1점을 먼저 뽑았다. 이어 3회 말에는 김일환과 김성한의 연속 우전 안타로 무사 2, 3루를 만들면서 선발투수 이광권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김동엽 감독은 그때서야 기둥 투수 하기룡을 마운드에 올렸다. 타석에는 김봉연. 1회 기록한 행운의 안타가 잃었던 타격감을 살아나게 했을까. 김봉연은 하기룡이 던진 한복판 높은 초구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좌월 3점 홈런. 점수는 순식간에 4-0으로 벌어졌다.

MBC도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5회까지 1안타로 끌려가던 MBC는 6회 주동식에게 볼넷 2개를 얻어 내며 이상윤을 마운드로 끌어냈다. 이상윤은 첫 타자 송영운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1사 만루. 여기에서 MBC는 김재박의 우익선상 2루타로 2점을 낸 뒤, 4번 타자로 기용된 이해창의 땅볼이 해태 서정환의 실책으로 이어지며 1점을 추가해 3-4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동점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해태가 한 점을 달아나느냐, MBC가 동점에 성공하느냐 싸움이 된 경기 후반. 해태가 한 수 위였다. 해태는 7회 말 안타 2개로 만든 1사 1, 3루에서 김봉연이 빗맞은 투수 땅볼을 쳐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스코어는 5-3. MBC는 8회 초 이해창이, 9회 초 김정수가 2사 후 3루타를 치며 안간힘을 다했지만 점수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김봉연의 5타점 활약과 이상윤의 구원 역투로 3연승을 달린 해태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 뒀다.


▲ 1983년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 11회말 중전 안타로 출루한 MBC 이해창이 후속 안타로 2루에 간 뒤 최정우의 2루 땅볼 때 3루를 돌아 홈으로 파고들었으나 해태 포수 김무종에게 태그 아웃 됐다. 두 선수의 표정에서 이 시리즈 승패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 4차전(잠실) 해태 1-1 MBC

한국시리즈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경기. 해태는 전날 구원으로 던진 이상윤을 선발로 냈고, MBC는 시즌 승률 1위 이길환을 라인업에 올렸다. 결과는 투수전이라고 하기에도 타격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접전이었다. 두 팀은 연장 15회까지 해태가 16안타, MBC가 12안타를 때리고 10개의 4사구를 주고받으면서도 1점씩밖에 뽑지 못했다. 두 팀 모두 한 차례씩 결승 주자가 홈에서 태그 아웃을 당했다.

초반은 해태 분위기였다. 해태는 2회 초 김봉연의 2루타와 김종모의 좌전 안타로 만든 무사 1, 3루에서 김무종의 병살타 때 1점을 선취했다. 그러나 이후 0의 행진이 이어졌다. 3루타 2개, 2루타 2개를 포함해 16안타 6개의 4사구에도 병살타 3개가 나오는 등 답답한 공격이 이어지며 득점에 실패했다. 해태는 이 경기에서 14개의 잔루를 기록했다.

해태만큼이나 MBC도 심각한 득점력 부재에 시달렸다. MBC는 해태 선발투수 이상윤의 역투에 8회까지 5안타 무득점으로 꽁꽁 묶였다. 9회 말 MBC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전광판에 새겨진 숫자는 2회 초 해태의 1점이 전부였다. 시리즈 종료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세 개뿐.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9회 말 선두 타자 송영운이 좌전 안타로 출루하며 찬스를 만들었다. 김응룡 감독은 즉시 마운드를 김용남으로 교체하며 경기를 끝내려 했다. 송영운이 아웃 카운트 하나에 한 베이스씩 진루하며 2사 주자 3루. MBC 벤치는 대타로 김바위를 내세웠다. 그리고 볼카운트 1-1에서 김바위의 배트가 돌아갔다. 2루수 키를 살짝 넘는 행운의 우전 안타. MBC가 기사회생했다. 이 시리즈에서 MBC가 처음으로 동점을 이룬 순간이기도 했다.

1-1 동점으로 맞이한 연장전. 그러나 두 팀 모두 연장 15회가 끝날 때까지 한 점도 추가하지 못하면서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MBC는 11회 말 2루 주자 이해창이 내야 땅볼에 홈까지 파고들다 해태 포수 김무종에게 태그 아웃당하며 시리즈 첫 역전과 1승의 기회를 날린 것이 아쉬웠다. 이 장면은 KBO가 펴낸 1984년 연감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경기 후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보너스로 1억 원을 선수단에 차등 지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시리즈 우승 분배금 2,800만 원과 그룹에서 지원하는 7,200만 원을 더해 우승 공헌도에 따라 선수단 30명에게 나눠 준다는 것이 해태의 발표 내용이었다. 해태 선수들은 호랑이 같은 기운이 솟아난 상태로 5차전을 맞이했다.


◇ 5차전(잠실) MBC 1-8 해태

전날 연장 혈전을 치른 두 팀은 투수력이 바닥난 상태로 5차전을 펼쳐야 했다. 해태는 4차전에서 하루를 쉰 주동식을, MBC는 멕시칸 리그 출신 이원국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원국은 당시로서는 거액인 1억3,000만 원을 받고 MBC에 입단했지만 정규 시즌 1승1패에 그치며 실망감을 안겼다.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5차전 선발투수로 내보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해태는 5차전에서도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1회 말 김일권이 실책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를 시도했고 포수 악송구가 나오면서 3루까지 진루했다. 내야 땅볼이 이어지며 가볍게 1-0으로 앞서 나갔다. 분위기를 탄 해태는 3회 말 김성한의 2루타와 김봉연의 우전 적시타로 2점을 보탰고, 5회 말에는 김일권의 좌월 2루타 등을 묶어 2점을 더 내며 5-0으로 점수를 벌렸다. 사실상 경기 끝.

주동식의 절묘한 제구에 6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가던 MBC는 7회 초가 돼서야 반격에 나섰다. 주동식의 컨트롤 난조를 틈타 안타 2개와 볼넷 2개로 1점을 만회하고 2사 만루 기회를 이어 갔다. 승부사 김응룡 감독은 여기에서 에이스 이상윤 카드를 뽑아 들었고, 기대대로 이상윤은 이해창을 내야 플라이로 처리하며 실점을 막았다.

맥이 풀린 MBC는 오영일이 7회 말 3점을 더 내줬고 점수는 8-1까지 벌어졌다. 이상윤은 이후 9회까지 2.1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해태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투수가 됐다. 4승1무, 한국시리즈 첫 무패 우승이었다.

통산 11회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 왕조’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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