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레이버컵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
▲ 2021년 레이버컵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

- 페더러, 23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는 레이버컵 끝으로 은퇴 선언

- 역대 최고령 세계 1위-237주 연속 세계 1위 등 거대한 유산 남겨

- 동갑내기 세레나 윌리엄스와 동반 퇴장…전환 앞둔 테니스계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로저 페더러는 챔피언 중의 챔피언입니다. 그는 자신의 세대 선수 가운데 가장 완벽한 경기력을 펼쳤고 코트에서 놀라운 민첩성과 강한 테니스 정신력으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는 영원히 남을 역사적인 경력도 이룩했습니다."

'테니스의 전설' 빌리 진 킹(78, 미국)은 은퇴를 선언한 로저 페더러(41, 스위스)를 이런 헌사의 글을 바쳤다.

'테니스의 황제'로 불린 페더러는 기나긴 선수 생활에 이별을 고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자신의 개인 소셜 미디어(SNS)에 "많은 분이 알고 있듯 나는 지난 3년간 부상과 수술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몸의 한계를 느꼈고 나도 잘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 마지막 윔블던이 된 2021년 대회 8강전을 마친 뒤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 퇴장하는 로저 페더러
▲ 마지막 윔블던이 된 2021년 대회 8강전을 마친 뒤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 퇴장하는 로저 페더러

그는 "24년간 1천500경기 이상을 뛰었다. 그리고 테니스는 내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나에게 관대했다"면서 "경력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는 걸 알았고 다음 주 열리는 레이버컵이 나의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며 은퇴할 뜻을 전했다.

페더러는 지난해 7월 윔블던 이후 무릎 부상 등으로 1년 넘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지난 7월 윔블던 센터코트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그는 "한 번 더 윔블던에서 뛸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내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열정'을 따라잡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만사의 순리 속에 결국 페더러도 라켓을 내려놓았다.

▲ 2003년 처음 윔블던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감격하는 로저 페더러
▲ 2003년 처음 윔블던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감격하는 로저 페더러

황제는 왜 코트를 떠날까

페더러가 이룩한 숱한 업적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역대 최고령 세계 랭킹 1위(36세 10개월)이다. 4년 전인 2018년 1월 페더러는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다. 그의 마지막 그랜드슬램 타이틀이었다.

또한 이해 윔블던에서는 8강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결승까지 진출해 준우승했다. 2021년 윔블던에서도 8강까지 오르며 테니스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페더러는 30대 후반까지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롱런에 도전했다. 그러나 최근 1년 반 사이에 무릎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어느덧 불혹이 된 그에게 치명적인 시련이었다. 

결국 지난해 윔블던 이후 코트에 서지 못했고 복귀 시점을 조율했다. 애석하게도 일은 본인의 의지대로 풀리지 않았고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평생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인 라파엘 나달(36, 스페인, 세계 랭킹 3위)은 페더러에 대한 질문에 "로저(페더러)는 지금까지 놀라운 일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그러나 부상 이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테니스 선수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년간 페더러는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다. 코트에 서기 위해 늘 자신의 건강과 씨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해 윔블던에서 8강까지 오르며 선전했지만 세 번에 걸친 무릎 수술은 끝내 라켓을 내려놓게 했다.

▲ 2010년, 평생 라이벌이자 절친인 라파엘 나달(오른쪽)과 함께한 로저 페더러
▲ 2010년, 평생 라이벌이자 절친인 라파엘 나달(오른쪽)과 함께한 로저 페더러

테니스의 교과서이자 가장 대중적인 선수

페더러는 강력한 포핸드는 물론 전매특허인 한 손 백핸드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유도했다. 여기에 백핸드 슬라이스와 드롭샷도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서브 앤 발리를 앞세운 공격적인 선수였지만 수비도 탄탄했다. 한 마디로 흠잡을 곳이 없는 '올라운더'였다.

기자가 과거 동호인 테니스 대회 취재를 하러 갈 때 테니스를 배우는 이들 상당수는 페더러의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기본기를 배울 때 교과서로 불리는 페더러를 보면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점인 유연성에서 나오는 멋진 폼도 페더러의 인기에 한 몫했다. 페더러는 누구보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폼으로 경기를 치렀다. 여기에 절제된 매너까지 보여주며 테니스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올라운더 답게 페더러는 코트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잔디 코트에서 강점을 보였고 윔블던에서만 8번 우승했다. 조코비치가 올해 윔블던을 제패하며 7번 우승으로 바짝 추격하고 있지만 아직 이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자는 페더러다.

