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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은 선구자" 日 통산 최다 안타 전설이 회상한 고인…"동료와 싸우게 했다" 놀라운 에피소드도

작성일: 2026.08.16 11:55 신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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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4할 타자' 백인천 전 MBC-LG-삼성-롯데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함께 활약했던 장훈(하리모토 이사오)이 고인을 추모했다.  

▲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뇌경색 악화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
▲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뇌경색 악화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

장훈은 16일 일본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닛폰에 보낸 기고문에 "(백인천은)나보다 3년 아래 후배였다.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에 뛰었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썼다. 

또 "백인천은 성격이 매우 강인해 겉으로는 고집이 세 보이지만 강한 척하는 면도 있는 선수였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에 한국에서 홀로 건너와 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백인천의 일본 프로야구 데뷔에 대해서는 "1962년 한국 야구계 관계자로부터 좋은 선수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어떤 선수인지 본 적이 없어서 훈련에 참가하게 했다. 포수라고 들었는데 탄탄한 체격에 발이 빨랐다.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추천했더니 '재미있다'며 영입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언어 장벽으로 고생했다. 첫 1년은 나를 바짝 따라다니면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고집이 엄청 세서 투수에게도 자신의 사인대로 던지게 했다. 그러다 투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게 됐다. 그 변신이 일본에서의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 장훈(하리모토 이사오).
▲ 장훈(하리모토 이사오).

그러면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경기 전 라커룸에서 벌어진 일이다. 백인천은 당시 토에이 4번타자였던 오스기 가쓰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경기 전에 한 번 싸우겠다고 해서 10분만이라고 허락했다. 두 사람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먹다짐을 벌였다. 10분이 지나 말리려 했더니 오스기가 내가 때린 횟수가 한 번 적다며 더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고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백인천이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초대 감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장훈의 존재가 있었다. 장훈은 "1980년 내가 통산 3000안타를 쳤을 때 롯데에서 팀 동료로 지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MBC 겸임 감독으로 추천했다.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썼다. 

백인천 전 감독은 1963년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 롯데 오리온스, 킨테츠 버팔로스 등을 거치며 19시즌 동안 활약했다. 총 196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8, 1831안타, 209홈런 등을 기록했다. 1975년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KBO리그가 출범하자 고국으로 돌아왔다. 

KBO리그의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에 선수 겸 감독으로 몸담았다. 그해 71경기에 출전해 타율 0.412(250타수 103안타) 19홈런 64타점 55득점, 장타율 0.740, 출루율 0.502 등을 자랑하며 KBO리그 유일한 4할 타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백인천 전 감독은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선수 겸 코치로 뛰었다. 1990~1991년 LG 트윈스 감독, 1996~1997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거쳐 2002~2003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끝으로 지도자 생활을 마쳤다.

장훈은 1959년 일본 프로야구에 데뷔해 은퇴할 때까지 3085안타를 쳤다.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다 안타 1위이자, 3000안타를 넘긴 유일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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