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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김학범-박항서 맞대결…되짚어보는 한국-베트남 스포츠 교류사

작성일: 2018.08.28 11:30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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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항서 감독이 27일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시리아와 경기 연장전에서 베트남이 골을 넣자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드디어 만났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박항서 감독이 지도하는 베트남이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준결승전에서 겨룬다. 남자 축구 대회 통산 다승 단독 1위(5) 및 2연속 우승을 겨냥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노리는 베트남이 29일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경기를 펼친다.

베트남은 1954년 마닐라 대회 버마(오늘날 미얀마)·1958년 도쿄 대회 인도네시아·1962년 자카르타 대회 말레이시아·1974년 테헤란 대회 말레이시아 동메달 이후 끊긴, 동남아시아 나라 축구 메달에도 도전하고 있다.

두 나라 아시안게임 출전사와 축구사에 한 페이지로 남게 될 이 경기를 앞두고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얽혀 있는 두 나라의 스포츠 교류 역사를 살펴본다.

글쓴이는 월남전의 포연이 자욱했던 1960년대 후반 본 사진 한 장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꽤 큰 포탄을 한국군은 두 손에 하나씩 들고 나르는데 월남(통일 전 남베트남)  노무자는 둘이 막대기에 하나를 끼어 나르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맨손, 태권도로 베트콩 여러 명을 제압했다는 무용담이 글쓴이 같은 소년들 귀를 솔깃하게 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작은 체격에도 베트남인들은 그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국과 치른 독립 및 통일 전쟁에서 이겼고 중국과 치른 국경 분쟁 전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힘든 전쟁을 치르느라 스포츠 발전에 힘을 쓸 여력이 없었다. 남베트남(월남)은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1972년 뮌헨 대회까지 올림픽에 나섰으나 메달이 없었고 북베트남(월맹)은 이 기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6년 통일 베트남은 몬트리올 대회에 불참했고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 통일 베트남으로 처음 출전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는 보이콧했다. 개최국 미국은 10년여 전까지만 해도 총부리를 겨눴던 적국이었다.

통일 베트남은 1988년 서울 대회에 5개 종목에 9명(남 8 여 1)의 선수를 내보낸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올림픽에 개근하고 있다. 그사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3개를 획득했는데 2016년 리우 대회 사격에서 호앙 수안 빈이 남자 10m 공기권총과 남자 50m 권총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명중했다.

호앙 수안 빈이 은메달을 획득한 남자 50m 권총 금메달은 한국의 진종오, 동메달은 북한의 김성국이 차지했다. 베트남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나라 선수들이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굴러가고 있다.

베트남이 올림픽에서 얻은 나머지 은메달 2개 가운데 하나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호앙 안 투안이 들어 올렸다.

또 하나는 남북 베트남 시절을 포함해 베트남 사상 첫 올림픽 메달로 2000년 시드니 대회 태권도 여자 57kg급에서 트란 히우 능안이 딴 것이다. 태권도가 스포츠 약소국에 메달 기쁨을 선사하는 종목이긴 한데 베트남 태권도는 사연이 좀 더 특별하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은 파병 기간 민사작전(民事作戰)의 하나로 태권도를 활용했고 이에 따라 남베트남에는 꽤 일찍 태권도가 전파됐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대 이전에 한국과 베트남은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텄다. 종목은 축구였다. 1949년 1월 대한축구협회는 대표 팀을 꾸려 동남아시아 원정에 나섰다.

1차 원정지인 홍콩에서 2승2패를 기록한 대표 팀은 사이공(오늘날 호치민)에서 가진 월남과 첫 경기에서 4-2로 이겼다. 당시 월남 수도인 사이공 시내는 총소리가 들리는 등 어수선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와중이었던 까닭이다. 대표 팀은 2차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3차전에서 월남 주둔 프랑스군과 경기를 가져 5-0으로 이겼다.

농구 교류사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1970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월남을 98-8로 꺾었다. 우승국 일본이 인도를 152-28로 누르는 등 나라별 경기력 차이가 큰 시절이었지만 대회 45경기에서 10득점 이하로 묶인 건 월남이 유일했다.

경제력과 함께 급성장하는 베트남 스포츠에서 여자 배구 발전 과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2012년 9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배구연맹 컵 여자 대회 8강전에서 그해 런던 올림픽 4강국인 한국은 베트남에 세트스코어 2-3으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월드 그랑프리 출전권 획득은 수포로 돌아갔다.

베트남은 조별 리그에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3-2로 잡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우승국인 태국에 0-3으로 져 결승에 오르진 못했지만 급성장하는 베트남 스포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대회 결과였다.

2016년 자국 빈푹에서 열린 제5회 대회 7위 결정전에서는 한국을 다시 3-2로 이겼다. 이번 대회 조별 예선에서는 한국이 세트스코어 3-0으로 완승했지만.

2015년 중국, 2017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는 연속 5위에 올랐다. 중국 대회에서는 일본(6위)보다, 필리핀 대회에서는 대만(6위)에 앞섰다. 한-중-일 아시아 3강 그리고 태국과 겨루는 수준에 오른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은 우호국이다. 800여 년 전 화산 이 씨 선조인 베트남 리 왕조(1009년~1225년) 왕자 이용상은 몽골과 전쟁에서 공을 세워 고종에게 성(姓)을 받았다고 한다.

‘라이따이한’으로 대표되는 두 나라 사이 아픈 상흔이 축구로 치유되기를 29일 한국-베트남 경기를 앞두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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