▲ 2011년 윔블던에서 한 손 백핸드를 시도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
▲ 2011년 윔블던에서 한 손 백핸드를 시도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

하드코트에서 열리는 호주 오픈에서는 6번, US오픈에서는 5차례 정상에 올랐다. 롤랑가로스 프랑스 오픈에서는 단 한 번(2009년) 우승해 그가 클레이코트에서 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흙신' 나달의 벽을 넘지 못했을 뿐 이 대회에서만 4번이나 준우승했고 7번이나 4강에 진출했다.

2004년 2월 초부터 2008년 8월 중순까지 237주 연속 세계 1위를 질주했다. 그가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린 주는 모두 합해 무려 310주다. '황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고 테니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빅3'의 경쟁자였던 나달과 조코비치와 상대 전적에서는 열세를 보였다. 나달에는 상대 전적 16승 24패로 밀렸고 조코비치도 23승 27패에 그쳤다. 

페더러가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전에서 나달을 만난 마지막 대회는 2017년 호주 오픈이다. 이 대회에서는 페더러가 풀세트 접전 끝에 나달을 꺾고 7년 만에 호주 오픈 정상을 탈환했다. 

2019년 윔블던 결승에서는 조코비치와 숨 막히는 접전을 치렀다. 무려 4시간57분 동안 진행된 혈투 끝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비록 페더러는 승자가 되지 못했지만 테니스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그의 마지막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선사했다. 

▲ 2019년 윔블던 결승전을 마친 뒤 서로 격려하는 로저 페더러(오른쪽)와 노박 조코비치
▲ 2019년 윔블던 결승전을 마친 뒤 서로 격려하는 로저 페더러(오른쪽)와 노박 조코비치

추억 속으로 사라진 '빅3'…새로운 시대 여명의 눈 뜨다

페더러가 은퇴를 선언하며 '빅3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물론 여전히 조코비치와 나달은 현역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도 각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어느덧 36살이 된 나달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올해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을 정복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발 부상은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다. 

여기에 윔블던 8강전에서는 복근 파열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 대회 준결승을 기권했고 후유증은 US오픈까지 이어졌다. 부상을 안고 대회에 도전한 나달은 US오픈 16강에서 탈락했다.

조코비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미접종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이 문제로 그는 올해 호주 오픈에 출전하지 못하고 호주에서 추방됐다. 또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외국인에게 입국 비자를 허용하는 미국의 방침에 막혀 US오픈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문제는 내년에도 조코비치의 대회 출전에 장벽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한 시대를 풍미했고 로저 페더러(오른쪽)의 은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 빅3, 왼쪽은 노박 조코비치 가운데는 라파엘 나달
▲ 한 시대를 풍미했고 로저 페더러(오른쪽)의 은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 빅3, 왼쪽은 노박 조코비치 가운데는 라파엘 나달

이들과 GOAT(greatest of all time) 경쟁을 펼친 페더러는 레이버컵을 끝으로 그랜드슬램과 투어 대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테니스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41, 미국)는 올해 US오픈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1981년생 페더러와 윌리엄스가 은퇴를 선언하며 테니스계는 새로운 물결에 직면했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US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는 2003년에 태어난 카를로스 알카라스(19, 스페인, 세계 랭킹 1위)다. 

페더러는 만 16세였던 1998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알카라스가 세상에 태어나기 5년 전이었다. 

또한 US오픈에서 준우승한 카스페르 루드(24, 노르웨이, 세계 랭킹 2위)도 페더러가 프로에 데뷔한 1998년에 태어났다. 젊은 선수들이 대거 세계 랭킹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페더러는 영광스럽던 순간을 뒤로하고 정든 코트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 로저 페더러(왼쪽)와 카를로스 알카라스 ⓒ카를로스 알카라스 트위터 캡처
▲ 로저 페더러(왼쪽)와 카를로스 알카라스 ⓒ카를로스 알카라스 트위터 캡처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순리다. 그러나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젊은 선수 상당수는 페더러의 영향 속에 성장했다.

알카라스는 "로저(페더러)는 제 우상 가운데 한 명이었고 영감의 원천이었다. 우리 스포츠(테니스)를 위해 했던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는 여전히 페더러와 경기하고 싶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현 여자프로테니스(WTA) 세계 1위이자 올해 프랑스 오픈과 US오픈에서 우승한 이가 시비옹테크(21, 폴란드)도 페더러에 대한 헌사를 남겼다. 시비옹테크는 "나는 당신이 테니스를 위해 한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다. 당신의 업적을 목격해서 영광이었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