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진단⑦] 체육기금 4,000억 문화·예술로 가는데…학교운동부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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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숫자만으로 한국 스포츠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국가주도형 선수 육성 시스템과 일본의 탄탄한 스포츠 저변이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한국은 학교체육의 위축과 선수 육성 기반의 약화, 변화하는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자 육성 체계, 부처별로 나뉜 스포츠 정책의 조정과 실행 등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선수 인권 보호와 체육계의 공정성·책임성 확립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스포티비뉴스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체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각도로 진단하고, 선수 육성 기반 강화부터 공정한 스포츠 환경 조성까지 한국 스포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체육진흥기금 잉여금이 3조 원 이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관광기금, 영화발전기금으로 계속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돈은 팀 해체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 체육진흥기금이 있는 거 아닙니까?"
2026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던진 질문이다. 체육을 위해 조성된 국민체육진흥기금이 해마다 문화·관광·영화 분야로 전출되는 반면, 정작 체육 현장에서는 학교운동부가 잇달아 해단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올해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문화·관광·영화 분야로 전출된 금액은 4,043억 원에 달한다. 반면 최근 3년간 전국 학교운동부는 124개가 창단되는 동안 233개가 해단했다. 학교운동부 한 곳이 생기는 동안 두 곳 가까이 문을 닫은 셈이다.
체육을 위해 조성된 기금은 매년 다른 분야의 재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체육 현장에서는 선수 육성 기반이 약화되고 지도자 처우와 시설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체육기금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재원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 체육기금 4,043억 원 타 분야 전출…2027년에도 구조는 유지
국민체육진흥기금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조성된 목적형 기금이다. 생활체육과 전문체육, 장애인체육, 스포츠산업, 선수와 지도자 육성 등 대한민국 체육 전반을 지원하는 핵심 재원이다.
그러나 실제 기금 운용 구조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재원이 체육 이외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2026년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1,623억 원,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1,014억 원, 영화발전기금으로 1,406억 원 등 총 4,043억 원이 전출됐다.
당초 편성됐던 타 분야 전출액은 2,050억 원이었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을 거치면서 약 1,993억 원이 더해져 전출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10년간 가장 큰 전출 규모다.
이러한 흐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2017년부터 2026년까지 최근 10년간 문화예술·관광·영화 분야에 전출된 체육기금은 모두 1조 3,683억 원에 달한다. 체육을 위해 조성된 재원이 다른 분야의 재정적 수요를 충당하는 구조가 장기간 이어진 것이다.
체육기금의 사용 방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체육계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 발간한 '생활체육 육성사업 평가'에서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재정 운용 구조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0년과 2024년의 당초 기금운용계획을 비교한 결과,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자체 수입은 1조 7,720억 원에서 2조 2,797억 원으로 28.7% 증가했다. 반면 기금사업비와 운영비를 합한 총지출은 1조 4,778억 원에서 1조 6,227억 원으로 9.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금 수입 증가가 체육사업 지출 확대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과 타 기금 전출 등에 재원이 활용되는 것은 재정 운용상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금의 자체 수입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체육 발전을 위한 사업비 확대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5회계연도 결산 분석에서도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여유자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사업지출 비중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기금 본연의 목적에 맞게 축적된 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5년 말 기준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여유자금은 3조 9,181억 원으로 집계됐다. 상당한 재원이 축적된 상황에서 체육사업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2027년 국민체육진흥기금 정부안에서도 타 분야 전출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기금에 1,100억 원, 영화발전기금에 900억 원 등 2,000억 원을 전출하는 계획이 반영됐다. 복권기금 정산액 반납 126억 원을 포함하면 타 기금 전출 항목은 총 2,126억 원이다.
정부는 체육 분야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27년 국민체육진흥기금 사업비는 2026년 당초 계획 기준 1조 6,557억 원에서 1조 7,935억 원으로 증가했다. 생활체육 사업비는 5,161억 원에서 7,775억 원으로 늘었고, 전문체육 사업비도 4,699억 원에서 4,813억 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체육 분야 사업비 증액과 타 분야 전출 구조의 개선은 별개의 문제다. 예산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넘어 선수와 지도자, 지역 체육 현장에서 절실하게 요구하는 사업에 재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 학교운동부 3년간 109개 순감…임오경 "체육기금 제대로 쓰이고 있나?"
체육기금의 사용 방향을 둘러싼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임오경 의원은 학교운동부가 빠르게 감소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문체부의 대책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임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학교운동부는 124개가 창단되고 233개가 해단해 109개가 순감했다.
2023년에는 38개가 창단되고 76개가 해단했다. 2024년에는 창단 38개, 해단 72개였고 2025년에는 창단 48개, 해단 85개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최근 3년 연속 창단보다 해단이 많았다.
수도권에서도 학교운동부 해단이 집중됐다. 서울과 경기에서만 3년간 99개 운동부가 해단했다. 전국 해단 운동부의 42.5%를 차지하는 수치다.
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학교 운동부 한 팀 창단하면 두 팀이 없어지는 해체되는 상황입니다"라며 문체부의 대책을 따져 물었다.
