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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대박’ 지난해 강정호 500만 달러, 올해 박병호 1,285만 달러

작성일: 2015.11.07 11:27 신명철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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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위원] KBO 리그 간판 타자 박병호(29, 넥센 히어로즈)의 몸값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2016년 시즌 메이저리그 그라운드에서 뛰는 박병호를 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넥센은 7일 오전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해 포스팅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넥센은 이날 새벽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1,285만 달러(약 146억7470만 원)의 포스팅 응찰액을 KBO를 거쳐 전달 받았다. 넥센은 지난 2일 KBO를 경유해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공시를 요청했다. 메이저리그 어느 구단이 최고 포스팅 금액을 제시했는지는 10일쯤 KBO가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박병호의 포스팅 금액은 2000년 스즈키 이치로가 기록한 1,312만5000달러에 이어 아시아 나라 야수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2011년 다르빗슈 유(5,170만3411달러)와 2006년 마쓰자카 다이스케(5,111만1111.11달러), 2006년 이가와 게이(2,600만194달러), 2012년 류현진(2,573만7377.33달러),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2,000만 달러) 등 투수를 포함해도 역대 7위에 해당한다. 2002년 이시이 가즈히사(1,126만 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포스팅 시스템에서도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조건 외에 2013년 12월 미국과 일본 사이에 포스팅 최고액을 2천만 달러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박병호가 1,200만 달러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998년 미국과 일본이 만든 포스팅 시스템에 따라 미국행에 성공한 선수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일본은 1960년대에 무라카미 마사노리(난카이 호크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일종의 유학생 자격으로 미국에 갔다가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등 미국과 오래전부터 야구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두 나라 사이의 불분명한 선수 이적과 관련한 문제로 1966년 시즌 일본 리그로 돌아오면서 두 나라 야구 기구는 이른바 ‘손대지 않기[hands off]'를 기초로 한 미·일 협약을 1967년에 맺었다.

 그러나 미·일 협약은 오랜 기간 사문화돼 있었다. 한국도 프로 야구 초창기인 1983년 7월 ,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게임을 관전하기 위해 시카고에 간 서종철 총재가 보위 쿤 커미셔너와 ‘한미 프로 야구 간 선수 보유권에 관한 협정, 한미선수협정)’을 맺었다. 상대 리그 선수를 트레이드하기 위해 현역 선수에 대해서는 선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 협정도 상당 기간 적용할 사례가 없었다.

 일본은 자국 야구 수준이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수준 이상이 된다면서도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선수 생활 대부분을 한신 타이거스에서 한 투수 에나쓰 유타카가 일본 리그에서 은퇴한 뒤 미국 프로 야구에 도전한 일이 있긴 했지만 이는 에피소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쪽에 보면 친선경기 등으로 일본과 야구 교류를 이어 갔지만 1980년 시즌 오 사다하루가 완성한 개인 통산 868홈런을 철저히 무시하는 등 일본 야구를 얕잡아 본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일본 리그에서 외국 리그 이적 문제와 관련해 대형 사건이 터졌다. 1993년 긴데쓰 버팔로스의 주력 투수 노모 히데오가 미국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노모는 입단 5년째로 엄연히 긴데쓰 현역 선수였다. 자유롭게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노모 히데오는 미국 진출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긴데쓰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민 카드가 ‘임의탈퇴(任意脫退)’였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쓰고 있는 야구 규약 용어인 임의탈퇴는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선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원 소속 구단이 임의탈퇴 해지를 청구하지 않는 한 선수 생활을 재개할 수 없다.

 노모는 서슴없이 임의탈퇴 동의서에 서명했다. 동의서에 사인하는 순간 노모는 긴데쓰의 현역 선수 신분에서 벗어났다. 물론 복귀할 때는 긴데쓰의 동의 없이는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일시적으로 은퇴 선수가 돼 미국 진출의 꿈을 이뤘다.

 이 무렵 활약한 인물이 국내 야구 팬들 귀에 익은 에이전트 돈 노무라다. 돈 노무라는 노모 히데오에 이어 1997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얽혀 있던 문제를 트레이드 방식으로 해결해 이라부 히데키(지바 롯데 말린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미국행도 성사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사이에 크고 작은 말썽이 계속되자 1998년 미국과 일본 야구 기구는 기존 협약을 뜯어고쳤다. 이때 도입된 제도가 포스팅 시스템이다.

 사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포스팅 시스템에 따라 구단과 선수 모두 대체로 만족할 만한 돈을 받으며 미국행에 나서고 있으나 메이저리그로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포스팅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미국에 진출하려는 선수로서는 포스팅 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자신의 연봉을 깎아 먹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따라 2013년 12월 새로운 포스팅 시스템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 합의됐다. 가장 큰 내용은 포스팅 비용을 2천만 달러로 제한한 것이다. 새 방식이 적용된 선수가 뉴욕 양키스의 다나카 마사히로다. 다나카의 원 소속 구단인 라쿠덴 골든 이글스는 적지 않은 돈을 손해 봤지만 다나카 마사히로의 메이저리그행을 막지 않았다.

박병호는 이런 포스팅 역사 속에 지난해 강정호에 이어 2년 연속 넥센에 '대박'을 안기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날짜만을 기다리게 됐다.   

 ◆ 포스팅 시스템 주요 사례

[사진] 넥센 박병호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신명철 편집위원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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