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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손흥민이 만들 새 역사…한일전 1980년대 이후 명장면 3선

작성일: 2018.09.01 14:30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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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1일 저녁 8시 30분(한국 시간) 일본과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맞붙는다. ⓒ연합뉴스

- 스포티비뉴스 신명철 편집 위원 칼럼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제대로 만났다.

한국은 지난달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준결승 베트남과 경기에서 이승우의 멀티 골과 황의조의 골로 3-1 완승을 거뒀다.

이어 열린 또 다른 준결승에서 일본은 후반 32분 교체 투입된 우에다 아야세의 골을 끝까지 지켜 아랍에미리트연합을 1-0으로 물리쳤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이 한일전으로 펼쳐지는 것은 1951년 대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한국은 통산 다승 1위와 2연속 우승을 겨냥하고 일본은 첫 금메달을 노린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이 처음 한일전으로 이뤄진 까닭을 살펴본다.

일본 축구는 1960년대 이전까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8강 외에는 이렇다 할 국제 대회 성적이 없었다. 베를린 올림픽은 자유 참가제였다. 김용식 선생이 3-2로 이긴 스웨덴과 1회전, 0-8로 진 이탈리아와 8강전에 모두 주전으로 뛴 사실은 열혈 축구 팬이라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 대회는 중화민국(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체제 나라)도 출전했는데 1회전에서 영국에 0-2로 졌다.

일본은 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 출전을 신청했으나 자기들이 일으킨 중일 전쟁 여파로 기권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월드컵 예선 12조에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오늘날 인도네시아)가 경기를 치르지 않고 본선에 나섰다. 일본이 이 대회 예선을 준비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소집한 대표 팀에는 김용식 외에 이유형 배종호 박규정 선생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36년부터 1940년대 초까지 일본 대표 팀 강화 훈련에 합류한 한국인 선수가 연인원 38명이나 됐다. 일본이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1938년 프랑스 월드컵과 1940년 도쿄 올림픽 축구 경기에 꽤 많은 한국 선수들이 뛰었을 것이다.

▲ 황의조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결정력 높은 골잡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전범국(戰犯國) 일본은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을 금지당했다. 이후 월드컵은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지역 예선에서 계속 미끄러졌고 올림픽은 1956년 멜버른 대회에 출전했으나 1회전에서 호주에 0-2로 져 조기 탈락했다. 자국에서 열린 1964년 도쿄 대회에서는 1승1패로 조별 리그를 통과했으나 8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0-4로 패했다.

이런 일본이 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에서 대회 득점왕(7골)에 오른 가마모토 구니시게를 앞세워 동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 나라로는 첫 올림픽 축구 메달이었다. 이때 일본이 외친 게 ‘탈 아시아’였다.

일본은 메르데카배대회(말레이시아) 킹스컵(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 친선 축구 대회에 2진을 보내거나 불참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전범국 굴레에서 벗어나 출전한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에서 인도와 이란에 이어 3위를 했으나 이후 메달권에 들지 못하다가 1966년 제5회 방콕 대회에서 버마(오늘날 미얀마)와 이란에 이어 다시 3위에 올랐다. 한국은 이 대회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 대회 동메달 멤버 가운데 가마모토 구니시게 요코야마 겐조 가타야마 히로시 미야모토 마사카츠 야마구치 요시타다 스기야마 류이치 등 대부분이 2년 뒤 올림픽 동메달리스가 됐다.

일본은 올림픽에서는 도쿄 대회 이후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나설 때까지 계속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아시안게임에서는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준우승할 때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일본이 ‘탈 아시아’라면서 우쭐대긴 했지만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갈 때는 행운도 따랐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필리핀을 15-0으로 이긴 데 힘입어 한국을 골 득실 차로 따돌리고 본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한국과는 밀리는 경기였지만 3-3으로 비겼다. 일본은 이 예선에서 월남(통일 전 남베트남)을 1-0으로 겨우 이기는 등 2년 전 아시안게임 3위 수준의 경기력이었다.

이랬던 일본 축구가 1990년대 초반 J리그 출범과 함께 급속히 발전해 이제는 한국과 연령대별 모든 경기에서 일진일퇴하는 수준이 됐다.

이제 또다시 한일전이다. 중·장년 팬은 물론 신세대 팬들에게도 생생한 축구 한일전 3선을 소개한다.

