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행정 마비' 중에도 한국 축구는 '임시' 감독 모레노에게 어떤 자산을 빼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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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그저 안타깝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부진 후폭풍은 한국 축구 전반을 크게 흔들었다. 구심점 없이 굴러가는 대한축구협회는 '동네북'이다. 축구를 모르는 정치인들의 먹잇감이요, 무슨 소문을 말해도 책임질 일이 딱히 없는 일부 유튜버들의 클릭수 향상 대상이다.
축구협회는 현재 상황에 대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최악이라 평가받았던 2014 브라질월드컵의 경우 백서라도 펴내서 이어진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교훈으로라도 삼았지만, 지금은 회장 선거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만난, 과거 축구협회에도 몸담았던 한 원로 축구인은 "제가 죄인인 것 같다. 협회 행정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좋은 상황에서는 주목하지 않고 A대표팀만 찬사받다가 성적이 나쁘면 모든 게 행정 탓이라고 하니 무슨 할 말이 있나"라며 그저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이 축구인은 최근 보궐 선거를 앞두고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는 인사와도 연이 있다. 그는 "지금은 젊은피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거론됐던 인물이나 출마했던 인물들은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 박지성, 이영표 등 행정 경험을 조금이라도 했던 인물에게 어렵지만, 십자가를 메달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구협회는 무생물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며 통탄함을 이어갔다.
원로들의 책임도 무한하다. 협회가 망가지고 OB축구회와 지도자협의회, 프로축구선수협회 등 세대와 직군별로 갈라진 축구인들을 그 누구도 융합하지 못하고 있다. 축구협회 지원금이 없으면 어렵게 돌아가는 OB축구회는 더 그렇다. 그저 안타깝다는 표현이 최선이다.
그래서 이 축구인은 "행정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행정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한 이들이 혁신의 깃발을 들고 들어와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달라질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행정이 마비 상태로 연명 중인 축구협회에는 과제가 산적하다. 모든 것이 A대표팀 문제로 귀결되어 있지만, 풀뿌리인 유소년 축구나 인프라 확충, 국제 외교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국회,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런 상황을 모를까. 여러 경로를 취재해 보니 협회 내부 인사는 물론 외부의 국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에게 아시아 축구연맹(AFC) 등을 통해 '의견 청취'를 하고 있는 정황도 보였다. 이들의 전언이 어떤 사안(=징계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총체적 난국이 된 것에 A대표팀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아시안컵 연기로 '개혁'을 조금 더 알차게 할 수 있다는 시간과 기회를 얻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순수성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등 여러 요소를 따질 경우에는 마치 백척간두 위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축구협회는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 매우 좋은 소재라 의원님도 꾸준히 상황을 모니터 중이다. 한때 FIFA에 직접 소통 채널이 있는지도 알아보자는 말도 나왔었다. 물론 이는 FIFA의 '제3자 개입' 조항을 알기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를 통해 '산하 단체'인 축구협회 동향을 부정기적으로 확인 중"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지성이 이끄는 문체부 산사 K-축구 혁신위원회는 여러 과제를 놓고 축구협회에 '권고'하며 변화를 끌고 가는 중이지만, 초기보다는 속도가 매우 느려진 것도 사실이다. 박문성 해설위원의 프로축구성장위원회도 최근에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 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라는 행정 기관의 '옥상옥'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해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행정 마비 수준 상황에서도 돌아가야 할 일은 돌아가야 한다는 숙제와 마주한 한국 축구다. 보궐 선거를 통한 집행부 선출이 연내에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이 한국 축구에 뿌리고 있는 자산을 영리하게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어느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익명을 원한 K리그 A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모레노 감독이 K리그 관전을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손정범(FC서울), 신민하(강원FC) 등을 선발하지 않았나. 그래서 경영진에서도 감독을 통해 동기부여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든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시기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레노가 '보궐 집행부'를 통해 최종 선택을 받아야 연속성이 생겨 새 얼굴들이 계속 생전할 수 있다는 특수성도 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얼굴이 등장한다면 또 판이 바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안컵 연기로 과거 연령별 대표팀 코칭스태프 경력이 있는 지도자가 A대표팀 도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와는 별개로 모레노라는 임시 감독에게서 한국 축구는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카타르 당시 최장수 감독이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은 4-2-3-1 전형에 기반한 빌드업 축구를 한국 축구에 이식해 16강이라는 성과를 봤다. 특히 분명한 스타일이 있는 고집 있는 지도자를 믿어주면 그래도 최소한의 결과는 해준다는 것도 확인했다. 대회 직후 선수단 내 여러 잡음이 나왔지만, 늘 그렇듯 '16강 진출'이라는 성적이 모든 것을 일단 해결해 줬다.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제대로 속으면서 한국 축구가 표류하는 상황이 됐고 특별하게 그의 경험을 얻은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선진 축구를 경험한 유럽 출신 '외국인 감독'에게는 무엇이라도 유산을 남겨서 한국 축구 발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에는 변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모레노 감독은 "한국 축구에 4-4-2 전형을 앞세워 가겠다. 한국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겠다"라며 한국의 기질에 기반해 전술, 전략, 선수단 융화 등을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앞세워 심겠다고 한 바 있다.
단기간이라도 한국 축구에 남길 것은 남기겠다는 모레노에게 축구협회와 축구인들은 무엇을 빼낼 것인지 고민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궐 선거를 통한 행정 공백 메우기도 중요하지만, 한국 축구의 대계를 이끌 팀 운영 노하우나 전략, 전술 등을 가져와 한국식으로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1996년생 세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FC포르투), 황희찬(샬케04)의 국가대표 은퇴 소동과 1992년생 주장 손흥민(LAFC)과의 갈등설, 뚝심 있는 주장 연임 등 이 과정도 분명한 내부 기록으로 남겨서 갈등이 어떻게 해결 과정을 거치는지, 모레노는 어떤 말들을 남겼는지 차후 1~20년 뒤에 공개하더라도 '기록물'로 반드시 남길 필요도 있다. 갈등의 해결 과정에 기록이라는 것이 없다면 향후 다른 세대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때 해결할 메뉴얼이나 경험치가 없어 그렇다. 기록이 과학으로 발전하고 경험으로 축적 중인 현대 축구에서 기록을 대충한다면 지금의 시간은 무의미 그 자체다.
이미 축구협회가 크게 외쳤던 한국 축구 발전 철학인 'MIK(Made In Korea-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축구’)는 방향을 잃고 표류 중이다. 이를 입안했던 인사 일부는 협회 밖에 있다. 취업 걱정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월급 받으며 행정 중이다. 다수 축구팬은 MIK가 기존 '투혼'으로 대표하는 한국 축구와 뭐가 다르냐는 질문도 던진다.
축구협회 행정 와해 수준에서 MIK를 뚝심 있게 유지하려면, 혹시라도 향후에 모레노 체제가 길게 이어진다면, 이를 융화할 체계부터 정비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식 계약 여부를 떠나 여우처럼 얻을 것은 얻고 다음의 한국 축구를 출발하는 지렛대로 삼는 지혜가 더없이 필요한 선장 없는 한국 축구다. 아무것도 없이 떠나보내면 그 자체가 금전, 시간, 행정적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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