이어 학교운동부의 창단과 해단을 개별 학교의 재량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학교체육을 지키기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선수가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도 훈련할 학교와 운동부 자체가 사라지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특히 임 의원은 체육기금이 문화예술·관광·영화 분야를 지원하는 상황을 거론하며 정작 체육 현장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의원은 "다른 부처 도와주는 것도 잘하는데"라고 말한 뒤 "제대로 쓰여져야 될 거 아닙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체육 발전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 정작 운동부 해단과 같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 의원은 체육진흥기금에 3조 원 이상의 잉여금이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의 결산 분석에서도 3조 원을 훌쩍 넘는 여유자금이 확인된 만큼, 축적된 재원을 체육 현장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학교운동부의 해단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선수 수급난, 지도자 인건비와 운영비 부담, 학교의 관리 책임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단순히 예산을 늘린다고 모든 운동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운동부의 운영이 어려워질 때 이를 지원하거나 지역 단위의 새로운 육성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운동부가 해단되면 학생선수의 운동 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지역의 선수 육성 기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임 의원의 문제 제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체육기금에 상당한 재원이 축적되고 다른 분야로 수천억 원이 전출되는 동안, 정작 체육 현장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 지원과 제도적 대책은 충분했는지 여부이다.
◆ 최휘영 장관 "체육기금은 체육 위해"…유승민 회장, 지역 체육회 활용 대안 제시
정부도 체육기금의 사용 방향을 둘러싼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5월 11일 프로축구 성장위원회 공개회의 현장에서 스포티비뉴스의 체육기금 관련 질문에 "문체부는 당연히 체육기금을 체육을 위해 더 많이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재정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체육 분야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체육기금이 체육 분야에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6월 9일 한국체육기자연맹 소속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체육 예산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 최 장관은 "스포츠 분야 예산은 지난 몇 년간 사실상 정체 상태였다"며 "이 정도 규모로는 우리가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없다. 내년에는 체육 예산을 지금보다 대폭 증액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에는 체육 분야 사업비 증액이 반영됐다. 그러나 문화예술과 영화 분야로의 기금 전출은 계속된다. 체육기금을 본래 목적에 맞게 더 많이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이 실제 현장의 변화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과제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역시 이번 국정감사에서 학교운동부 감소에 따른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우려했다. 유 회장은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며 "앞으로 10년 뒤에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굉장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학교운동부 감소로 선수 육성 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인구소멸 위험 지역에서는 운동부 유치를 통해 학교와 지역의 상생을 모색하고 있지만 정책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유 회장은 교육부와의 협력 없이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학교운동부의 창단과 운영, 해단에 관한 권한이 교육행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안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체육회를 활용한 학교운동부 위탁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학교가 운동부 운영에 따른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모두 떠안는 대신 지역 체육회가 운영에 참여하면 선수 육성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강화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협의, 관련 법령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지도자 고용과 학생 안전관리, 훈련시설 확보, 학교와 지역 체육회의 책임 분담 등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유 회장은 국민체육진흥기금을 활용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와 관계부처가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도 밝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체육기금의 사용 방향과 실제 현장의 수요를 연결하는 일이다. 문체부와 교육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협력해 학교운동부를 비롯한 선수 육성 기반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재정적·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체육기금의 본래 목적 회복 필요…체육 현장에 필요한 곳부터
국민체육진흥기금은 체육 발전을 위해 조성된 목적형 기금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다른 기금으로의 전출이 가능하더라도, 체육 현장에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문화·관광·영화 분야의 부족한 재정을 반복적으로 체육기금에 의존하는 구조는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재정법은 기금 간 여유재원의 전입과 전출을 허용하면서도 기금의 목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체육기금의 타 분야 전출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체육 발전이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재정 운용인지는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학교운동부가 잇따라 해단되고 선수와 지도자들이 지원 부족을 호소하는 현실에서 체육을 위해 마련된 재원이 본래 목적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체육기금의 역할은 학교운동부 지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비인기 종목을 비롯한 전문체육 선수 육성, 지도자의 안정적인 고용과 처우 개선, 지역 체육시설 확충과 노후 시설 개선, 장애인체육의 훈련 환경과 참여 기회 확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역 체육회와 종목단체의 안정적인 운영, 생활체육 지도자의 처우 개선,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국민 누구나 체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필요하다. 은퇴선수의 진로 전환과 체육인 복지 확대 역시 체육기금이 더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분야다.
학교와 지역에서 선수를 발굴하고, 종목단체가 육성체계를 뒷받침하며, 지도자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도 유지된다. 생활체육과 장애인체육의 저변 확대 역시 국민 건강과 체육 참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체육기금의 규모가 커지고 체육 분야 예산이 증액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선수와 지도자, 지역 체육 현장이 어떤 지원을 받고 무엇이 개선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체육기금 운용의 성과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현장의 변화로 평가받아야 한다.
체육계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돈이 아니다. 체육을 위해 마련된 재원이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그 혜택이 선수와 지도자, 지역 체육 현장과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체육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 정작 체육 발전에 우선적으로 쓰이지 못한다면, 그 기금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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