▲ "이제 드디어 월드컵에 간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과 홈경기에서 결승 골의 시발점이 된 슈팅을 날린 최순호의 경기 장면. ⓒ한국 축구 100년사

#1 드디어 월드컵에 간다, 일본은 또다시 눈물

1986년 제13회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지역에 두 장의 출전권이 배정됐다. 아시아 지역 예선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조를 나눠 쿠웨이트 등 껄끄러운 나라들과 경기를 치르지 않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한국은 1985년 3월 10일 쿠알라푸르에서 벌어진 아시아 지역 B조 1차 예선 1그룹 두 번째 경기에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등 주요 국제 대회 지역 예선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말레이시아에 또다시 0-1로 져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5월 19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1차 예선에서는 또 약체 네팔을 2-0, 4-0으로 눌렀다.

한국은 7월 21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 예선 첫 경기에서 인도네시아를 2-0으로 꺾은 데 이어 7월 30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4-1로 이겨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일본은 홍콩을 3-0, 2-1로 제치고 최종 예선에 나섰다. 동아시아의 영원한 맞수 한국과 일본은 각각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출전과 첫 출전을 놓고 10월 26일 11월 3일 잇따라 맞붙었다. 경기 장소는 두 나라 스포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과 도쿄 국립 경기장이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 정용환과 이태호의 연속 골로 승기를 잡은 뒤 후반 기무라 가즈시에게 추격 골을 내줬으나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2-1로 이겨 월드컵 본선에 바짝 다가섰다. 이어 벌어진 홈경기에서 한국은 후반 16분 최순호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자 허정무가 그대로 차 넣어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이뤘다.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원정 경기에서 일본에 2-1로 역전승한 한국 선수들이 응원단이 있는 쪽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선수들 뒤로 보이는 도쿄 국립 경기장에는 입추의 여지 없이 관중들이 들어 차 있다. ⓒ한국 축구 100년사

#2 ‘후지산이 무너졌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직전 대회인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와 달리 가볍게 본선에 올랐다. 한국은 1997년 2월 22일 시작한 1차 예선에서 홍콩과 태국을 상대로 3승1무를 기록해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최종 예선은 10개국이 2개 조로 나뉘어 각 조 1, 2위가 본선에 출전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과 B조에 편성됐다. 9월 6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벌어진 카자흐스탄과 첫 경기에서 3-0으로 이겨 순조롭게 출발한 한국은 이어진 2차전 홈경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을 2-1로 꺾었다.

9월 26일 6만여 관중이 도쿄 국립 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펼쳐졌다. 한국은 후반 중반 야마구치 모토히로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경기 종료 10분여를 남길 때까지 끌려가고 있었다. 이때 드라마 같은 역전 승부가 시작됐다.

38분 서정원의 헤딩슛이 굳게 잠겨 있던 일본 골문을 열었고 41분 이번에는 이민성의 중거리 슛이 일본 골망을 흔들었다. 2-1 역전승, '도쿄 대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이후 6차전까지 5승 1무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최종 성적은 6승1무1패였다.

▲ ▲한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2-0으로 누르고 대망의 동메달을 차지했다.

#3 박주영-구자철 골골~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경기에서는 영국 단일팀 성적이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독자적으로 나서는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에는 단일팀으로는 출전하는 영국은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1912년 스토홀름 대회 이후 1세기 만에 금메달을 노렸다. 영국 단일팀은 라이언 긱스(38)와 크레이그 벨라미(33), 미카 리차즈(24, 이상 그때 나이)가 와일드카드로 출전할 정도로 메달 획득에 총력전을 폈다.

그러나 8강전에서 복병 한국을 만나 1-1(한국 득점자 지동원)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5로 져 김이 샜다. 한국은 이 경기에 앞서 조별 리그 B조에서 멕시코(대회 우승국)와 0-0으로 비긴데 이어 스위스를 2-1(득점자 박주영 김보경)로 잡아 1라운드 통과의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가봉과 0-0으로 비긴 한국은 멕시코(2승 1무)에 이어 조 2위(1승 2무)로 8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0-3으로 진 한국은 멕시코에 1-3으로 패한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났다.

한국은 정성룡(27) 박주영(27) 김창수(26)가, 일본은 도쿠나가 유헤이(28) 요시다 마야(23+, 이상 그때 나이)가 각각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다. 일본은 대체로 22세 이하 선수였지만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 6명이 들어 있는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한국은 이때 기성용(셀틱) 지동원(선덜랜드) 박주영(아스널) 구자철(아우그스부르크)이 유럽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팽팽하리라던 두 나라의 경기는 초반부터 한국이 흐름을 주도했다. 전반 38분 박주영이 드리블로 일본 수비진을 무너뜨리면서 선제골을 넣었다.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19세 이하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과 결승전에서 나온 골을 떠올리는 눈부신 개인기였다. 이어 후반 12분 구자철이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 골을 터뜨렸다. 스코어는 물론 경기 내용에서도 일본을 확실하게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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