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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스라엘 스포츠 교류사에는 어떤 일들이

작성일: 2017.03.07 12:32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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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의 WBC 1라운드 A조 첫경기가 열렸다.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과 이스라엘은 같은 아시아 나라지만 1980년대 이후 스포츠 교류가 그리 많지 않다. 종목별로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데 한국은 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첫 경기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스라엘에 1-2로 졌다. 뼈아픈 패배다.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2라운드 이상을 노리는 한국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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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교류가 야구보다 훨씬 많은 축구에서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제법 많은 경기를 했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 본선에서 처음 만나 2-1로 이긴 이후 1977년 3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차범근과 박상인, 최종덕의 릴레이 골에 힘입어 3-1로 승리할 때까지 한국은 이스라엘과 10차례 겨뤄 4승 4무 2패의 전적을 남겼다. 

 

이 기간 이후 한국과 이스라엘이 축구에서 만난 건 1996년 4월 30일 텔 아비브에서 열린 친선경기뿐이고 한국이 황선홍(2골) 김도훈 유상철 신태용의 연속 골로 5-4로 이겼다. A 매치는 아니지만 하포엘 텔 아비브 클럽이 1957년 9월 한국을 찾았으니 한국과 이스라엘의 축구 교류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축구 올드 팬들에게 이스라엘은 말레이시아, 호주와 함께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주요 국제 대회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괴롭힌 나라로 기억된다. 그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가 모데차이 슈피글러다. ‘이스라엘 판 차범근’이라고 할 수 있는 슈피글러는 프랑스 리그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뛴 그 무렵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선수였다.

  

축구뿐만 아니라 농구에서도 한국은 이스라엘과 자주 만났다. 농구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축구와 함께 대회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1970년 방콕 대회가 대표적이다. 1969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회 사상 첫 우승한 기세를 살린 한국은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농구 첫 우승에 도전했다.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이란을 110-77, 홍콩을 116-51로 연파한 데 이어 필리핀을 79-77로 따돌리고 조 1위로 6개국이 겨루는 결승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결승 리그 마지막 날 전까지 필리핀에 65-70으로 잡히며 3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필리핀을 83-78로 꺾는 등 파죽의 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그해 12월 19일 결승 리그 최종일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이스라엘을 81-67로 물리치고 같은 4승1패를 기록한 뒤 승자승으로 극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농구와 축구의 동반 우승, 게다가 두 종목 모두 대회 사상 첫 우승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월드컵 축구 4강 정도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 준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축구와 야구를 포함해 한국과 이스라엘의 스포츠 교류가 1980년대 들어 크게 줄어든 건 아시아 스포츠 판도 변화 때문이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가 폐막한 다음 날인 12월 5일 열린 아시아경기연맹(AGF) 총회에서는 AGF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로 새롭게 출발했다. 쿠웨이트를 비롯한 서아시아 나라들이 주도한 아시아 스포츠 판도의 변화 속에 축출된 이스라엘은 이후 축구는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아닌 UEFA(유럽축구연맹)에서,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종합 활동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아닌 유럽올림픽위원회(EOC)에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쿠웨이트와 이란 등이 석유를 앞세워 한국과 협력하기 전까지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였다.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시절, 대만처럼. 그러나 정치 외교 경제적 환경 변화와 함께 스포츠에서도 이제는 ‘먼 나라’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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