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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태의 인니일기] 고생한 선수들처럼, 한 뼘 자란 듯합니다

작성일: 2018.09.01 13:30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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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단단해진 김학범호.
▲ 말레이시아전 패배 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자카르타(인도네시아), 유현태 기자] 운동선수들에겐 '국제 대회 경험'이 꽤 중요한 요소로 꼽히곤 한다. 기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게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써 9월을 맞았다. 그리고 이제 아시안게임도 마지막으로 향해 간다. 자카르타에서 무려 150km 떨어진 반둥에서, 그리고 자카르타 근교 도시 브카시, 보고르를 오가면서 남자 축구 대표 팀을 취재했다. 몇몇 휴식일을 빼놓고 선수들을 이렇게 길게 따라다닌 건 처음이다. 

매일 같이 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선수단 분위기를 몸으로 느낀다. 떨림 가득했던 첫 경기부터 시작해 이제 남은 결승전까지 왔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선수들이 확실히 성장했다고 주장하면 거짓말처럼 느껴질까?

한국의 첫 출발은 대단히 좋았다.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6-0으로 대승을 거둔 선수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하지만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하면서 모든 것이 꼬였다. 선수들은 위태로워보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푹 숙인 고개.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이 돼서도 선수들은 긴장감을 좀처럼 감추지 못했다. 팀을 향하는 부정적 여론 역시 잘 인식하고 있었다. 승리하고도 맘껏 웃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가장 큰 불안감을 조별 리그 3차전에서 느꼈다. 말레이시아전처럼 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경기 양상도 밀집 수비에 쉽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인내하며 공격을 계속했다. 손흥민의 천금 같은 득점이 터지는 순간 모든 어려움이 해결됐다. 믹스트존에서도 선수들의 얼굴엔 한결 부담을 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란전부턴 선수들의 움직임에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말레이시아전 패배 직후 위축됐던 것은 사라졌다. 우즈베키스탄에 4-3으로 힘겹게 승리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받는 압박감도 제대로 느끼는 기회였을 것이다. 팬들이 쏟는 관심이 큰 만큼, 비난도 많이 쏠리는 축구. 선수들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연령별 대표를 거친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대회는 그들의 축구 인생에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과가 중요한 대회였다. 공을 차는 실력에서야 큰 변화가 없었겠지만 마음이 조금 더 자라지 않았을까.

빡빡한 일정을 치르며 결승까지 왔다. 어떤 대회든 우승하기란 쉽지 않다. 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한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다. 우승도 해본 사람이 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우승하는지를 모두가 배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다른 대회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 마지막까지 환호할 수 있길. 황의조와 손흥민(왼쪽부터) ⓒ연합뉴스

선수들의 분투를 옆에서 지켜보는 기자의 3주도 편하고 느긋하지만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교통 체증을 넘어 경기장과 훈련장을 따라 다녔다. 끼니를 거르거나 미루는 일도 잦았다. 선수들이 '축구'를 하고 나면 기자의 일이 시작된다.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기사로 풀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늘 해오던 일이지만, 유난히 긴 출장이라 사뭇 다른 경험을 쌓게 됐다. 

'국제 대회 경험'이란 게 기자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선수들이 장기간 대회를 치르며 조금씩 자라듯, 취재하는 이도 조금씩 성장한 것 같다. 출장을 오니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하는 기분이고,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무언가 해야 할 것 같다. 12,3시간을 일하고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출장지에서도 기사 작성만큼이나 휴식과 재충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3주를 넘게 휴일 없이 일하며 이제야 일을 하고 쉬는 것의 균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축구를 취재하는 짬짬이 펜싱, 유도, 레슬링, 육상 같은 종목들도 취재를 다녔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 나름대로 '대회를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달력이 넘어가 9월이 됐다. 출장도 이제 딱 하루가 남았다. 언제나 그랬듯 남자 축구 대표 팀의 결승전을 취재하러 간다. 운명의 장난인 것처럼 상대는 일본이다. 모두가 일본을 이기고 싶어할 것이고, 금메달의 영광과 함께 '예술체육요원'으로 근무하는 혜택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실로 달콤한 성과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금메달과 별개로 이번 아시안게임은 20명의 선수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직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은 10년 이상 이어질 자신의 축구 인생에 소중한 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다닌 기자에게도 다시 없을 경험이 됐다. 아마도 한 뼘 쯤 자라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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