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복귀한 염경엽 감독은 2021년 구상을 차분히 그려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건강은 회복했을지 몰라도, 가슴 속의 답답함까지 모두 떨쳐낸 기운은 아니었다. 1일 인천 LG전부터 다시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SK 감독의 이미지였다. 감독이 돌아왔지만, 이미 9위에 처진 팀 성적까지 초기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건강 악화로 경기 도중 쓰러져 많은 이들의 근심을 샀던 염 감독은 1일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경기를 지휘했다. 일단 감독대행이라는 과도기적 시기보다는, 그래도 정식 감독이 다시 더그아웃에 앉는다는 것 자체로 혼란은 많이 가라앉을 수 있다. 단지 올 시즌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SK는 내년을 바라봐야 한다. 내년 구상과 성적에 책임을 질 수장이 돌아왔다는 게 지금 SK에는 더 중요한 일이다.

염 감독의 복귀와 함께 SK는 2021년 구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프런트에서는 염 감독과 의논해 8월 중순부터 내년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는 팀에는 육성도 없다”는 게 염 감독의 평소 지론이다. 올 시즌 남은 경기에서 주축 선수들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되, 요소요소에 젊은 선수 및 내년에 활용할 전력을 끼어 넣어 테스트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염 감독도 1일 “올 시즌 열심히 했지만 안 되는 부분들이 여러 가지 많이 나왔다. 그런 부분의 전체적인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명백한 제시를 했어야 했는데, 놓친 부분들이 시즌을 치르면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팬들과 구단에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쉬는 동안 조금 멀리서 야구를 지켜보며 반성한 것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올해 실패를 인정할 용기다. 모든 새 출발의 전제조건이다. 염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나, 구단 프런트까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단순한 반성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올해 SK의 이론적인 시즌 구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광현과 앙헬 산체스의 해외 진출, 그리고 FA 영입이나 대형 신인의 가세가 없었던 상황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구상을 했다. 선수들도 나름대로의 방안들을 세웠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다수가 최선의 방안으로 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받는 법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짰던 많은 구상들은 상당수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부진한 시즌을 보낸 SK는 팀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한희재 기자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에 실패한 것은 물론, 김태훈의 5선발 전향, 정현 김창평의 키스톤 콤비, 불펜 전력 재정비, 대타 자원 보강, 강화에서의 2군 육성, 기존 타자들의 타격 전략, 팀 분위기 전환,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육성까지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다. 트레이드 성과도 지금까지는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 와중에 염 감독은 쓰러졌고, 강화에서는 대형 사고가 나왔다. 최악의 시즌이었다.

물론 지엽적인 부분에서 “이 부분이 잘못됐다”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한 반성으로 끝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 틀에 머물 수 있어서다. 전체적인 사고의 틀을 바꾸지 못하면 내년에도 비슷한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올해 구상은 이런 점에서 안 됐다”가 아니라, “이 구상을 세운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는 근본적인 의심이 필요하다. 하나하나씩 점검하고 바꿀 부분은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염 감독처럼 성공한 지도자, SK처럼 근래 들어 꾸준히 성공을 이어온 팀들은 관성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틀에서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그것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올해 성적이었다. 변화의 가장 기본은 여러 구상을 ‘듣는 것’이다. 평소에 그냥 흘려 지나쳤던 아이디어가, 팀을 바꿀 만한 귀중한 밀알이 될 수도 있는 시기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염 감독부터가 주위에 꾸준한 자문을 구하고 있다. 대상은 단순히 구단 관계자뿐만 아니라 구단 바깥의 관계자 등 범위를 가리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두 달을 쉬면서 다른 팀들의 경기까지 보며 느낀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구단도 최근 비선출 출신 운영팀장을 선임하는 등 운영과 프런트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간 SK의 인사를 생각할 때 내부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과감한 결단이었다.

자존심 강한 프로 세계에서 실패를 인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대다수의 감독들은 임기 중 바뀌지 않는다. 말로만 “바뀌겠다”고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궁극적 평가와 함께 퇴장하곤 했다. 그래서 많은 팀들은 그 변화를 위해 감독을 바꾸곤 한다. SK는 상황이 다르다. 구단은 염 감독의 임기를 보장했다. 같은 수장의 지휘 속에서 팀이 바뀌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야 내년 구상이 가벼워질 수 있다. 실패를 인정할 정말 대단한 용기가 있을지는 남은 47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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