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전 외야의 실책은 덜 올라온 SSG의 경기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곽혜미 기자
▲ 1차전 외야의 실책은 덜 올라온 SSG의 경기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모든 준비를 끝낸 SSG는 11월 1일, 1차전을 앞두고 한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에이스 김광현의 출격이 예정된 가운데, 상대 투수이자 한국시리즈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인 리그 최정상급 투수 안우진(키움)의 손가락 상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경기를 앞두고 안우진의 손가락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안우진은 kt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물집이 잡혀 6이닝만 던지고 강판됐다. 그 후 계속 물집이라는 꼬리표가 안우진의 이름 앞에 따라 다닌 게 사실이었다. SSG도 당연히 안우진의 손가락 상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1차전 미출장선수 명단에서 2차전 선발로 생각했던 에릭 요키시가 빠지면서 SSG는 더 큰 혼란에 빠져 들었다.

안우진의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다면 키움의 투수 운영에 변수가 생길 것이고, 그렇다면 SSG도 그것에 맞춰서 나름의 대비를 해야 했다. 루머대로 손가락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안우진의 손가락이 오래 버티지 못한 건 맞았다. 안우진은 58구를 던진 후 물집이 터졌고, 결국 2⅔이닝만 던진 채 마운드를 떠났다. SSG로서는 호재였다. 게다가 2회 김성현의 적시타, 3회 최정의 솔로홈런으로 2점을 앞선 유리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리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연습경기 당시부터 컨디션이 다 올라오지 않아 불안했던 수비가 말썽을 일으켰다. 2-0으로 앞선 5회 2사 1루에서 송성문의 우중간 타구를 우익수 한유섬이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 사이 1루 주자 김휘집이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었고, 여기서도 중계 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허무하게 실점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경기 분위기가 키움 쪽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고 결국 5회 포수 패스트볼로 동점을 허용했다.

2차전에서도 송성문 타석 때 우중간에 떨어지는 타구가 나왔는데 여기서도 실책이 일어났다. 최지훈도, 한유섬도 고개를 들 수 없었던 플레이였다. 당시 선수들은 “콜 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최지훈은 “마지막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실책을 직감한 듯) 서로 비명을 질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꽤 오랜 기간 외야에서 호흡을 맞춘 두 선수도 한국시리즈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듯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1차전에서 최지훈은 이후 외야에서 미끄러지는 실책성 플레이를 기록하면서 결국 경기 중반 주도권을 내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이날 경기장에는 물을 제법 많이 뿌린 상황이었다. 양쪽 선수들 모두 “외야로 나오는 안타를 잡으면 물공을 잡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바운드가 이쪽으로 튀었어야 했는데, 최지훈의 생각과는 다르게 반대로 튀면서 무게중심이 흐트러졌고 결국 미끄러지는 모습이 나온 것이다. 최지훈은 미끄러지면서 파인 구멍을 두고 “저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모든 관중들이 나만 쳐다보는 기분은 오래간만의 일”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 김강민의 9회 동점 홈런은 시리즈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곽혜미 기자
▲ 김강민의 9회 동점 홈런은 시리즈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곽혜미 기자

9회 노경은이 전병우에게 대타 역전 투런포를 맞으면서 경기가 뒤집어졌고, 패색이 짙어졌다. 가장 믿을 만한 카드가 무너진 SSG 벤치에도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영웅이 등장했다. 대타에는 대타로, 9회 1사 후 김강민이 극적인 좌월 동점홈런을 치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물론 3차전 선발로 예정됐으나 9회 긴급하게 투입된 숀 모리만도가 연장 승부에서 무너지며 1차전을 6-7로 내주기는 했다. 9회의 영웅, 김강민의 마지막 타석으로 경기는 끝났다. 김강민은 “완전히 속았다”고 자책했고, SSG 코칭스태프는 “김재웅이 참 수비를 잘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9회 김강민의 홈런, 그리고 1차전의 연장 승부는 돌이켜보면 키움의 한국시리즈 구상을 꼬이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발단이 됐다. SSG 관계자들도 “돌아보면 그날 그렇게라도 진 게 우승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가장 핵심적인 타자인 최정의 컨디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건 굉장한 수확이었다. 연습경기 당시 “가장 컨디션이 좋은 타자가 최정”이라는 SSG 코칭스태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에 김강민의 홈런은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이는 가뜩이나 잦은 등판에 체력적 부담이 있었던 김재웅에게 이날 하루에만 47개의 공을 던지게 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김재웅의 구위는 한국시리즈 기간 중 최고치를 다시 찾지 못했다.

지긴 했지만 SSG 선수들은 차분했다. 오히려 키움이라는 팀의 전력과 기세를 인정하고, 더 겸손하게 남은 시리즈를 치를 수 있을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기 후 선수단 미팅을 통해 이날 나온 실책과 잘못 됐던 것들을 차분하게 짚으면서 2차전 의지를 다졌다. 김강민은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처질 선수들이 아니다”고 자신했고, 선수들은 “일단 한 판만 잡으면 된다”고 똘똘 뭉쳤다. 지긴 했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1차전이 아니었다. 우승 씨앗은 그때부터 조금씩 뿌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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