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막판 SSG 선두 수성에 결정적인 몫을 한 오태곤 ⓒSSG랜더스
▲ 시즌 막판 SSG 선두 수성에 결정적인 몫을 한 오태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리드오프라고 그러고 있네”

SSG 선수단은 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경기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출근을 늦췄다. SSG는 9월 29일과 30일 인천에서 열린 키움과 2연전에서 말 그대로 대혈투를 펼쳤다. 30일 경기가 늦게 끝나며 광주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에 가까웠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찍 나오는 바에야 1시간을 더 자는 게 나을 법했다. 숙소에서 푹 쉰 SSG 선수들은 경기 전 훈련을 최소화하며 가볍게 끝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그라운드에 나와 배팅 게이지로 들어간 선수가 있었다. 바로 멀티플레이어 오태곤(31)이었다. 전날 경기에서 최근 리드오프로 나섰던 주전 외야수 후안 라가레스가 팔꿈치에 공을 맞아 이탈하는 바람에 선발 리드오프 출전이 예정된 터였다. 이를 아는 동료들은 “리드오프로 나간다고 가장 먼저 타격 연습을 한다”고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오태곤도 모처럼의 주전 출장이 싫지는 않은지 밝은 표정과 함께 훈련에 임했다.

다행히 골절 등 큰 부상은 피했지만 팔꿈치에 심한 통증이 남아있는 라가레스다. 결장이 이날 하루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김원형 SSG 감독의 선택은 다른 주전 선수들의 전진 배치가 아닌, 오태곤의 등용이었다. 하지만 경기 전 새 리드오프의 이름을 말하는 김 감독의 목소리에는 비교적 힘과 확신이 있었다. 올해 성적과 별개로 오태곤이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를 믿고 있었다.

사실 오태곤은 올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군 엔트리에 있었던 선수다. 주전으로 나간 경기는 얼마 되지 않지만, 외야와 1루수를 오가며 부지런히 팀에 힘을 보탰다. 때로는 빛이 나지 않는 대타나 대주자로 그라운드에 서 있는 시간이 10분도 안 되는 날이 많았지만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경기에 나갔다. 그렇게 쌓인 출전 경기 수가 자그마치 127경기였다. 단순한 타격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선수였다. 김 감독의 신뢰는 굳건했다. 언제 어디서든 호출할 수 있는 맥가이버 칼과 같은 선수였다.

그런 오태곤은 최근 SSG의 경기 후반을 지배하는 선수가 되고 있다. 특히 9월 18일 인천 두산전에서는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치며 혈투의 주인공이 됐고, 9월 24일 인천 두산전에서도 홈런을 터뜨렸다. 9월 30일 인천 키움전에서도 중요한 순간 타점을 터뜨렸다. 그리고 1일 광주 KIA전에서도 팀 승리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잊을 만하면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며 팀을 끌어가고 있다. 

1-0으로 앞선 4회 희생플라이로 1점을 보태준 오태곤은 2-2로 맞선 9회 1사 2루에서 상대 마무리 정해영을 상대로 좌전 적시타를 치며 이날 경기의 결승점을 뽑았다. 좌타 대타를 투입할 수도 있었지만 오태곤을 끝까지 믿은 김원형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오태곤 또한 경기 후 “감독님이 1번을 맡겨주셔서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오늘 팀에 도움이 되는 타점을 만들어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사실 2-0으로 앞서 있다 8회 불펜이 다시 무너지며 2-2 동점을 허용한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오태곤이 해결을 하지 못했다면 팀이 전체적으로 쫓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태곤이 8회의 실점 아쉬움을 지우고 더그아웃 분위기를 바꾸는 중요한 결승타를 치면서 SSG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8회 실점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법 했던 노경은은 9회 1이닝을 막아내며 팀의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를 ‘2’로 줄였다.

SSG는 2019년에도 정규시즌 88승을 기록하는 등 최종일 전까지 1위를 지켰으나 시즌 막판 두산의 맹렬한 추격에 1위 자리를 내주고 결국 시즌을 망쳤다. 사실 알게 모르게 모든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2022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른 팀에 있었던 오태곤은 그 악몽과 무거운 분위기를 전혀 모른다. SSG는 지금 딱 그런 선수가 필요했고, 오태곤이라는 만능 칼이 SSG의 어지러운 매듭을 하나하나씩 끊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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