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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종가'가 울었다…英 유일 발롱도르 다회 수상자 키건, 향년 75세로 영면→"리버풀에서만 100골 쌓은 폭격기이자 EPL 승격 2회 이끈 명감독" 잉글랜드 축구계 깊은 애도

작성일: 2026.07.21 09:52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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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BBC Sport' SNS
▲ 출처| 'BBC Sport' SNS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잉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다회(多回) 수상자인 레전드 공격수 케빈 키건이 75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영국 'BBC' '가디언' 등 복수의 현지 언론은 21일(이하 한국시간) "리버풀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키건이 수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전해진 비보에 영국 축구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키건은 지난 1월 암 말기(4기) 진단을 받은 뒤 병마와 싸워왔다.

유족은 가디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큰 슬픔 속에 키건이 일흔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알린다"며 "그는 암과 싸워왔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두 딸이 곁을 지켰다"고 밝혔다.

키건은 잉글랜드 축구 연감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공격수다.

1972년부터 11년간 축구 종가를 상징하는 골잡이로 명망을 떨치며 A매치 63경기 21골을 적립했다.

1978년과 1979년엔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해 잉글랜드를 넘어 당대 유럽 최정상 골게터로도 인정받았다.

1968년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1년 리버풀로 이적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리버풀에서 6시즌간 공식전 321경기 100골을 몰아쳐 안필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 영국 'BBC' '가디언' 등 복수의 현지 언론은 21일 "리버풀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케빈 키건이 수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 영국 'BBC' '가디언' 등 복수의 현지 언론은 21일 "리버풀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케빈 키건이 수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1977년엔 독일 함부르크로 이적해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한 해외 생활을 경험했다. 

이후 사우샘프턴(1980~1982년)을 거쳐 뉴캐슬 유나이티드(1982~1984년)에서 선수 생활 마지막을 장식했고, 1984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뉴캐슬은 구단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뉴캐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영향력 있으며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키건 별세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그는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을 넘어 여러 세대 팬들에게 맥파이스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추모했다.

현역 시절 키건은 화려한 우승 경력을 자랑했다. 

1977년 리버풀의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 우승 3회(1973·1976·1977), FA컵 우승 1회(1974), UEFA컵 우승 2회(1973·1976)를 차지했다.

반면 A매치에선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잉글랜드 '삼사자' 유니폼을 입고 A매치 통산 63경기 21골을 기록했지만,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나 월드컵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메이저 대회 우승과도 연을 맺지 못했다.

다만 프랑스 유력지 '레키프'는 21일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고도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단 사실과 메이저 우승이 없음에도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단 점을 증명한 거의 유일한 공격수"라며 현역 시절 키건 영향력을 귀띔했다.

▲ 프랑스 유력지 '레키프'는 21일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고도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단 사실과 메이저 우승이 없음에도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단 점을 증명한 거의 유일한 공격수"라며 현역 시절 케빈 키건 영향력을 귀띔했다. ⓒ 프랑스 '레키프'
▲ 프랑스 유력지 '레키프'는 21일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고도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단 사실과 메이저 우승이 없음에도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단 점을 증명한 거의 유일한 공격수"라며 현역 시절 케빈 키건 영향력을 귀띔했다. ⓒ 프랑스 '레키프'

은퇴 후엔 명 지도자로 활약했다. 

1992년 뉴캐슬 감독으로 부임해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다비드 지놀라 등을 발굴했다.

이듬해 뉴캐슬을 챔피언십(2부) 우승으로 이끌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복귀를 안내했고 1998년엔 풀럼 임시 감독을 맡아 구단주 모하메드 알 파예드 체제에서 역시 EPL 입성을 지휘했다.

1999년 잉글랜드 대표팀 사령탑에도 선임돼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고개를 떨궜다.

유로 2000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대회 조별리그 탈락이란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결국 2000년 10월 대표팀 지휘봉을 반납했다.

이후 중동 자본이 인수되기 전 맨체스터 시티를 4년간 이끌었다(2001~2005년). 

이후 한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 2008년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인연을 맺은 뉴캐슬에서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움켜쥐며 노익장을 발휘했다. 이 해를 끝으로 축구계를 떠나 야인으로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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